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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의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광복 70년? 고통의 70년!"

[취재파일] 한국의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광복 70년? 고통의 70년!"

송성준 기자 sjsong@sbs.co.kr

작성 2015.08.07 11:35 수정 2015.08.07 18:3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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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한국의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광복 70년? 고통의 70년!"
'한국의 히로시마'를 아시는지요? 사실 저는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요, 경남 합천을 이렇게 부르더군요. 지난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던 날 70만여 명이 피폭을 당했는데요, 이 가운데 한국인 7만여 명도 포함돼 있다고 합니다.

피폭자 중 4만여 명이 숨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일본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 원폭 피해국입니다. 당시 히로시마에는 유별나게도 합천 출신 한국인이 많이 건너가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지역 출신보다도 피해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합천을 ‘한국의 히로시마’로 부르더군요.
 
●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에서 원폭 피해자 추모제 열려 합천에서는 지난 2012년부터 매년 8월 6일 ‘합천 비핵. 평화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원폭으로 숨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생존해 있는 피해자 1, 2세대에 대한 관심과 여론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실체 규명과 자료 확보 작업을 통한 역사 기록도 중요한 과제라고 합니다. 국내외 시민 사회단체가 주최가 되어 하고 있습니다.

현재 합천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합천원폭피해자 복지회관’이 있습니다. 또 그 부지 안에 위령각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원폭희생자 1044위의 위폐가 모셔져 있습니다. 그러니 원폭하면 합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이번 원폭 피해 70주년 추모제를 취재하면서 합천을 다녀왔습니다.

복지관에 가니 원폭 피해 1세대 할머니 할아버지 101분이 아직 살아 계시더군요. 이곳에서의 평균 나이는 80.2세. 이 가운데 17명이 암환자였고 30% 이상이 치매질환을 가지고 계시다고 합니다. 또 이곳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대기자와 신청자도 146명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용 능력이 안 돼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 생존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야
 
이곳에서 몇 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나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 88살인 김일조 할머니는 교토에서 태어나 2살 때 히로시마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어린 두 동생과 함께 살면서 어머니가 하시는 건어물 장사를 도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정신대로 징발당해 대기 중에 17살 때 한국인 남편과 결혼했다고 합니다.

당시 결혼을 하면 정신대에서 면제시켜 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18살 되던 8월 6일 집에서 어머니 일을 돕고 있는데 갑자기 큰 폭발음과 함께 섬광이 일면서 목조집이 폭삭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순간 정신을 잃었지만 어머니 도움으로 집을 빠져 나왔는데 어머니와 함께 김 할머니도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 길로 방공호가 있는 인근 야산으로 갔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숨져 있었고 특히 피부가 벗겨진 화상 환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미 숨져 있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김 할머니가 살고 있던 곳은 히로시마 교외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가난한 곳으로 50여 가구 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의 피해도 컸다고 말하더군요. 5년 전 위암수술을 받고 요양 중에 있습니다.
동갑인 이수용 할머니는 히로시마 금융국에서 직원으로 일하다가 피폭 당해 왼쪽 발등이 깊게 찢어지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폭발 당시 건물 안에 있던 책상이나 모든 집기류가 다 날아가 버리고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발에 큰 상처가 나 있었다고 힙니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발이 퉁퉁 붇고 제대로 걸을 수 없어 압박 양말을 평생 착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올해 80살인 안부자 할머니는 10살 때 초등학교 등굣길에 피폭 당했습니다. 저녁 7시쯤 깨어나 보니 얼굴에 피범벅이 된 채 연꽃밭에 쓰러져 있더라고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가 죽은 줄 알았다고 말하더라는군요. 할머니도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 한국말이 서툴렀습니다.

원폭 투하 후에 일본에 있는 친척들이 “한국으로 들어가라"고, "안 그러면 큰 일난다”고 계속 이야기를 해 결국 부모님 따라 다시 한국으로 들어 왔는데 한글을 모르니 이곳에서도 갖은 차별과 멸시를 받았다며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그래서 일본말을 하루빨리 잊어버리자고 결심까지 했다고 합니다.

