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두 달 전에 마음 다잡고 공부할테니까 지켜봐달라고 했는데…"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로 실종됐다가 끝내 선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단원고등학교 2학년 세르코프 빌라체슬라브(17)의 아버지 어모(43)씨는 아들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도 안산 한 장례식장에서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습니다.
오늘(23일) 긴 이름 대신 '슬라바'라는 애칭으로 불린 그의 빈소에는 짧은 머리를 단정히 옆으로 넘긴 채 넥타이를 맨 파란 눈의 슬라바가 미소 짓고 있는 영정이 조문객을 맞고 있었습니다.
8년 전 이주민센터에서 슬라바를 처음 만나 한국말을 가르친 선생님들은 영정 속 그를 보고 오열하다가 조문도 하지 못한 채 부축을 받으며 빈소를 빠져나왔습니다.
어씨는 1996년 부산 해운대로 여행 온 러시아인 아내를 만나 결혼했지만 우리나라의 다문화 가정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부담스러워 아내·아들과는 2006년 10월부터 한국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이듬해 3월 4학년으로 안산의 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까지 이주민센터·코시안의 집 등에서 한국말을 배운 슬라바는 러시아어, 영어까지 3개 국어를 구사하며 한국말이 서툰 어머니의 한국어 교사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그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빈소에 앉아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한없이 영정을 바라봤습니다.
한국에 온 직후부터 수영을 배운 슬라바는 키가 180㎝에 달하는 등 체격이 다부져 코치에게서 "수영선수로 소질이 있다"는 말까지 들었지만 두 달 전 공부에 전념하겠다며 수영을 그만뒀습니다.
어씨는 자신을 향해 밝게 웃으며 "지켜봐달라"고 말한 당시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개교기념일을 맞아 빈소를 찾은 인근 고등학교 3학년 이모(19)군은 "같은 중학교를 다녔는데 수업이 끝나면 매일 함께 PC방을 다닐 정도로 친했다"며 "성격이 좋아 나 말고도 슬라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라며 흐느꼈습니다.
슬라바는 세월호에서 반 친구 6명과 함께 배정된 방의 방장을 맡았지만 21일 끝내 선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로 알려진 같은 반 정모 군도 옆방 방장을 맡아 슬라바와 정 군이 다른 친구들을 먼저 대피시킨 뒤 늦게 빠져나오다가 사고를 당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편 슬라바 말고도 각각 일본인 어머니와 중국인 어머니를 둔 다문화가정 학생 2명도 여전히 실종 상태여서 슬라바의 빈소를 찾은 이주민센터, 다문화가정지원센터 직원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