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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빵즈(한국인) 내쫓아라!"…메르스로 되살아난 '반한·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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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5.31 14:24|수정 : 2015.05.31 15:29

기사 대표 이미지:[월드리포트] "빵즈(한국인) 내쫓아라!"…메르스로 되살아난 반한·혐한
'한궈빵즈(韓國棒子)!' 요 며칠 중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예상하시다시피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의 공포를 타고 중국에서 반한 기류가 거세게 흐르고 있습니다. 중국 내 첫 메르스 확진자가 한국인으로 확인되면서 한국의 허술한 의료 통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 남성과 함께 아시아나항공 OZ723편에 동승했던 한국인 승객 2명이 격리를 거부하고 있다는 홍콩 위생 당국의 발표까지 나오자 중국 내 여론은 한층 더 악화됐습니다.
임상범 취파 
인터넷상에는 중국 네티즌들의 원색적인 비난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광둥성 지역 신문을 시작으로 중국 언론들도 재빠르게 마타도어(matador, 黑色宣傳)에 편승했습니다. 일단 가족 두 명이 이미 메르스 확진자로 밝혀진 상황에서 이 사실을 숨기고 중국으로 출장왔다가 광둥성에서 격리 치료를 받고 있는 한국 남성에 대해서는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저주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당장 지구를 떠나라"부터 "전염을 막으려면 완전히 소각시켜라" 등등 강도도 날로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 남성 개인에 대한 비난 못지 않게 남성의 출국을 막지 못한 한국 방역당국과 출입국 관리 당국의 미숙한 조치를 꼬집으며 한국 측이 고의로 이 남성의 중국행을 방치한 것이라는 식의 근거 없는 억지 주장을 하는 경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병균 덩어리 한국인들의 중국 입국을 금지시켜라" "중국에 와 있는 한국인들을 내쫓아라" 등등... 물론 2003년 사스(SARS) 때 악몽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중국인들의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가 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마녀사냥이 횡행하는 데는 씁쓸한 서운함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임상범 취파 
이런 반한(反韓), 혐한(嫌韓) 성향의 언론 기사에 달리는 댓글이나 네티즌들의 주장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바로 '빵즈(棒子)'입니다. 빵즈는 중국 사람들이 한국인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인데 원래 뜻대로 해석하면 '몽둥이'입니다. 중국인들은 주로 까오리빵즈(高麗棒子)란 말을 사용합니다.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예전부터 우리 한국을 지칭하는 나라이름으로 고려(혹은 고구려)를 많이 써왔던 것을 감안하시면 이해가 쉽게 가실 겁니다.

까오리빵즈=고려몽둥이? 바로 감이 오지 않으실 겁니다. 과연 이 말의 속 뜻은 무엇일까요? '몽둥이 찜질해 줄 고려(혹은 고구려) 놈들'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수나라 양제나 당나라 태종 등 기하성 같은 중국 황제들이 고구려를 침략했다가 모두 대패하고 돌아갔던 뼈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중국으로선 고구려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뒤 요동 반도를 건너 넘어 온 고구려 유민들이나 포로들에 대해 톡톡히 앙갚음을 해줬다고 합니다. 이때 처음 사용된 비하어가 바로 까오리빵즈였습니다.

임상범 
사대주의 모화사상이 극성을 부렸던 조선 시대,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속국쯤으로 여기던 조선의 사신이나 무역상들을 '빵즈'로 낮춰 불렀습니다. 조선인들의 상투 튼 머리 모양이 몽둥이 모양과 같아서 이렇게 불렀다는 설도 있습니다.
임상범 취파
그 뒤로 일제 시대 중국 역시 일제에 의해 핍박을 받던 시절 까오리빵즈는 또 다시 등장합니다. 일제가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을 이간질시키기 위해 일으킨 만보산 사건(1931년 7월 2일 萬寶山事件)에서 만주로 이주한 조선 농민들은 중국 농민들과 유혈 충돌을 벌입니다.

중국인들의 눈에는 일제의 비호하에 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자신들을 흠씬 패주는 한국인들이 일본의 앞잡이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중일 전쟁 통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동원돼 전선으로 끌려온 수많은 한국인 병사들은 사실을 불쌍한 총알받이였지만 역시 중국인들에게는 적이었을 겁니다. 동북아 3국의 뒤꼬인 역사적인 구원(舊怨)에서 비롯된 말이 바로 '빵즈'인 겁니다.
 
그 뒤로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양국은 한동안 밀월기를 보냈습니다. 경제적 도약이 무엇보다 절실했던 중국에게 한국은 저만치 앞서가는 롤 모델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중국에서 다시금 반한 정서가 만들어지며 조금씩 바뀌게 됐습니다. 개혁 개방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며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된 중국인들에게 한국은 동경, 부러움과 함께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겁니다.

돈 있다고 뻐기며 자기들 무시하고 유흥가를 누비던 일부 한국인들을 헐뜯던 중국인들이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한국에 대해 개최국 프리미엄을 앞세운 승부 조작이라는 비난을 쏟아내면서 '빵즈'란 말이 수 십년 만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공한증을 극복 못하고 번번히 패하기만 하는 자국 축구팀에 대한 안타까움이 한국에 대한 비난으로 뒤바뀌기 일쑤였고 최근 박태환의 약물 사건이 터지자 한국의 신사답지 못한 술수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며 깎아내리기에 바빴습니다. 심지어 탕웨이와 결혼한 김태용 감독을 겨냥해 "'한국 빵즈'에게 국보를 빼앗기는 걸 두고 볼 수 없다"는 식의 저급한 비아냥이 난무했습니다.
 
2013년 동시에 출범한 박근혜 정부와 시진핑 정권이 전에 없는 긴밀한 유대 속에 반일 공조를 취하며 지난 2년 여간 한중 양국이 역대 어느 때보다 가까운 선린 이웃으로 발전했다는 평가가 양국 언론이고 관리들 사이에서 입버릇처럼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메르스와 함께 다시금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는 '빵즈' 신드롬을 보면서 정말 질기다 못해 숙명 같은 한·중·일 3국의 상호 증오, 반감의 무시무시함을 절감합니다.

사소한 사건 하나로도 언제 180도 반전할 지 가늠할 수 없는 살얼음 같은 한·중, 한·일 관계의 속성을 결코 잊지 말고 냉철하고 이성적인 외교와 뿌리 단단한 민간 교류를 지속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듣기 불편한 '빵즈', '조센징'이란 말들이 사라지길 바란다면 우리 먼저 '짱꼴라', '쪽발이'같은 비하어를 물리치려는 용기와 아량부터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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