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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리퍼트 대사 피습' 그림 논란의 본질

김영아 기자 youngah@sbs.co.kr

작성 2015.09.09 17:56 수정 2015.09.09 18:0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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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리퍼트 대사 피습 그림 논란의 본질
미술계가 시끄럽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난 주말 개막된 기획전에 걸렸던 '김기종의 칼질'이라는 그림 때문입니다. '민중화가'로 널리 알려진 홍성담 작가의 작품입니다. 작품이 공개된 뒤 '테러를 옹호한다'는 논란이 일었고. 결국 전시 주최측인 서울시립미술관이 전시가 진행중인 가운데 이례적으로 작품을 내려버렸습니다.

작품은 지난 봄 발생한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피습 사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건 자체가 매우 정치적으로 읽힐 수 있는 소재입니다. '논란'에 기름을 부은 건 작품 한가운데 적어넣은 작가의 글들입니다. 여러 언론에서 자주 인용된 문장들만 몇 개 골라보겠습니다.

"이런 저런 맥락을 살펴보면 당시 한민족 대부분은 일제 식민지 36년 동안 자기네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미군에게 전시작전권을 바치고 서울 한복판에 외국 군대의 병영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일제 강점기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는 칼질로써 자신의 절망감을 표현했다."

"조선침략의 괴수인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 죽인 안중근 의사도 역시 우리 민족에 대한 절망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한 건 '보수적인 논조'로 분류되는 한 일간지였습니다. 이후 미술관 측에 알아보니 실제 적잖은 시민들이 항의와 함께 그림을 내려 달라는 민원을 쏟아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 과연 문제가 될 만한 작품인가를 확인하는 게 우선입니다.

미술계 인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물었습니다. 한 분은 단호한 어조로 "논란이 될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예술가에겐 표현의 자유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인 잣대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선 안된다"는 게 근거였습니다.

반면 다른 분은 아주 다른 의견을 내놨습니다. "이 작품은 표현의 자유를 논할 대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림만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논란의 핵심이 글인데,  글의 내용이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선동적이다. 이 그림은 프로파간다일 뿐 예술의 범주를 넘어섰다"고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번 논란을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이들과 이를 탄압하는 이들 사이의 대립으로 얘기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두 전문가의 의견 속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결론은 극과 극이지만 두 주장 모두 예술가와 예술 작품에 '표현의 자유'가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다른 건 단 하나,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을 자격이 있는 '예술'의 기준과 대상이 무엇이냐입니다.

예술을 정의하는 기준은 개인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문가는 아니지만 제 경우엔 함축성과 개방성입니다. 함축성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을 넘어서는 뭔가를 얼마나 많이 담고 있느냐입니다.

함축적인 작품일수록 보는 이가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아집니다. 그 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해석이 가능한 열린 작품이 됩니다. 반면 직설적인 작품일수록 작가의 주장을 강요하면서 관람객을 수동적 대상으로 전락시킵니다. 실천문학이 선전문과 다르고 민중미술이 포스터와 다른 건 이 때문입니다.

'김기종의 칼질'이라는 작품을 둘러싼 논란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상황 묘사보다 더 명료한 작가의 글귀에 관심이 더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과 지면의 한계로 언론에서 다 옮기지 못한 몇몇 발췌문만 보고는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작품을 직접 보는 수밖에 없는데 작품은 이미 전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전문을 옮겨 봤습니다. 직접 한 번 찬찬히 읽어보시고 판단을 내려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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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당 대표 김기종이는 2015년 3월 모일 모시에 민화협 주최 조찬강연회에서 주한미국대사 리퍼트에게 칼질을 했다. 얼굴과 팔에 칼질을 당한 리퍼트는 붉은 피를 질질 흘리며 병원으로 끌려가고 김기종은 '한미연합 전쟁훈련을 중단하라'고 고래고래 외치면서 경찰서로 끌려갔다. 그는 일년전에도 주일대사에게 시멘트 조각 두개를 던졌다. 그가 던졌던 시멘트 쪼가리 두 개는 독도를 의미한다고 했다. 독도문제에 대한 자기나름의 일종의 퍼포먼스인 셈이다.

독도 문제든, 위안부 문제든, 남북 문제든..... 요것들의 문제를 한 발만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우리 민족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상황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문제의 본질 속에는 태평양 전쟁 종전의 결과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들에 있다. 당시 전쟁의 승자인 미국이 자신들의 동아시아 군사적 전략을 위해서 일본의 전쟁범죄를 대강 덮어놓은 것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의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는 친일파의 문제도 결국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이미 절망한지 오래 되었다. 그러나 이 절망감에 대해서 나는 입을 다물었고 김기종은 비록 과도이긴 하지만 칼로써 표현한 것이다.

