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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영리병원이 우려되는 진짜 이유는… ②

미미하지만 치명적인 0.1%의 차이에 대해

[취재파일] 영리병원이 우려되는 진짜 이유는… ②
정부가 제주도에 영리병원 설립 허가를 적극 검토한다고 합니다. 더불어 제주도 외에 다른 8개 경제자유구역도 영리병원 허가 조건을 완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보건의료단체와 시민단체, 일부 재야 의원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영리병원 허가가 의료 영리화를 가속화하고 의료비 폭등을 불러 일으킬 거라는 겁니다. 정부는 영리병원이 의료비 폭등이나 의료 민영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반박합니다. 도리어 영리병원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같은 정책을 놓고 양측간의 입장이 완전히 다릅니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 걸까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걸까요?

● 영리병원, 누구냐 넌

영리병원은 말그대로 영리법인이 설립한 병원을 뜻합니다. (취재파일 : 의료 영리화, 의료 민영화, 영리병원, 그리고 투자활성화 대책)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병원을 차리는 겁니다. 주주를 모아 대규모 자본을 끌어올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환자 치료 보다는 주주들의 이해 관계에 따라 운영됩니다. 때로 배당을 해야 하기에 의료행위로 수익을 많이 남겨야 합니다. 현재 우리 나라의 모든 병원은 비영리병원입니다. 만일 정부 계획대로 다음달 제주도에 영리병원 설립이 허가된다면 우리 나라 최초의 영리병원이 생겨나게 됩니다. ('영리'병원이 설립되는데 의료 '영리'화가 아니라는 정부의 주장은 '술 마시고 운전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는 발언과 참 비슷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영리병원 하나 생기는 걸 가지고 왜 이렇게 떠들썩 할까요

● 병원 인듯, 병원 아닌, 병원 같은 너

정부가 제주도에 허가하려는 영리병원은 큰 특징이 있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이하 특별법)> 제 192조 4항을 보면 "외국의료기관은 국민건강보험법 제 42조 1항에 따른 '요양기관' 및 의료급여법 제 9조 1항에 따른 '의료급여 기관'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돼 있습니다. (요양기관 다시 말해 병원도 아니고) 의료급여 기관 즉 건강보험 적용 대상 의료기관이 아니라는 겁니다.

현재 우리 나라의 모든 병원은 예외 없이 국민건강보험을 의무적으로 받아줘야 하고, 건보 적용 항목 즉 급여 항목인 의료 행위에 대해서는 건보 수가에 따라 가격을 책정해야 합니다. 바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입니다. 그런데 제주도의 영리병원은 병원인데도 당연지정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우리 나라에 당연지정제 대상에서 예외가 되는 의료기관이 생긴다... 이 자체만 놓고 보면 정색할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는 일반 시민들도 이 영리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게 왜 문제가 되느냐고요? 

● 흔들리는 의료체계의 축…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우리 나라 건강보험 체계의 가장 중요한 두 축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와 전 국민 건강보험 의무가입제도 입니다. 이 두 가지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하면서도 양질인 의료 서비스가 가능해집니다. 그런데 당연지정제가 위태로워지는 경우가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당연지정제 자체를 축소 또는 폐지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기존 제도와 상관없이, 당연지정제 적용을 받지 않는 병원을 늘리는 것입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대해 모두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라서 대한병원협회나 (극히) 일부 의사는 지난 2002년과 올해 두 차례에 걸쳐 헌법 소원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의사의 직업 자유와 평등권, 의료 소비자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겁니다. 헌법재판소는 두 헌법 소원 모두 재판관 전원 만장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연지정제가 의료인 평등권과 환자 선택권을 침해한다고 볼수 없으며 의료보장체계 기능 확보 및 국민의 의료보험수급권 보장이라는 입법 목적을 달성키 위한 적절한 수단"이라고 본 겁니다. 합헌 결정도 나온 마당에 당장 당연지정제 자체를 손대거나 폐지하는 건 매우 어려울 것이 자명합니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제주도의 영리병원처럼, 당연지정제 예외 적용을 받으면서도 우리 국민이 이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들이 생겨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지정제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병원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을 의무화' 하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당연지정제가 시나브로 유명무실해지게 됩니다.

●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궐(?) 하리라. 영리병원 시나리오

상식적인 시장원리에 근거해 기술해보겠습니다. 제주도 특별자치구역에 영리병원을 신청했던 싼얼병원이 자리잡아 어느 정도 성과가 나기 시작합니다. 이걸 보고 있던 해외의 한 의료기업이 우리 나라 대형병원과 손 잡고 종합병원을 설립합니다. 그런데 박리다매로는 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의료보험 체계가 가격은 부담이 적으면서도 서비스의 질은 매우 높은 편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고품질 전략을 짜게 됩니다. 대규모 투자금도 있겠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신경외과등 각 분야 최고 명의들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스카웃 합니다. 비싼 연봉을 주고 최고 실력자들을 데리고 왔으니 진료나 수술비를 비싸게 책정해야 수지가 맞습니다. 건강보험 수가 적용을 받지 않으니 그냥 병원 마음대로 경영 논리에 따라 가격을 결정하게 됩니다.

