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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쥐를 먹는 아이" 사진 뒤에 숨겨진 상처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

[취재파일] "쥐를 먹는 아이" 사진 뒤에 숨겨진 상처
쥐를 먹고 있는 어린 아이. 이 사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국내 한 언론사가 캄보디아 취재를 나간 NGO 직원에게 쥐를 먹는 아이의 모습을 담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현지에서는 부족한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쥐를 먹는 것이 당연한 식습관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사진은 ‘쥐를 먹는 미개한 식습관이 있는’ 지역의 모습을 묘사한 기사와 함께 신문에 보도됐습니다. 문화적인 상대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문화와 국가를 매도한 겁니다. 왜곡 보도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국내 한 방송사와 모 NGO는 에티오피아의 한 시골마을로 촬영을 나갔습니다. 이 마을에는 위생적인 식수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제작진은 이런 문제에 대해 알리려고 했습니다. 촬영을 시작한 제작진은 마을 주변의 작은 연못에 현지 아동을 데려가 물을 마시는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아이가 거부했지만 물이 없어 연못의 더러운 물을 마시는 현지 상황을 극대화하기 위해 촬영을 강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연못은 소나 염소 등 가축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현지인들조차 식수로 마시 않는 물이었습니다. 또 현지 아동을 인터뷰하는 동안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눈물을 흘릴 것을 거듭 종용했고, 아이가 울지 않자 결국 일부러 아이를 꼬집어 눈물을 흘리게 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극단적인 사례들이지만 이런 보도는 개발도상국 아동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알리고 그들의 권리를 증진하는 데 이바지했을지는 몰라도, 취재 과정에서 아동의 권리를 명백히 침해한 경우입니다. 저도 ‘개발도상국 아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장애가 있거나, 눈에 보이는 심각한 피부질환이 있거나, 갈비뼈가 앙상한 흑인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국내 모금방송이나 광고사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고정적인 이미지들이기도 합니다. 이런 관습적인 연출이나 과장된 보도들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과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월드비전, 유니세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프렌드아시아, 코피드 등 7개 단체는 지난달 ‘아동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개발도상국 아동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자극적이고 왜곡된 보도를 지양하고 사실에 입각한 보도를 돕기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겁니다. 이 가이드라인은 해당 단체들이 지난 3월부터 논의를 거친 끝에 발표된 것으로, 그동안 단체별로 제각각이던 취재 원칙을 하나로 통합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선의를 기반으로 한 보도가 오히려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보호해야할 대상이자, 엄연한 권리의 주체인데 취재 과정에서 종종 이 사실을 잊기 때문입니다. 스무 쪽 분량의 이 가이드라인을 펼쳐보며 저 역시 취재 현장에서 ‘선의’라는 이유로 무리한 인터뷰를 시도하지는 않았는지, 과장된 사례를 들어 기사를 작성한 적은 없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누군가 ‘너는 그런 적 없느냐?’고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 것이 소중하고 기쁘게 생각됩니다. 더 이상 언론종사자들이 낯 뜨거워지지 않도록, 이 지침들이 아동들의 권리를 보호할 최소한의 울타리가 됐으면 합니다. 극적인 장면이 아니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개발도상국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가장 잘 전달해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기자와 PD들이 한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이드라인이 제시한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해 미디어 관계자들이 지켜야 할 ’10가지 기본 원칙’을 소개합니다.

1. 아동의 존엄성과 권리 존중
2. 미디어 관계자의 사명과 책무 준수
3. 아동 및 보호자의 의사 존중
4. 아동의 사생활 보호
5. 적절한 촬영 환경 보장
6. 촬영으로 인한 사후 피해 예방
7. 사실에 기반을 둔 촬영
8. 아동 및 보호자의 능동적 묘사
9. 현지 지역 문화의 존중
10. 국내외 협력기관 및 직원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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