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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군 입대 전, 저는 정상이었습니다"

가혹행위 신고했다가 '관심병사' 낙인

[취재파일] "군 입대 전, 저는 정상이었습니다"

● 우리나라 국민 중 군(軍)과 관련 없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군 복무를 했거나 할 예정인 당사자 혹은 가족 중 누군가가 군 복무를 한 사람. 많은 국민들이 이렇게 두 개의 범주 안에 포함될 테고, 설령 두 경우 모두 해당하지 않더라도 주위 사람 중 누군가를 군에 보내본 경험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갖고 있을 겁니다. 징병제를 택하고 있는 분단국가, 우리나라에서 군대는 국민의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렸을 땐 군인 ‘아저씨’에게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하다는 편지를 썼고, 대학 시절엔 군 입대를 앞둔 친구들과 수없이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지역번호 033으로 시작하는 발신번호가 뜨면 군대 간 친구들의 면면을 떠올리며 ‘이번엔 누굴까’ 궁금한 마음에 전화를 받았고, 말년휴가를 나온 작대기 네 개짜리 친구들에겐 ‘벌써 전역하느냐’며 시간 참 빨리 간다는 짓궂은 농담을 던지곤 했습니다. 오빠를 만나러 철원까지 면회를 갔다가 1박 2일 동안 군인들과 함께 노래방, 볼링장, PC방을 전전했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송터미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서울행 버스를 탔을 때 들던 해방감이란(!)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리던 겨울날이었습니다. 입대하는 친오빠를 따라 의정부에 갔습니다. 연병장을 가득 찬 무거운 공기가 느껴졌습니다. 간간이 들려오는 웃음소리조차 마냥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는 그곳에서 사랑하는 누군가를 훈련소에 보내고 긴 이별의 시작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 오빠와 돌아가면서 포옹을 하던 우리 가족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제발 건강하게만 돌아와. 아프지 말고.” 저희 가족뿐 아니라 아마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은 각자의 상대에게 비슷한 말을 했을 겁니다.

(2013년 2월 14일 취재파일 <“건강하게만 돌아와다오”>에 작성했던 내용입니다.)
[취재파일] "건강하게만 돌아와 다오"


 가족을 군에 보내본 경험이 있다 보니 군 관련 취재를 할 때마다 이렇게 개인적인 기억이 반사적으로 떠오르곤 합니다. 이번 취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군에 보낸 아들과 관련해 억울한 점이 있다는 제보자를 만나러 가면서 다시 한 번, 병사 가족의 마음을 떠올렸습니다. 군에 간 가족이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를 받으면서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게만 돌아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써놓고 보면 그리 대단한 바람도 아닌 것 같은데, 이런 당연한 바람이, 우리 군에서는 왜 이렇게 실현되기 어려운 걸까요?


● 공군의 한 전투비행단 소속 민 모 상병은 일병 시절 생활관에서 바로 위 맞선임에게 자주 맞곤 했습니다. 이유는 없었습니다. 뭐든 꼬투리가 잡히면 그게 이유가 됐습니다. 어깨 근육을 다쳐 민간 병원에서 수술 받은 일을 두고 다른 선임에게 조롱을 듣기도 했습니다. 소위 말해 ‘짬이 안 되는’(계급이 낮은) 병사들이 아프다고 털어놓고 병원에 갔을 때 겪게 되는 전형적인 고충입니다. 민 상병은 고심 끝에 자신이 겪은 일을 신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으뜸병사를 통해 문제를 제기했지만 부대에서는 반응이 없었습니다. 열흘이 지나도록 사건이 처리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민 상병의 부모는 국방부에 민원을 접수했습니다. 감찰실이 조사에 나섰고 가혹행위는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한 달 만인 12월 중순 징계위원회가 열렸고, 폭행 병사에게는 영창 4일의 징계가, 막말 병사에게는 영창 5일의 징계가 내려졌습니다. 신고를 무시한 주임원사와 지휘관에게도 각각 보직해임과 경고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피해자의 신고와 이에 따른 군 당국의 조사, 가해자에 대한 처벌로 사건은 마무리됐습니다.

 그런데 과연 민 상병의 고통도 끝났을까요?

