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객 수가 2만명을 넘어가면서 소원지 위로 또 다른 소원지가 여러 겹 덧씌워졌고 '사랑하는 아들 딸 미안해' 보다 '다음 생에는 다른 나라에서 만나요' 등의 글귀가 눈에 띄었다.
소원지를 붙일 벽면이 부족하자 급히 설치된 2대의 대형 화이트보드에도 '형이 나쁜 어른들과 끝까지 싸워 다시는 슬픈 일이 없도록 할게' 등의 메시지가 붙기 시작했다.
꽃이 채 피기도 전에 지고만 10대 아이들.
고인이 된 학생들의 영정이 모셔진 제단 양쪽에서 시민들이 보낸 추모 문자메시지를 실시간으로 소개하는 모니터 두 대에는 이번 사고에 대한 슬픔 대신 분노를 담은 메시지가 빠르게 올라왔다.
'못된 어른들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ㅠ', '어른들을 용서하지 말거라. 미안하다' 등의 메시지가 적힌 모니터 사이로 수많은 어른들이 영정을 향해 헌화하고 허리를 숙였다.
분향소를 찾은 김명영(66)씨는 "제일 먼저 배에서 탈출한 선장이나 기본적인 정보조차 제공하지 못하는 정부 관료나 모두 어른 아니냐"며 "같은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정원자(64·여)씨는 "배를 소유한 회사 쪽에서 돈을 아끼기 위해 고용한 능력이 부족한 선원들이 죄 없는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탄식했다.
친구를 떠나보낸 학생들도 분노하고 원망했다.
교복 차림의 엄모(18)군은 "우리나라는 항상 소를 잃어야 외양간을 고친다"며 "배가 문제가 있으면 미리 고치고 조심해야하는데 왜 꼭 이런 비극이 일어나야 정신을 차리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모(18)양은 "각자 자기가 맡은 일만 제대로 했어도…"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운선 단원고등학교 학생건강지원센터장은 "사고 이후 첫 등교를 한 고3 학생들은 '구조하는 어른들은 아무것도 못한다가 아니라 아무것도 안한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이같은 내용이 담긴 상담 결과를 공개했다.
슬픔이든 분노든 저마다 진심으로 못 다 핀 꽃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는 조문객들이 몰리면서 실내체육관 앞에는 이날도 100m가량 긴 줄이 늘어섰다.
퇴근시간 이후에는 가족단위 조문객들과 학원수업을 끝낸 학생들의 조문행렬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저마다 눈물을 훔치며 조문행렬에 합류한 시민들은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애뜻한 메시지를 게시판에 붙인 뒤 무거운 발걸음으로 귀가했다.
분향소를 연 전날부터 이날 오후 10시 30분 현재까지 4만여명이 다녀갔다.
(안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