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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의 SBS 전망대] "'사랑'의 사전적 정의, 성소수자들에 차별"

대담 : 국립국어원 황용주 박사, 권예하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 한수진/사회자:
지난 2012년 대학생 5명이 국민신문고를 통해서 사랑의 정의를 바꾸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남녀관계를 강조하는 사랑의 사전적 정의가 성소수자들에게 차별이 된다고 문제를 제기한 거고요. 국립국어원은 이를 받아들여서 사전적 정의에서 ‘남녀 관계’라는 표현을 삭제 했는데요. 그런데 최근 이 사랑의 사전적 정의가 2012년 이전으로 다시 되돌아갔다고 하네요. 어떤 배경일까요. 먼저 국립국어원의 설명부터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국립국어원 황용주 박사와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황용주 박사 / 국립국어원:
안녕하세요.

▷ 한수진/사회자:
사랑이라는 단어 뿐 아니라 연애, 애정, 연인, 애인 이렇게 5개 단어의 뜻풀이가 2012년에 바뀌었는데요. 그런데 최근에 다시 바뀌었어요. 언제 바뀐 건가요?

▶ 황용주 박사 / 국립국어원:
2014년 1월 말에 바뀌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어떻게 바뀐 건가요?

▶ 황용주 박사 / 국립국어원:
사랑의 뜻풀이는 2010년-2012년에 걸쳐 저희가 포괄적인 의미로 사랑 관련된 단어의 뜻풀이를 수정했는데. 수정된 단어 뜻풀이가 사랑의 본질적이고 전형적인 뜻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 되었습니다. 저희가 표준국어대사전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표준국어대사전 정보보완심의라는 것을 개최하는데요. 그런 심의를 통해서 사랑과 관련된 단어들의 뜻풀이를 언어학적이고 사전학적인 관점에서 다시 한 번 재점검하게 된 것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사랑의 뜻은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서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이었는데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이렇게 바뀌었고요. 연애의 뜻은 ‘연인관계의 두 사람이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이었는데, 바뀐 후에는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 이렇게 바뀌었어요. 결국 남녀관계라는 점이 강조 되었네요?

▶ 황용주 박사 / 국립국어원:
남녀관계를 강조했다기보다는 저희가 자료들을 검토해보니까, 저희 뜻풀이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의미를 세부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라는 지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료들을 검토해보니 실제적으로 많이 쓰이는 것들을 사전에 올리는 것이 타당하다는 전문가 자문의견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받아들여서 고치게 된 겁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런데 그 지적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서 나온 건가요?

▶ 황용주 박사 / 국립국어원:
저희 내부하고, 그리고 또 의견을 다양하게 주는 경로가 있습니다. 사전에는 ‘사전 의견보기’라는 항목이 있는데, 의견 올리는 항목하고 민원이라든지 이런 부분들도 있고. 국어생활 종합상담실이라고 해서 온라인이나 전화로 국어에 대한 궁금증이나 이런 것들을 물어보는 곳이 국어생활 종합상담실인데 그런 곳을 통해서 의견을 받고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국립국어원에서 2012년에 바꾸었던 것은 분명히 근거가 있어서 바꾼 것 아니겠습니까? “과거와는 달리 성적소수자들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서 이같이 결정했다” 이렇게 입장을 내놨는데, 1년여 만에 다시 바꾼 거예요. 구체적으로 민원이나 이런 문제제기가 있어서 바꾸었다, 이런 말씀이세요?

▶ 황용주 박사 / 국립국어원:
저희가 사전이라는 건 항상 열려있는 자세로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사전 내용이 오류가 있다, 라는 제보들을 많이 받습니다. 그 제보들을 받고 저희가 검토해서 수정을 하게 되는데, 이번 사랑 관련된 것은 저희가 성적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의 해석을 다르게 했다기보다는 지금 수정된 뜻풀이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전형적, 사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런 전형적인 쓰임이 사전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라는 지적을 수용하게 된 것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전형적인 쪽의 기준을 따랐다, 이런 말씀이시네요. 그런데 지금 성적소수자들로서는 “그러면 우리가 하는 연애는 연애가 아니냐” 이렇게 반문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와 관련해서는 어떤 논의가 있었습니까?

▶ 황용주 박사 / 국립국어원:
사전이라는 것은 이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사전이 단어의 정의를 미리 내려주어서 일상생활에서 쓰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고 사전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말들을 모아서 만듭니다. 그래서 예전에 초기 사전 이름들을 말모이라고 했죠. 사전 편찬자가 임의대로 “이 단어는 이렇게 쓰십시오” 라고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죠. 그래서 저희는 현실 언어 쓰임을 보고, 대부분의 다른 사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형적이고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들을 사전의 뜻풀이로 등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전형적이라는 게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네요. 일단 여기까지 설명을 듣겠습니다. 국립국어원 황용주 박사님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지난 2012년 국민신문고를 통해서 사랑의 정의를 바꾼 대학생 가운데 한 명을 만나봅니다.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4학년 권예하 씨 전화연결돼 있습니다. 권예하 씨 안녕하세요.

▶ 권예하(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안녕하세요.

▷ 한수진/사회자:
2012년 당시 화제가 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같은 수업 듣던 대학생 5명이 함께 문제제기를 했던 거죠?

▶ 권예하(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네, 그렇죠.

▷ 한수진/사회자:
당시에는 상당한 성과를 거둔 거잖아요?

