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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낚시'에 낚이지 않기 위한 어떤 원칙

[취재파일] '낚시'에 낚이지 않기 위한 어떤 원칙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14.08.01 09:2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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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낚시에 낚이지 않기 위한 어떤 원칙

-'여고생 성폭행 동영상'?

2007년 즈음엔 UCC(user created contents)가 인기였다. 관련 사이트도 많았다. 2007년 2월 5일, 한 UCC 전문 사이트에 '여고생 성폭행 동영상'이란 제목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길이는 40초 정도.

늦은 저녁, 어느 으슥한 골목길 가로등 아래에서 남자 2명이 교복을 입은 여학생을 강제 추행하는 내용이었다. 아래와 같은 글도 첨부돼 있었다.(맞춤법 틀린 것도 그대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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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어제 집 뒷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길래
애들이 장난치는줄 알았는데 알고보니까
남자 두명이 여학생 한명을 때려서 눕히고
옷을 벗기려고 하고 몸을 만지려고 하더군요

누가 오니까 도망가던데
내려가보니까 학생 혼자 남겨졌더군요
걱정되서 신고해준다고하니까
절대 하지마라면서 뛰어갔습니다.

지금은 그냥 보낸걸 정말 후회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잇는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난 일이라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정말화납니다. 우리 네티즌들이 힘을 모아서 범인을 찾아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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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조회수는 6만이 넘었고, 다른 사이트로 퍼져나갔다. 충격과 분노의 댓글이 넘쳐났고 범죄 현장을 목격하고도 촬영만 하고 있었다며 게시자를 성토하기도 했다.

당시 사건팀 기자였던 나는 이 영상을 소재로 기사를 썼다. 제목은 <'성추행 목격 주장 동영상' 인터넷 유포 파문>(기사 보기). 영상 자체만으로는 진위를 판단할 수 없어 인터넷에 악성 콘텐츠가 범람하자 경찰이 특별 단속에 나섰다는 내용을 주로 담아 썼다.

경찰은 동영상 게시자의 이메일 주소를 추적해, 하루만인 2월 6일 고등학생 6명을 붙잡았다. 조사 결과 자작극으로 확인됐다.

남학생 1명은 교복 빌려 입고 여학생 역할, 다른 2명은 추행 장면 연출, 여학생 1명은 촬영 담당, 나머지 2명은 편집이나 소품을 담당한 듯. 재미 삼아 이런 영상을 만들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고 들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조사받고 귀가한 학생들은, 두번째 동영상을 올렸다. 제작과정을 담은 3분 40초 분량의 영상이었다. 이 영상엔 변장하고 현장으로 이동하는 장면에 처음 영상을 보도했던 SBS 등 뉴스 화면도 담겨 있었다. 이들은 첨부한 글을 통해 "네티즌들에게 일침을 가하기 위해 낚시 영상을 찍었다"며 "자극적인 정보도 비판 의식을 가지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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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스럽게도 여러분이 보신
'여학생성추행동영상'은 연출입니다.
그리고 동영상에서 성추행 피해자인
여고생은 여장남자입니다.
관심을 갖고 계셨던 여러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촬영과정을 공개합니다.

동영상 ucc 같은 뉴미디어를 미디어로
인식하지 못하는 네티즌들에게 일침을
가하기 위해 낚시영상을 찍었으며,
'000 TV 여중생집단폭행동영상 사건'처럼
뉴미디어가 기업 또는 정치 세력에 의해
상업적,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려고 했습니다.
한편, 낚시로 인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물론 자극적인 영상으로 분노와 동정심을
일으킨 것에 대해선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극적인 정보도 비판 의식을 갖고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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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제작 과정 영상을 올린 건 경찰 조사를 받은 다음, 혹시나 있을지 모를 처벌이나 불이익이 두려워 사후에 포장한 게 아니었을까. "뉴미디어를 미디어로 인식 못하는 네티즌에게 일침을 가하고 싶었다"는 의도였다면서 굳이 성추행 장면을 연출했던 이유는 뭐였나. 성추행 범죄 피해자들이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한다는 걸 알고나 있는지...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두번째 영상의 존재를 알게 된 경위도 석연치 않았다. 학생들이 귀가한 뒤 영상을 올린지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 이메일로 두번째 영상이 왔다고 알려줬다. 누구였을까. 당시 영상을 만들어 조사받았던 학생들 중 1명이거나 친구이 아니었을까. 관련 기사를 썼던 기자에게 제보자인 양 메일을 돌린 것 같았다. 철없는 것 못지 않게 몹시 영악한 아이들이었다.

경찰은 성추행 범죄 장면을 연출, 촬영한 뒤 인터넷에 올렸다는 학생들의 인식이나 방식 모두 문제는 있으나 딱히 적용할 만한 혐의는 없어 입건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조사받고 돌아간 뒤 두번째 영상을 올렸다는 걸 알고는 (내가 알려줬다) 어이없어 했다.