세 할머니의 보모님은 모두 합천 출신이라고 합니다. 당시 합천에는 잦은 가뭄과 흉년으로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제 수탈로 우리나라에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힘들었고 일본에서도 노동력이 필요해 젊은이들로 하여금 일본에서 일자리를 주겠다며 반 강제로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식민지 국민으로서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원폭 투하와 뒤이은 광복 이후 원폭 피해자 2만3천여 명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생활은 한국에서도 온전한 한국인이 될 수 없었고 반 일본인 취급을 받으며 소외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국내로 들어 온 부모님이 3, 4년이 지나자 머리가 빠지고 피부병 같은 것이 생기면서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자연히 생계가 어려워지고 힘든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 일본 정부…사과는 커녕 제대로 된 보상조차 없어
하지만 일본정부로 부터 자국민과는 달리 보상은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한국 거주 한국인 피폭자는 일본 피폭자를 위한 ‘원호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해 오다 지난 2002년 ‘피폭자 자격 확인 소송’ 판결을 통해 2003년 8월부터 의료비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인 피폭자는 상한선이 없는데 한국인 피폭자는 1년에 30만 엔의 상한선을 두는 차별은 여전합니다. 희생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은 아직은 요원한 실정입니다.

지난 70년 동안 일본 정부가 원폭 희생자들에게 지원한 것은 1990년 한일 협약에 따라 합천 원폭피해자 복지회관 건립에 지원한 40억 원이 전부. 그나마 국가적 차원의 배상이 아닌 단순한 시설지원비 명목입니다.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의 원폭 사망자와 피폭자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지난 5월 1일 뉴욕 UN 본부에서 열린 ‘핵확산 금지조약 재검토 회의’에서 한국원폭피해자 협회 심진태 합천지부장이 일본정부에 “원자 폭탄 피해 한국인들에게 사죄하고 배상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것이 UN에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가 제기된 첫 사례입니다.
 
● 한국 정부와 국회, 무관심 무대책으로 일관…실태 파악조차 한번 안 해

한국 정부의 태도도 큰 문제입니다. 70년이 지나도록 정부는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의 대답은 “일본 정부의 연구 결과를 보고 대책을 세우겠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일본의 입장을 그대로 쫓아가는 겁니다. 해방 이후 귀국한 원폭 피해자는 2만 3천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소외됐습니다. 심 진태 합천 지부장은 “우리들은 70년 동안 소외된 국민입니다. 국적도 없다고 할 정도로 소외된 국민입니다. 그 동안 실태 조사 한 번도 안했습니다”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그는 또 “일본에 우리가 침략을 받았지 우리가 침략한 것도 아닌데 왜 국가 책임자나 국회에서 머뭇거리고 일본의 눈치를 보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단호히 대처를 해서 뭔가 성의 있는 조치를 끌어내야 합니다”고 강조합니다. 더구나 국내 유일의 원폭피해자 시설인 합천 복지회관은 지은 지 19년이 됐지만 그동안 시설 개량 지원은 거의 전무 하다시피 해 낡고 노후화 됐습니다. 그 흔한 소방시설 조차 제대로 갖춰있지 못합니다. 더구나 그나마 지원되던 운영자금 연 15억 원도 내년부터는 5%를 삭감한다고 합니다.

원폭 피해자들은 하루빨리 ‘원폭피해자 지원 특별법’을 제정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특별법을 통해 실태파악과 자료 확보 기념관 건립 추모공원 조성 등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원폭피해자의 범위를 포함해 2, 3세의 건강문제도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현재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올 하반기 입법을 위해 뛰고 있지만 결과는 미지수입니다. 현재 생존해 있는 원폭피해자는 2천5백여 명 정도라고 합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82세로 그나마 생생한 증언과 요구를 들을 수 있는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광복 70주년 겉치레만 요란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이들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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