인천이라 수도권이고 해당 분야 최고 전문의도 있으니 경제력이 있는 재벌이나 부유층들 부터 자연스럽게 해당 영리병원을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의료서비스는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진단 한번, 수술 한번의 의미가 매우 큽니다. 위중한 병에 걸리거나 중요한 수술일 수록 누구나 우리 나라 최고 전문가에게 진료와 수술을 받고 싶어합니다. (지금도 5대 대형병원에 환자들이 몰리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재벌이나 부유층이 아니더라도 집안에 누군가 아픈 사람이 생기면 집 팔고 대출을 받아서라도 특정 영리병원의 특정 의사에게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쯤되면 보험사들이 슬슬 영리병원에 특화된 민간 의료보험 상품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의료비가 비싼 만큼 당연히 보험료도 비싸집니다. 울며 겨자먹기로 건강보험 외에 민간 의료보험에도 가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건강보험에 불만이 커져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의료보험 부담이 2배로 늘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도 민간 실손보험 시장 규모가 30조원이 넘어 사실상 의료보험이 2중 구조화 돼 있지만 영리병원용 민간보험은 장담컨대 현재 실손보험보다 보험료가 훨씬 더 비쌀 수 밖에 없습니다.)

영리병원을 위한 민간보험도 생기고 시장성(?)까지 검증되고 나면 인천 이외에 다른 경제자유구역에도 비슷한 형태의 영리병원들이 생겨납니다. 점점 더 당연지정제는 유명무실해지고 건강보험 의무가입의 토대도 약해집니다. 기존 제도를 손대는 것도 아닌데 영리병원이 몇 개 생겨나는 것 만으로 기존의 건강보험당연지정제와 건강보험 의무가입 체계가 조금씩 무력화됩니다. (마냥 괴담 수준의 시나리오라고요? 멕시코에서 94년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한 이후...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 났습니다. )

● 도라 도라 도...아니 완화...완화...완화...
 
물론 이런 전망은 아직은 시나리오에 불과합니다. 정부가 영리병원을 끝까지 밀어붙일 지 여부도 지켜봐야 하고, 추진 과정에서 안전장치가 마련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흐름을 보면 보건의료 시민, 사회 단체와 국민들의 불안감이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주도들 비롯한 경제자치구역에 영리병원 도입이 최초로 논의됐던 건 10년 도 더 된 얘기입니다. 지난 2002년에 경제자유구역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경자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이 허용됐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외국인 환자만을 상대로 허가였습니다. 경자구역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2004년에 내국인 진료로 범위가 넓어졌고, 2007년에는 국내 의료법인의 경자구역내 영리법인 참여가 가능해졌습니다. 2008년도에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아예 국내 영리병원 도입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가 검토되기도 했고 2008년에는 외국인 환자 유인 알선, 의료법인 부대사업 확대가 허용됐습니다. 2012년에는 외국 자본 50%, 외국 의료진 10% 이상, 내국인 환자 100% 진료가능으로 구체적인 시행규칙이 제정됐습니다.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고 계속해서 규제가 완화돼 온 겁니다.

정부는 규제를 더 풀어서라도 영리병원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야 성장동력 확보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정부는 종합편성채널을 허용해 줄때도, 4대강 사업을 벌일 때도 똑 같은 키워드와 똑 같은 논리를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정책이 추진된 이후의 실질적인 성과에 대해서는 도무지 들리는 바가 없습니다.

● 선의로 될 일인가…대책 없는 정부

정부가 정말 우리 나라 의료 체계의 근간을 지키면서 일자리 창출과 성장동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한다면 (그런 목표가 가능한 건지는 개인적으로 매우 회의적입니다만) 현행 의료 체계가 훼손되지 않도록 적절한 규제와 안전장치를 마련해 해명하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영리화가 아니다, 민영화가 아니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 복지부 담당자는 기자 회견장에서 '의료 민영화 우려가 크다'는 기자의 질문에 '정책의 선의를 믿어달라'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흔히 빚 보증을 거절할 때 이런 표현을 쓰곤 합니다. "보증 서 달라는 사람 자체는 믿지만 그 사람의 상황은 못믿겠다". 마찬가지로 복지부 공무원들을 못 믿는게 아닙니다. 어디로 튈지 모를 영리병원을 일단 허용해주고 난 이후의 상황을 과연 복지부와 정부가 통제하고 규제할 수 있는지가 의문인겁니다.

위에 기술한 시나리오 외에 한미 FTA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현재 한미 FTA는 보건 의료 서비스를 포함해 교육, 방송, 사회서비스등 44개 공공 분야에 대해선 외국인 투자를 제한 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은 공공 분야 마저도 한미 FTA의 적용을 받습니다. 다시 말해 영리병원이 한번 들어선 이후 부작용이 나타나더라도 역진방지 조항등에 의거해 이를 쉽게 되돌리거나 규제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 미미하지만 치명적인 0.1%의 의미

의료 민영화의 폐해를 얘기할 때 흔히 미국의 예를 듭니다. 미국은 전체 GDP에서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15%나 됩니다. OECD 평균 9%를 훨씬 웃도는 수치입니다. 중산층 이하일 수록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렵습니다. 의료 민영화 즉 영리병원과 민간 의료보험 체계가 높은 의료비 부담의 한 원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미국 병원의 대부분이 영리병원이라서 의료비가 비싸고 가계가 파탄나는게 아닙니다. 미국 병원의 60%는 자선병원 등 비영리병원입니다. 22%가 공공병원입니다. 영리병원은 고작 전체의 18%에 불과합니다. 비율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리병원 도입으로 의료의 기반이 흔들리고 그에 따라 당연지정제와 전 국민 의료보험 의무가입제의 토대가 흔들리는 순간 우리 나라 의료 체계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한 공영방송에 출연해 "영리병원이 생겨도 99.9%는 기존 건보체계를 그대로 적용받는다. 의료 민영화 우려는 논리의 비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논리의 비약일 뿐일까요? 최 부총리는 그 0.1%의 의미에 대해 정말 모르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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