김기종은 지금 종북으로 몰리는 대신에, 리퍼트가 입원중인 세브란스 병원 앞에서는 한국 국민들에 의해서 그의 만수무강을 비는 제단이 만들어졌고 발레와 노래와 부채춤으로 그가 쾌유하기를 기원하는 향연이 벌어졌다. 또한 리퍼트 대사의 건강회복을 위한 큰절하기 이벤트가 줄을 이었다. 누군가는 So Sorry를 외치며 무기한 석고대죄를 하고 있다. 어떤 시민은 그의 빠른 회복을 위해서 미역국과 개고기를 선물로 바쳤다. 조선침략의 괴수인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 죽인 안중근 의사도 역시 우리 민족에 대한 절망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토는 저격범 안중근에 관한 부하의 보고를 받고 숨을 거두기 직전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한다.  "철없는 놈!" 당시에 안중근을 독립투사로 불렀던 사람이 우리 민족중에 몇이나 되었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조선에게 형님의 나라인 일본의 훌륭한 정치인을 죽인 깡패도적 쯤으로 폄하했을 것이다. 또 어떤이들은 안중근의 저격사건이 조선을 더욱 고립시키고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을 가속화 시켰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천황 히로히토, 쇼와 부자를 폭탄으로 저격하려고 했으나 실패한 이봉창의사도 대부분의 한민족들에게 욕을 얻어먹었을 것이다. 당시 한민족 대부분은 이봉창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무사한 천황 히로히토를 위해 광화문에 모여 땅바닥에 엎드려 덴노헤이라 반자이를 외치며 천황의 만수무강을 비는 행사를 수일간 열었다고 했다.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져 일본군 장교들을 폭사 시켰던 윤봉길 의사도 당시 한민족 대부분은 그를 불령선인으로 몰아 입에담지 못할 욕을 해댔을 것이다. 가령 이런 욕을 했을것이다. "저런놈들 때문에 조선인이 엽전이라고 욕얻어 먹는다. 우리 조선을 위해 머나먼 이국땅에서 싸우고 있는 일본장교들을 죽이다니.... 철딱서니 없는 나쁜 새끼!"

독립투사 수원 거부 이회영은 모든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에 사용했다. 1931년에 흑색공포단을 조직하여 일본과 일본관련 시설의 파괴, 암살을 지휘하였으나 1932년 11월 상하이 항구에서 한인교포들의 밀고로 체포되어 옥사하였다. 당대의 대부분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흉을 보았을 것이다. 이런 저런 맥락을 살펴보면 당시 한민족 대부분은 일제 식민지 36년 동안 자기네들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일본 천황을 위해서 전쟁터에 나가라며 이 땅의 젊은이들을 독려했던 이광수, 황국신민으로써 천황의 은혜를 갚기위해 정신대 모집을 강요했던 모윤숙 등등의 목소리는 당시에 많은 한민족에게 박수갈채를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1945년 8월 15일 일본천황 히로히토의 항복선언 직후에 많은 한민족들이 조선총독부 앞에 몰려가서 머리를 풀고 땅에 엎드려서 일본의 패전에 대해서 서럽게 울었던 반면에 일본의 패전과 한반도의 해방을 기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눈에 띠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당일 오후에 겨우 한 무리의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여서 어찌할 줄 모르고 서로 눈치를 보고 있을 때 일본순사와 한국순사들이 와서 해산을 명령하자 단 한마디의 군소리도 없이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미군에게 전시작전권을 바치고 서울 한복판에 외국 군대의 병영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일제 강점기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일제 강점기 당시, 한민족 대다수에겐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가 아니었듯이 지금 우리는 미국의 식민지가 결단코 아니다. 절대 아니다. 암튼, 김기종이가 간질을 앓았던, 수전증이 있던, 과대망상증이던.... 나이 56세에 병 없는 사람이 있을까만...... 그는 칼질로써 자신의 절망감을 표현했다.

그러나 나는 그를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민족주의자'라고 넌지시 욕을 했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창고 깊숙이 숨겨 놓은 여러종류의 칼 여덟자루를 꺼내고 실물을 꼭 닮은 MAGNUM 357 모의 권총도 찾았다. 칼날 위를 엄지 손가락으로 쓸어보니 여전히 날카롭게 빛난다. 제법 묵직한 매그넘 모의 권총을 손에 쥐고 길게 뻗어 어딘가를 겨누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매그넘의 가늠쇠 위에 올려 본다. 나는 이것들을 다시 꼭꼭 싸서 더 안전하고 깊숙한 곳에 숨겨놓고 나서 혼잣말을 했다. "이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어!"

정말 이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을까? 내가 겁쟁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김기종이가 리포트 대사에게 칼질하다
2015. 3. 성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