 민 상병은 사건이 처리되는 동안 공군항공우주의료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양쪽 어깨 근육을 다쳤기 때문입니다. 몸이 아파 입원했는데 더 불편한 건 마음이었습니다. 민원 제기 이후 가해병사 측으로부터 합의해달라는 요구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주임원사와 가해병사 부모가 불쑥 병실을 찾아왔습니다. 몇 시간 동안 떠나지 않고 합의서를 작성해달라고 요구하는 통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합니다. 민 상병 부모는 하루 두세 통씩 걸려오는 전화에 질려 결국 합의서를 써줬습니다. 민형사상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말이죠.

 민 상병 아버지는 이 과정에서 주임원사의 합의 종용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빨리 합의를 해줘야 사건이 처리된다는 식으로 여러 차례 얘기했다는 겁니다. 해당 부대와 주임원사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가해병사 부모와 피해병사 부모를 이어주고 합의서를 작성해 전달하는 역할만 했을 뿐, 합의를 유도하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얘기를 나눈 두 사람의 주장이 달라 진실은 확인하기 어렵겠지만 민 상병과 가족들이 합의를 해줘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던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병원에 있다가 두 달 만에 비행단으로 돌아간 민 상병은 더 큰 난관을 마주했습니다. 가혹행위 신고자라는 사실이 부대 전체에 알려지면서 이른바 ‘관심병사’ 취급을 받게 된 겁니다. 처음 만난 비행단 간부는 “네가 그 유명한 민○○냐”는 말을 던졌습니다. 국방부 민원으로 부대가 발칵 뒤집혔으니 민 상병은 ‘내부 고발자’로 부대에서 ‘유명’해진 상태였던 겁니다. 해당 간부는 ‘반가움의 표현’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민 상병이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 표현을 반가움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민 상병은 동료 병사들에게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느끼면서 결국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까지 얻게 됩니다. 입대 전까지 정상이었던 그는, 몇 달의 군 생활 끝에 몸과 마음의 병을 얻고 말았습니다. ‘관심병사’라는 낙인과 함께 말입니다. 부대에서는 민 상병이 군 생활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해 현역 복무 부적격 심사를 권유했고, 민 상병은 앞으로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게 됩니다. 건강하게 돌아오기만을 바라던 부모님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 공군 민 상병 사건 일지 >
14년 10월 27일 / 으뜸병사에게 가혹행위 신고 → 묵살
14년 11월   7일 / 국민신문고 통해 국방부에 민원 접수
14년 11월 10일 / 공군우주항공의료원 입원 (어깨 근육 파열)
14년 11월 27일 / 주임원사와 가해부모가 병실 방문 → 합의서 작성 거부
14년 12월   2일 / 민형사상 처벌 원치 않는다는 합의서 작성
14년 12월 11일 / 가해병사 1차 징계위원회
14년 12월 16일 / 가해병사 2차 징계위원회
15년   1월   5일 / 의료원 퇴원 후 비행단 의무대대로 복귀
15년   1월 22일 / 우울증 진단 (국군수도병원, 인하대병원)
15년   2월   2일 / 현역복무 부적격 심사
15년   2월 16일 / 보충역(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 전환



● 취재 과정에서 군의 입장을 듣기 위해 비행단을 직접 방문했습니다. 평소 군 취재를 할 때마다 소통의 벽을 느꼈던 것과는 달리 이례적으로 취재에 협조적이었습니다. 민 상병 가족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필요한 설명을 모두 들었고 이 과정에서 의혹이 해소된 부분도 많았습니다. 국방부 민원이 접수된 이후 사건 처리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기사를 쓴 이유는, 군의 ‘사건처리’와는 별개로 가혹행위를 신고한 피해자들이 부대에서 겪게 되는 고충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가해자가 처벌받는 것과는 별개로, 피해자가 같이 생활하게 될 동료 병사들이나 간부가 어떤 인식을 갖느냐에 따라, 피해자의 고통은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해자 그룹과 피해자를 분리하지 않은 채, 내부 고발을 했다는 이유로 부대 분위기를 흐트러뜨렸다는 낙인을 찍는다면, 군이 외치는 병영문화 혁신은 공허한 외침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 군 가혹행위 신고했다가…'배신자' 주홍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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