▶ 권예하(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네, 좀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좋은 성과로 끝나고. 주변에서도 이걸로 더 좋은 변화들을 만들 수 있을 거다, 그래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었죠.

▷ 한수진/사회자:
그런데 1년여 만에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는데, 이 소식 듣고 어떠셨어요?

▶ 권예하(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일단은 굉장히 실망을 했고요. 국립국어원에서 이야기하시는 본질적인걸, 좀 더 포괄적인 걸 세부적으로 했다, 이런 이야기가 굉장히 말도 안 된다고 느껴지죠, 일단.

▷ 한수진/사회자:
특히 어떤 면에서 그렇게 실망스러웠던 건가요?

▶ 권예하(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지금 바뀐 사전 정의는 자기모순에 빠져있거든요. 지금 사전에서 동성애를 정의할 때, ‘동성 간의 사랑’이라고 정의 되어 있어요. 지금 사랑의 정의가 다시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뀌면서, 동성애를 풀어보면 ‘동성 간, 남녀 간에 좋아하는 마음’(‘동성 간의 또는 동성에 대한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이런 식으로 되어 있거든요. 사전 자체에서도 뜻이 맞지 않는 단어들이 생기는 거예요. 사전을 다시 바꾸어야 한다고 하시는 분들이 “동성애 옹호다,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 이런 이야기 하시는데, 그 자체가 사실 맞지 않는 말이죠.

▷ 한수진/사회자:
동성애를 옹호한다, 동성애를 조장한다, 이런 문제제기들이 있었다는 말씀이시군요.

▶ 권예하(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네, 그런 조직적인 움직임들이 있었는데. 사실 고양이가 싫다고 해서 그 고양이가 없다, 라고 존재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이번에 사전이 바뀐 것은 그런 우를 범한 거죠.

▷ 한수진/사회자:
재작년 인터뷰에서 “단어의 뜻에 녹아있는 인식을 바꾸어야 제도적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제도적 변화에 이르는 게 얼마나 힘든지, 그런 사례가 되고 말았어요.

▶ 권예하(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그렇죠, 참 속상하게.

▷ 한수진/사회자:
어떤 사람들이 사랑의 정의를 바꾸려고 했다고 생각하세요?

▶ 권예하(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일부 종교계에서, 일부 세력들이, 제가 알기로도 인터넷으로 청원을 보내라, 이런 움직임이 있었고. 국립국어원 홈페이지나 이런 곳에 글도 많이 올리시고. 공격적인 글들, 비속어를 섞어 가시며 올리신 것도 봤었거든요, 지난 1년.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좀 더 포괄적이고 좋은 의미로 바뀐 뜻이 다시 이제 바뀌는, 그리고 그게 사실 알려지지도 않다가 이번에 알려진 거니까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죠.

▷ 한수진/사회자:
당시 문제제기에 그친 게 아니라 그 이후 상황도 계속 모니터링 하고 계셨던 거네요?

▶ 권예하(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네, 그렇죠.

▷ 한수진/사회자:
이번 일 관련해서 혹시 성적소수자 분들과 직접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지 궁금한데요?

▶ 권예하(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네, 제가 아는, 이번에 시민교육하면서 알게 된 몇 분이랑 이야기를 했는데. 많이 실망하시고 분노하시는 분들이 계시고. 이건 꼭 다시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이 나라에서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말씀들을 해주시고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려고 하는 것 같아요.

▷ 한수진/사회자:
혹시 다른 나라의 경우에 사랑이나, 연인, 연애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어떻게 내려져 있나요?

▶ 권예하(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가장 대표적인 게 영어인데요. 영어에 사랑을 뜻하는 러브(Love)라는 단어의 정의를 보면요. ‘If you love someone, you feel romantically or sexually attracted’(to them, and they are very important to you) 이런 식으로 ‘someone’ 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어요. 남녀 간에 이런 표현이 아니라 누군가, 이런 식으로 표현을 쓰고 있거든요.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런 나라들 거기는 명사에 여성용, 남성용이 있거든요. 여자가 쓰는 명사, 남자가 쓰는 명사. 하지만 그 단어 정의 자체에 남녀 간의 사랑, 이렇게 특정되어 있지는 않고요. 사실 거의 전 세계 언어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아요.

▷ 한수진/사회자:
그런 나라도 사전을 만들면서 당연히 이런 문제제기가 있었을 것 같네요. 그래서 이렇게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죠.

▶ 권예하(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언어라는 것은 그 사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범위를 포괄적으로, 아까 국립국어원 분께서 전형적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전형적을 구분하는 것도 사실은 자의적인 거잖아요. 저희가 언어 바꾸는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강간죄라는 법조항에 부녀자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트렌스젠더는 부녀자로 볼 수 없다고 해서 강간죄가 성립이 안 된 경우가 있거든요, 성폭행을 당하셨는데도. 이런 사례들을 만들어낸 게 결국에 언어이고, 언어는 그 사회의 인식이 반영되어 있는데, 국립국어원에서 많이 간과를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사전의 중요성을.

▷ 한수진/사회자:
그렇군요. 지난 2012년처럼 다시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 있으세요?

▶ 권예하(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네. 일단은 뜻 맞는 사람들하고 다시 이야기를 해서 온라인 서명운동을 띄웠고요. 앞으로는 국립국어원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거나 하는 식으로 더 적극적으로 활동을 기획하고 있어요. 관심 있으신 분들도 많이 참여해주시겠다고 하고 계시고.

▷ 한수진/사회자:
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권예하(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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