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모짜르트를 좋아하세요? 그럼 현대 음악은요?"

통영에서 확인한 '현대 음악의 현주소'

곽상은 기자 2bwithu@sbs.co.kr

작성 2015.04.06 17:09 수정 2015.04.07 11:5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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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무엇인가? 어학사전에는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이라고 설명되어 있더군요. 소프라노 조수미 씨가 부르는 '밤의 여왕' 아리아나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을 감상하다 보면 누구나(대부분) 예술이 표현하는 '아름다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모네나 드가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이렇게 협의로 해석할 경우 현대 예술을 이해하는 데는 장애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에는 기괴하고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연주곡이나 나체나 잔인한 묘사 등으로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는 무용 공연이 드물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도대체 알 수 없다고 입을 모으거나 때로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그림이나 조각, 또는 물건(예를 들면 피에르 만조니의 작품 같은 경우 말이죠.)이 세계 유수의 미술관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기도 합니다. 협의의 '아름다움'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작품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볼까요? 예를 들어 모네의 '파라솔을 든 여인'을 누군가 썩 훌륭하게 모작한 경우를 가정해보죠.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원작의 구도와 색채, 붓 터치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재현해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모작을 가치 있는 예술 작품으로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가치 있는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여기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예술가들의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곽상은 취재파일 
국내에서 열리는 대표적 국제음악제 중 하나인 통영국제음악제가 지난 주말 막을 내렸습니다. 행사가 열리는 열흘 동안 경상남도의 작은 해안도시에 국내외 다양한 클래식 음악인들의 방문이 이어졌습니다. 취재를 위해 저도 지난 주 2박3일 통영을 방문했는데, 서울에서 자동차로 꼬박 5시간을 달린 뒤에야 그 곳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작고 교통도 불편한 도시에서 국제음악제가 열리고 있는 이유는 이 곳이 바로 작곡가 '윤이상' 선생이 자란 곳이기 때문입니다.
 
유럽 평론가들에 의해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 하나로 꼽히는 윤이상 선생은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가족이 통영으로 이주하면서 이 곳에서 성장했다고 합니다. 뿌리가 윤이상 선생인 만큼 통영국제음악제는 현대성이 돋보이는 예술 음악을 주로 선보입니다. 모짜르트나 베토벤의 곡이 연주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윤이상 선생을 비롯해 20세기 작곡가들, 특히 생존한 작곡가들의 작품이 특별히 많이 연주된다는 점에서 여타의 음악제들과 구별됩니다.
 
통영에 머무는 동안 저는 뮤직시어터 웨일스가 공연하는 오페라 '그리스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파질 사이와 홍콩 신포니에타의 협연, 그리고 디오티마 콰르텟의 현악 4중주 공연을 지켜봤습니다. 그 중 오페라 '그리스인', 그리고 파질 사이와 홍콩 신포니에타의 협연은 저희 8시뉴스에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 욕하는 오페라·전라 무용수…파격적인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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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그리스인' (작곡: 마크-앤서니 터니지, 프로덕션: 뮤직시어터 웨일스)
 
오페라 하면 화려한 무대 위에 유럽의 귀족으로 분한 성악가들이 등장해 이탈리아어로 된 아리아를 부르는 장면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다면 '그리스인'은 상당히 파격적인 작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80년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 청년의 비극적인 운명을 다루고 있는데, 시대 배경이 현대인 만큼 성악가들은 청바지와 트레이닝복을 입고 무대에 등장합니다. 노래에는 속어와 욕설이 가득합니다. 그들의 표정도 춤도 노래도 협의의 '아름다움'으로는 설명이 되지를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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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질 사이 & 홍콩 신포니에타 협연

피아노 연주는 '건반을 두들겨 소리를 낸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관객이라면 파질 사이의 연주 또한 낯설고 당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유명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파질 사이는 자작곡 '실크로드'를 연주하는 동안 피아노의 현 사이에 헝겊이나 휴지 뭉치를 끼워 넣어 건반의 소리를 변형시키는가 하면 클립으로 현을 직접 튕겨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면 피아노는 때로는 타악기처럼 때로는 현악기처럼 익숙하지 않은 소리들을 만들어냅니다. '게지 파크Ⅲ'란 곡에서는 성악가가 등장해 가사도 없는, 음산하고 처절한 분위기의 곡소리 같은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협의의 '아름다움'에는 잘 들어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협의의 '아름다움'에 집착하다 보면 광의의 '아름다움'을 놓칠지도 모릅니다. 마르거나 근육질의 몸매를 아름답다고 하는 세상이지만, 누군가는 뚱뚱하고 늙고 탄력 없는 평범한 이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몸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꽃이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누군가는 바닥에 뒹구는 낙엽과 땅 속 깊이 뻗은 식물의 뿌리에서 더 큰 아름다움을 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게 하는 것, 그것은 '익숙한 아름다움'을 반복해 보여주는 것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닙니다. 우리는 그런 새로운 아름다움에 눈 뜨게 해주는 예술가의 독창성과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시간이 흐르면 그런 작품은 다시 고전이 됩니다. 사회적 통념의 틀에서는 도저히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없는 현대 예술 작품에 대해서도 우리가 지원과 지지를 거두지 않는 이유입니다.

중요한 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지 않으면 이런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그러하듯이 예술 작품 또한 호기심 혹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유심히 지켜볼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더 많이 좋아할 수 있다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현대 예술 음악에 관심은 있는데 통영국제음악제를 놓친 분이라면 내일로 다가온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아르스노바' 연주회에 한번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동시대 음악의 경향을 보여주기 위해 지난 2006년 시작된 서울시향의 야심찬 프로젝트가 벌써 10년째를 맞았습니다. 특히 이번 연주회는 정명훈 시향 예술감독이 직접 지휘봉을 잡아 현대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을 보여줄 거라고 하니 현대 음악에 대한 좋은 입문 공연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