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과 공포, 누가 부추기나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15.05.11 14:15 수정 2015.05.11 16:3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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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과 공포

얼마 전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 누가 부추기는 걸까" 라는 제목의 취재파일을 썼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의 노후와 복지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에서,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러고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잘못 판단한 것 같다. 복지부만은 아니었던 듯싶다.

10일 청와대에서 5월 임시국회 개회와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공무원 연금 개혁을 촉구하며 국민연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할 경우 세금 폭탄은 무려 1,702조 원이나 됩니다.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된 것처럼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을 50%로 높인다면 향후 65년 간 미래세대가 추가로 져야 할 세금 부담만 무려 1,702조 원, 연간 평균 26조 원에 달합니다. 

국민들께 세금 부담을 지우지 않고 보험료율을 상향 조정하여 소득대체율 50%를 달성하려면 내년 2016년 한 해에만 34조 5천억 원, 국민연금 가입자 1인당 209만 원의 보험료를 더 내야 합니다.
 
일부 정치권의  주장처럼 지금 보험료를 1%만 올리더라도 미래 세대는 재앙에 가까운 부담을 지게 됩니다. 기금을 다 소진하게 되는 2060년부터는 보험료율을 25.3%까지 올려야 하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아들, 딸들은 세금을 제외하고도 국민연금 보험료로만 소득의 4분의 1을 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 세금 폭탄 1천702조 원?

깜짝 놀랐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릴 때 세금 폭탄이 1,702조 원, 연평균 26조 원"이라는 참신한 수치가 난데없이 등장했다. '향후 65년간'도 낯설었고, "2016년에만 34조 5천억 원, 1인당 209만 원의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는 것도 의아했다. 지난주 내내 국민연금과 소득대체율의 관계, 보험료율 문제를 들여다봤는데 엉뚱한 짓거리를 했던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찬찬히 따져봤다.

현재 46.5%(2028년까지 매년 0.5% 포인트씩 낮아져 40%가 된다)인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되 보험료율을 9%인 현행 대로 유지하면 2056년에 연금기금이 고갈된다. 소득대체율을 그대로 뒀을 때에 비해 고갈시점이 4년 앞당겨진다. 1,702조 원이란 알고 보니, 이렇게 연금기금이 고갈된 뒤인 2056년~2080년에 추가로 들어가는 돈을 뜻하는 것이었다. 

지난주 복지부에서는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기금 고갈 이후부터는 보험료를 25.3%씩 내야 한다"고 했다. 보험료율을 조정하지 않고 내버려뒀을 때가 그렇다. 또 이 계산대로면 소득대체율을 올리지 않고 40%로 유지하더라도 기금 고갈 이후엔 보험료를 21.4%씩 내야 한다. 소득대체율 50% 인상 때문에 보험료 9%가 25.3%가 되는 게 아니라, 21.4%가 25.3%가 되는 것이다. 

청와대에서는, 보험료를 25.3%씩 내야 한다는 복지부 설명을, 금액으로 환산했다. 2056년~2080년에 연금 지급에 추가로 들어갈 돈이 1,702조 원 정도인데, 이를 '세금 폭탄'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제까지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로 지급해왔다. '보험료 25.3%' 같은 언급도 어디까지나 연금 보험료로 거둔 돈을 지급한다는 대전제 아래에서였는데 청와대는 갑자기 이를 "국민 세금으로 지급한다면"으로 바꿔버렸다.

청와대 논리대로면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고 2056년부터는 연금 가입자는 국민 세금으로 연금 지원을 받게 되는 셈이다. 소득대체율 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연금제도의 일대 변혁을 가정한 수치다.

● "당장 보험료 2배" ⇒ "내년 한해에만 34조 원 부담" 

세금 부담을 지우지 않고 보험료율을 상향 조정해 소득대체율 50%를 달성하려면 내년 2016년 한해에만 34조 5천억 원, 국민 1인당 209만 원씩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2014년 국민연금 수입은(가입자가 낸 보험료) 32조 원 정도, 1인당 197만 원이다. 이 보험료 수입의 2배 정도를 내야 한다는 것, 이는 역시 지난주 복지부가 했던 주장과 맞닿는다.

당시 복지부는 2100년까지 연금 기금을 일정한 적립배율을 유지하면서 보유한다면 보험료를 당장 18.85%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당장 보험료 2배"라는 주장이었다. 청와대의 주장은 역시 이 보험료 2배 주장을 금액으로 환산한 것이었다. 그 다음 주장은 앞서 설명했던 복지부의 지난주 주장과 대동소이하다.

● 문형표 장관, "보험료 2배" ⇒ "3.5~4% 인상"
문형표 연합지난주 "당장 보험료 2배"라는 복지부의 주장이 과장됐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7일 문형표 장관이 기자실을 깜짝 방문했다. 문 장관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하면서도 보험료율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연금전문가, 재정추계 전문가들이 상식적으로 수긍하고 연금제도의 안전성을 따져볼 때 이렇게 잡는다. 소득대체율 10% 포인트를 올리려면 보험료율 인상 3.5~4%가 필요하다는 게 기본 논리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이만큼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장 보험료 2배"에서 "3.5~4%"로 물러섰다. 현행 9%와 합치면 12.5~13%다. 지난 2013년 3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결과가 나오자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에서 제시했던 보험료율 인상안과 거의 흡사하다. 그때 위원장은 문형표 KDI 연구위원이었다. 

● 다시, 정부의 역할

국민연금의 노후 보장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는 대다수 전문가의 의견이 일치한다. 일부는 실질적인 소득대체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면서 그 방법의 하나로 명목 소득대체율 50% 인상을 주장하고, 일부는 광범위한 사각지대 해소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장기적으로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국민연금 소득 상한선을 조정해야 한다는 얘기도 거론된다. 어느 하나라도 국민연금 가입자가 2천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가 없으면 진전되기 힘들다.

다시 말하지만 정부가 해야할 역할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조정해 논의의 진전을 이끌어가고 성과를 내는 것이다. 사실을 과장하거나 때로는 공포심까지 조장하면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키우게 되면 단기적으론 어떤 종류의 정치적 이득을 볼지 모르겠으나 장기적으론 모두에게 손해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연금 제도에 대한 불신도 있겠으나, 정부에 대한 불신까지 더해진 게 아닌지 생각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