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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때리고 가두고' 가혹행위 시설 폐쇄에 장애인 보호자가 반대하는 까닭은

해마다 불거지는 장애인 시설 가혹행위, 폐쇄만이 정답은 아냐

[눈사람] '때리고 가두고' 가혹행위 시설 폐쇄에 장애인 보호자가 반대하는 까닭은
▲ 인강원 정문에 ‘거주인 보호자 일동’ 이름으로 “우리는 인강원 시설폐쇄와 전원조치를 강력하게 반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과 피켓들이 걸려있다. (출처 : 인강재단공동대책위원회, 장애인 인터넷신문 비마이너)

 
<SBS 뉴스는 여러분의 조그만 정성을 모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전하는 ‘눈사람’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사를 보시고 기부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었습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을 정성껏 전하겠습니다.>
 
지난달 6일, 서울 도봉구의 한 장애인 거주시설 앞에서 대치가 벌어졌습니다. 올해 초 입주 장애인들을 폭행하고 지원금 수천만 원을 횡령한 혐의로 이 시설의 원장 63살 이 모 씨 등 세 명이 구속되면서 서울시가 시설 폐쇄를 추진했는데 폐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시설 대문을 잠가버린 겁니다. 이들이 시설 문을 걸어 잠그면서 시설 측에 항의 서한을 전달하려고 했던 장애인 관련 단체들은 시설 안으로 발을 들이지 못했습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지난 10월 말에도 똑같은 상황이 있었습니다. 서울시와 도봉구가 두 차례 현장을 조사했지만 시설 출입문은 폐쇄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꽁꽁 잠겨있었습니다.
 
폐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이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의 가족들이었습니다. 자신의 가족이 머무는 곳에서 가혹행위와 인권 침해가 벌어져 폐쇄 조치가 내려졌는데 남도 아닌 가족들이 폐쇄 반대에 나선 겁니다. 얼핏 보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주장이지만 이 주장의 배경에는 장애인 시설을 둘러싼 가족들의 해결되지 않는 고민과 오래된 아픔이 깔려있습니다. 가족들의 주장은 쉽게 말해 시설을 폐쇄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간단합니다. 시설에 대한 폐쇄와 이전 조치가 시행되더라도 거주 장애인들에 대한 보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겁니다. 시설에 거주하고 있던 거주자는 모두 59명이었습니다.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10년이 넘게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시설이 폐쇄되더라도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생활했던 거주자들을 최대한 함께 지내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59명 모두를 다른 시설로 옮기는 것이 어렵다면 그보다 적은 인원이라도 같이 옮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 가혹행위 불거진 시설 폐쇄하더라도…보호자들에게는 '산 넘어 산'

가족들이 이렇게 요구하는 배경은 간단합니다. 시설에 어렵게 적응한 장애인 가족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때, 어떻게 생활할지 불안한 겁니다. 이 시설에서 폭행을 당했던 피해 장애인 6명이 지난 5월 다른 시설로 보내졌지만 이 가운데 2명은 몇 달 만에 다른 시설로 보내졌습니다. 처음 옮겨진 곳에 잘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본 보호자들이 시설 폐쇄 조치에 반발하고 있는 셈입니다. 입주 장애인 가족들은 "시설이 저지른 행위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입주자들의 조급한 이전 조치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서울시 측은 이에 대해 "보호자들과 상의하고 있고 거주자들이 옮길 시설에 대해 견학을 제시하는 등 소통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장애인시설 가혹행위
▲ 최근 '개집 감금' 의혹이 불거진 전남 신안군 장애인 거주시설의 개집 사진(출처 : 국가인권위원회)