2월 7일에 두번째 기사를 썼다. 제목은 <'여학생 성추행 동영상'은 고교생 자작극>(기사 보기 )


-대부분이 낚였던 이유는...

SBS 말고도 몇몇 매체에서 이 영상 관련 기사를 썼는데 사실 확인을 제대로 했던 곳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학생들 낚시질에 죄다 낚였던 것이다. 낚이지 않았다는 걸 그때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확인만 제대로 했으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검증도 하지 않고 선정적으로 문제의 동영상을 다뤘다"는 비판을 뭇 매체들과 도매금으로 받았다. 그 비판이야말로 검증 없는 부실 비판이었다고 생각했다.)



-"여학생들 따귀 때리는 여선생"?

7년 전 일을 다시 끄집어낸 건, 7월 28일 유튜브 등에 올라온 영상 때문이다.

"여학생들 싸대기 때리는 여선생"이라는 제목의 이 영상에는, 제목대로, 어느 교실에서 교사가 학생들을 줄세워놓고 차례로 따귀 따리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네티즌들이 큰 관심을 가졌고 수많은 댓글이 달리고 퍼나르기가 있었다.

영상 자체는 충격적이었으나 이상했다. 체벌 금지가 대세인 요즘, 저렇게 대놓고 학생을 때리는 교사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각종 스마트 디바이스가 발달한 이 시기에 촬영한 영상이라기엔 화질이 썩 좋지 않았다. 과거 촬영했거나 보관 중이던 영상을 누군가 다시 올린 게 아닐까 싶었다.

여러 경로로 확인해보니, 역시 의심대로였다. 2009년 영상이었고 이 영상이 유포되면서 해당 교사는 중징계를 받았다고 했다. 학교 측은 그때도 많은 비난을 받았다며 난처해했다. 교사 체벌이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5년 전에 처리가 끝난 일을 다시 부각시킬 만한 가치가 있을까. 설사 가치가 있다 하더라도 그런 정도의 확인도 없이, 언제 어디서의 영상이라는 최소한의 팩트도 없이, "이런 영상이 화제다, 네티즌들은 000, @@@ 반응을 내놓았다"고 쉽게 기사써도 될까.


-"멋이란 타고나는 것인가봐요"?

7월 중순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아우디 차주의 미담이 올라왔다. 제목은 "멋이란 타고나는 것인가봐요"

자신의 목격담이라는 이야기는, 손수레를 끌고 가다 주차된 아우디 차량 옆면을 긁은 할머니와 손주에게 연락 받고 온 차 주인이 오히려 통행에 방해가 돼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수리비도 받지 않고 가버렸다는 내용이었다. 소식을 접한 아우디코리아 측은, 차주가 나타나면 수리비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했고 이 훈훈한 얘기에 많은 이들이 감동 먹었다는 것. 여러 매체에서 이 얘기를 기사로 썼다.

'사실이면 훈훈하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뒤부터는 그 내용만으로 기사가 올라왔다. 게시판 글에서 확인된 내용은 아무것도 없었다. 작성자의 일방적 주장 외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다른 목격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차주가 누구인지, 할머니나 손자는 실존 인물인지 확인되지도, (기자가) 확인하지 않았다. "인터넷에 이런 얘기가 돌고 있는데 사실이라면 훈훈하네", 하고 기사로 써야 할까.

(처음 글 올린 이는, 뜻하지 않게 이 사연이 주목받고 기사까지 나면서 오히려 아우디 홍보해준다는 식으로 욕을 먹었다며 원래 글을 내려버렸다.)


-사실 확인의 원칙

방송기자연합회 저널리즘 특별위원회에서 최근 발간한 <방송뉴스 바로 하기>라는 책이 있다. 여기서 언급한 '방송 저널리즘의 7대 문제'에서 첫번째는 '사실 관계 확인 부족'이었다.

"...사실 확인의 원칙은 저널리즘을 연예 오락, 선전 선동, 소설, 예술 등과 구별해주는 중요한 특성이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달라지고 매체가 많아져도 저널리즘이 지켜야 할 기본 원칙, '사실(Fact) 확인'은 달라지지 않았다. 위에 든 사례는, 사실 확인을 위한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경우다. 극단적인 예일 수 있으나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건 큰 문제다.('옥석구분'도 크나큰 문제긴 하지만.) 

"뉴스는 팩트다"는 연예인 연애 특종으로 이름값을 높인 어느 인터넷 매체의 슬로건이고, 최근 "손흥민-민아 데이트"를 먼저 보도한 매체 이름은 아예 '더 팩트'다. 스타 열애를 확인하기 위해 수개월씩 잠복하고 미행하는 그런 모습, 썩 좋아하진 않지만 동영상 하나, 게시판 글 하나 보고 그대로 옮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는, 기자들은, 사실 확인을 위한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 사소하게는 동영상, 게시판 글 하나부터 정부의 공식 발표에 이르기까지, '낚이지 않기 위한' 원칙을 지키고 있을까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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