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말단 검사는 대법관이 될 수 있을까?

최고운 기자 gowoon@sbs.co.kr

작성 2015.02.06 10:1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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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말단 검사는 대법관이 될 수 있을까?
지난 1987년 1월 13일 밤 12시 쯤, 하숙집에 있던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 박종철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경찰은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로 박종철을 끌고 가 모진 고문을 가했습니다. 폭행, 전기고문, 물고문. 모진 괴롭힘을 이기지 못한 박종철은 결국,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실이 한 언론에 의해 폭로됐지만 경찰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궤변으로 국민의 분노를 샀죠. 검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진실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로 사건 축소, 은폐 사실이 드러났고, 그렇게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자, 그 당시 검찰 수사팀에 있었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된 박상옥, 현 형사정책연구원장입니다. 어제(5일) 오전 국회에서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 청문 특별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안건은 위원장 선임, 간사선임, 청문계획서 채택, 자료제출 요구, 증인과 참고인 출석 요구 등 모두 다섯 개였습니다. 관심이 많은 사안인 만큼 저는 일찌감치 회의장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래픽_박상옥
처음에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일단 위원장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의원이, 간사는 여야 각각 이한성 의원과 전해철 의원이 선임됐죠.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3번인 청문계획서 채택 안건과 관련해 야당이 박상옥 후보자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 참여 경력을 문제 삼으며 의사진행발언을 시작했습니다.

[김기식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민주화 계기가 된 역사적 사건이고 현대사 규정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건입니다. 그런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축소 은폐 과정에서 박상옥 후보자가 수사 검사로 1, 2 수사에 모두 참여했고, 본인 스스로가 당시 안상수 검사로부터 추가 고문경관이 있다는 걸 듣고 알고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중략)…박상옥 후보자 인사 청문 절차 진행조차 부적절합니다. 스스로 사퇴하는 게 박종철 군에 대한 도리입니다.]

[서기호 의원 (정의당) : 대법관은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아야 합니다. 중대한 사건에서 실체적 진실을 덮었던 사람을 국민이 어떻게 존중하고 믿고 승복하겠나.]


여당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박상옥 후보자가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당시 수사 검사로서 사건 축소와 은폐에 가담했는지 아닌지는 청문회를 열어서 가려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법에 후보자가 지명되면 청문회를 열도록 돼 있는데 그 절차조차 가로막는 것은 비민주적인 처사라는 거죠.

[함진규 의원 (새누리당) : 당사자 만나지도 않고 단정하는 건 권한 남용 아닙니까. 당사자도 없는 상황에서 무슨 근거로 사건을 축소, 은폐했다고 그렇게 말하는 지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예단해서 단정적으로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후보에 대한 예의도 아닙니다. 대단히 잘못됐습니다.]

계속되는 여야의 설전 끝에 인사 청문 특위 첫 회의는 한 시간 만에 정회됐습니다. 여야 간사가 모여 오후에 언제 속개할 것인지 정하려 애썼지만 파행으로 끝났습니다. 특위가 파행된 후 여당 간사인 이한성 의원은 '박상옥 후보자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축소, 은폐 가담 주장에 대한 반박자료'를 냈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1. 1987년 1월, 검사 임관 넉 달 만에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2. 1월 24일 고문관여 경찰관 2명을 기소하면서 1차 수사 마무리 됐다.
3. 3월 초순 선배 검사에게 고문 관여 경찰관이 3명 더 있다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4. 정기인사에서 여주지청으로 발령 나 3월 16일부터 여주지청에서 근무했다.
5. 5월 19일 2차 수사 개시되자 1차 수사 관여했다는 이유로 서울지검에 임시 파견됐다.
6. 5월 27일 대검 중수부로 수사 이관돼서 6월 1일 여주지청으로 복귀했다.
7. 수사팀 말석 검사로 지시에 따랐을 뿐 수사 전반적인 진행상황 파악은 어려운 위치였다.


정리하면 박상옥 후보자가 지시에 따라 1, 2차 수사에 참여하긴 했다, 하지만 말단 검사라는 위치 상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을 뿐 아니라 검찰 수사로 진상이 규명되었기 때문에 축소, 은폐 가담은 사실이 아니라는 해명입니다.

우리나라 헌법 104조는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국회 본회의에서 대법관 임명동의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거죠. 여당이 야당에게 국회법에 인사청문회를 하도록 한 규정에 따라 청문회를 일단 열어야 한다고 하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청문회를 열지 못하면, 대법관 임명 절차는 진행되지 않을 것이고, 그럼 대법관 자리도 계속 공석으로 남을 테니까요.

하지만, 여당인 새누리당이 야당에게 왜 발목을 잡느냐고 떳떳하게 비난하기는 어렵습니다. 지난 2006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효숙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했습니다. 최초로 여성 헌법재판소장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당시 야당인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이 임명 절차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본회의 표결 거부에 나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 단상을 점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전효숙 후보자가 헌법재판소의 업무 공백을 우려해 스스로 지명 철회를 요구하면서 끝이 났죠. 지금 새누리당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게 곱게만 비치지 않는 이유입니다.

새누리당도 할 말이 있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주임검사는 신창언, 형사 2부 부장검사였습니다. 수사 진행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사람입니다. 신창언 검사는 1994년 9월부터 2000년 9월까지 헌법 재판관을 지냈습니다. 몇 번의 당명 변경을 거쳐 지금의 새누리당이 된 당시 민자당이 추천한 인물이었습니다. 새누리당은 정작 수사를 지휘했던 주임검사를 헌법재판관에 임명할 때는 괜찮았는데 이번에 말단 검사를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데는 이렇게 민감하냐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야당은 당시에는 청문회 제도가 없어서 지금과 같은 검증이 불가능했다고 이야기하긴 하지만요.
박상옥 대법관 후보
인사청문회 단골 소재는 위장전입, 병역문제, 부동산 투기 등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그런 게 아닙니다. 사법 정의를 지키는 대법관은 어떠한 사람이어야 하는 지를 문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 북에 이런 말을 썼습니다.

"대법원은 헌법재판소와 더불어 시민의 인권을 옹호하는 최후의 보루다. 헌재는 특수한 사건에서만 위헌 여부를 판단하지만 대법원은 우리들의 모든 일상과 관련된 사건의 최종심이다. 사실 그 영향력은 헌재와 비교가 안 되는 중대한 인권기관이다. 그런 기관에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권유린 사건의 은폐와 관련된 담당 검사가, 세월이 흘렀다 하여 대법관으로 금의환향한다? 이건 지하의 열사들이 관을 뚫고 나올 일이다."

예정된 청문회 날짜는 오는 11일입니다. 그날 청문회를 열기 위해서는 증인, 참고인 출석 요구서를 오늘 보내야만 합니다. 오늘 오전 야당 간사인 전해철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봤더니 "사퇴를 요구했던 어제 입장에서 달라진 게 없다. 청문회 날짜는 다시 잡으면 되는 일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문회 보이콧까지 불사한다는 야당, 박상옥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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