얼마 전 '개집 감금'으로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줬던 전남 신안의 장애인시설 폐쇄 조치가 조금은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런 대목입니다. 과연 '전격적인 시설 폐쇄와 거주 장애인 이전'이 대책이 될 수 있을까 우려가 들 수밖에 없습니다. 해당 시설의 인권 침해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전남장애인인권센터의 박수인 팀장은 "신안군청에서 시설 거주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어 위탁 공고 중에 있는데 현실적으로 빨라야 내년 초에나 위탁될 것이라고 답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른 시일 내에 임시 복지시설로 옮겨 상담 치료를 할 예정이지만 그 다음에 옮길 시설이 마땅치 않은 겁니다. 그나마 인권위 발표와 언론 보도로 해당 시설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진 상황에서 신안군청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 다행이지만, 앞으로 적응 과정은 또 다른 과제로 남을 것이 명확해 보입니다. 시설 폐쇄와 거주민 이전이 모든 것을 해결할 만사형통은 아닌 셈입니다.

● 시설 폐쇄와 거주민 이전보다 장애인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먼저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월 전국 장애인 거주시설 602곳을 조사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장애인 시설 44곳에서 인권침해 의심사례가 발견됐고 이 가운데 인권침해 정도가 심각한 것으로 보이는 시설 8곳에 대해서는 검경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입니다. 세부적인 내용인 시설 안전과 편의시설, 청결 상태 등과 관련해서는 무려 1400개의 지적 사항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10월 28일 국무회의에 보고된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보호 강화대책'은 이 내용들을 바탕으로 마련됐습니다. 가혹행위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해 장애인을 신체·성적·정서적으로 학대하거나 유기·방임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또 인권 침해가 발생한 시설에 대해서는 행정처분 외에 최대 1년 동안 운영비를 깎거나 시설 종사자의 기본금을 10% 줄이는 조치도 추가됐습니다. 학대 신고 포상제와 인권 실태 전문 조사인력 확충도 포함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조치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인권침해가 이미 벌어진 뒤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겁니다. 이번 신안군 장애인 시설처럼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섬이나 지방의 시설의 경우는 특히 그렇습니다. 결국 장애인 시설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일상적인 관리와 점검이 가장 선행돼야 할 부분이라는 지적입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아직 높지 않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인력 문제도 제기됩니다. 장애인 거주시설에 종사하는 근무자들의 근무 환경이 열악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지난 2일 국가인권위 주최로 열린 '장애인거주시설 종사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최종보고회'에서 장애인시설 근무자들의 16%가 연차유급 휴가를 내지 못하고 있고 사용하지 못한 휴가에 대해서 81%의 근무자들이 수당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성 종사자들의 경우 육아휴직은 현실적으로 거의 어렵고 특히 장애인들의 폭행에 일상적으로 노출돼있다고 답한 근무자들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누구나 꺼릴만한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장애인들을 돌보는 고충이 아주 심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훈육 차원의 체벌이 현실적으로 사라지기 어렵다는 주장이 이런 맥락과 닿아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장애인시설 가혹행위
▲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지난 3월 다룬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1987년 일어난 사건으로 장애인 531명이 노동과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숨졌다.

보건복지부의 내년 장애인거주시설 운영 지원 예산은 올해보다 194억 늘어난 4천2백80억여 원으로 확정됐습니다. 약소 계층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은 다행입니다. 예산 확충과 사회적 관심이 장애인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구조적인 배경으로 확대된다면 우리 사회의 장애인들이 보다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가혹행위 논란이 일었던 전남 신안 장애인시설의 장애인들은 어제(3일) 날짜로 신안군이 관리하는 임시 거주시설로 모두 옮겨졌습니다. 이번 사태를 처음으로 조사해 제기한 전남장애인인권센터는 임시 거주시설에 들어간 장애인들과 그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어떤 시설로 가길 원하는지' '가족과 함께 지내길 원하는지'등 구체적인 요구에 대한 조사에 들어간다고 밝혔습니다. 지난번 '신안 염전 노예'때 피해자들의 이전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던 신안군도 이번에는 따로 전담팀까지 구성해 발 벗고 나서는 모양새입니다. 부디 이번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 조치와 더불어 우리 사회 장애인들의 거주 환경이 개선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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