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A급 전범, 망언 일본인에 훈장 상납하고도…정부 "취소 어렵다"

한정원 기자

작성 2013.10.14 18:01 수정 2013.10.14 20:3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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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전범, 망언 일본인에 훈장 상납하고도…정부 “서훈 취소 어렵다”

민주당 인재근 의원실과 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일본 정치인 명단을 뽑아보고, 후속 보도를 검토하다 훈장 명단까지 찾게 됐습니다. 신사참배한 정치인 찾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외교부는 계속 정보 공개를 거부하더니, 국민이 분노할 만한 일을 한, 벌을 주어야 할 인사들에게 상을 주고도 정부는 "문제 없다. 이미 훈장 줬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일본인 수훈자 326명 가운데 12명 부적격

우리 정부는 한일간 친선에 기여한 일본인에게 수교 훈장을 수여해왔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올해 8월말까지 수훈자 명단을 일일이 찾아보니,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침략 전쟁 미화, 독도 망언을 일삼은 일본인이 12명이나 포함돼 있었습니다.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이자 A급 전범으로 독도 망언을 일삼았던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를 비롯해 일제 침략전쟁 미화 발언을 했던 다케시타 노보루,독도망언과 신사참배로 물의를 빚었던 스즈키 젠코도 정부로부터 수교 훈장을 받았습니다. 가장 최근에 훈장을 받은 인사는 모리 전 총리.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11월 모리 요시로 전 일본 총리에게 수교 훈장 중 최고등급인 광화대장을 직접 수여했습니다. 하지만 모리 전 총리는 훈장 받기 전에 이미 여러 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래는 훈장 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되는 일본인 12명 명단입니다

1. 사토 에이사쿠 
일본 61, 62, 63대 (1964~1972)총리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 수교훈장광화장. 1969년 박정희 정부.
독도 망언 1965년 9월
일본제국주의 및 침략전쟁 미화 1965년 11월 19일

2. 시나 에쓰사부로
1964년 외무대신으로 한일 기본회담 대표.
기시 노부스케의 핵심참모. 수교훈장광화장
독도 망언 1965년 10월 15일 중의원 본회의. 1969년 박정희 정부.
일본 제국주의 및 침략전쟁 미화 1965년 2월 

3. 다카스기 신이치
1965년 한일회담 일본 수석대표 수교훈장광화장
1969.08.14. 박정희 정부
일제 미화1965년 6월

4. 기시 노부스케
일본 56, 57대(1957~1960)총리. A급 전범
아베 신조 총리의 외할아버지 수교훈장광화장 1970년 박정희 정부
독도 망언 1960년 3월
일본 제국주의 및 침략전쟁 미화 1960년 4월

5. 고다마 요시오
수교훈장광화장 1970.08.28. 박정희 정부 
A급 전범으로 1946년 체포, 1948년 석방
미군정에 조선의 재식민지화 간청

6. 가토 카츠야
국민훈장동백장 1973.11.02. 박정희 정부.
731부대 관계자
나고야공중의학연구소 발진티푸스 백신 제조반

7. 사사카와 료이치
수교훈장광화장 1976.09.25. 박정희 정부
A급 전범으로 1945년 체포, 1948년 석방

8.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71, 72, 73대(1982~1987)총리 
수교훈장광화장 1983.01.11. 전두환 정부
독도 망언 1984년 02월 10일 참의원 본회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1985년 8월    

9. 아베 신타로
1982~86년 외무대신
아베 신조 총리의 부친 수교훈장광화장 1984.07. 전두환 정부
독도 망언 1984년 2월 10일 

10. 스즈키 젠코
일본 70대 (1980~82) 총리 수교훈장광화대장 1985.11.전두환 정부
독도 망언 1981년 01월 30일 참의원 본회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1980, 1981, 1982년 

11. 다케시타 노보루
일본 74대(1987~1989)총리 수교훈장광화대장 1995.12.15 김영삼 정부
일본 제국주의 및 침략전쟁 미화 1987년 12월 10일 예산위원회 
1989년 히로히토천황 공식 추도사 

12. 모리 요시로
일본 85, 86대(2000~2001)총리 수교훈장광화대장 2010.11. 이명박 정부 
독도 망언 2000년 9월 19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 2004년, 2011~2012년

왜 이런 서훈이 가능했을까?

A급 전범부터 잔혹한 생체실험으로 악명 높은 731부대 관련자까지 왜 이런 서훈이 가능했을까. 상훈법을 찾아봤습니다. 수교훈장은 "국권의 신장 및 우방과의 친선에 공헌이 뚜렷한 사람에 수여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국민훈장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학술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 복지 향상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공적 뚜렷한 사람에 수여"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과연 이들은 우방과의 친선에, 국가발전에 공헌했을까요?

외교부외교부 담당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국민 정서에 반하는 것은 분명히 인정하나, 문제는 그때그때 정무적 판단에 따라 공적심사위원회가 평가할 뿐 국민정서까지 제대로 고려, 심사하지 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절차상 문제는 없다는 겁니다. 수교훈장은 주로 양국 관계 발전에 공헌한 인사를 외교부에서 추천하면 공적심사위원회를 열고 국무회의 의결 거쳐 관보 게재하는 절차를 거칩니다. 정무적 판단에 따라 이른바 ‘짜고치는 고스톱’ 일지라도 공식적인 문제제기 없이 잘 넘어가면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대체 이렇게 국민정서를 등한시하는 심사위원회 구성원이 어떻게 되는지 물었습니다. 공적심사위원회는 외교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의전장실장 등 공무원과 학계 등 10명 정도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우리 국민의 공분을 알 만한 공무원도 학자도, 아무도 정무적 판단, 정권의 판단 앞에서는 아무런 문제제기도 할 수 없었던 겁니다. 수여하는 방식도 정권에 따라, 정무적 판단에 따라 그때그때 달랐습니다.

모리 요시로 전 총리의 경우 수교훈장 1등급인 광화대장을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수여했으나 이 역시 정무적 판단에 따라 그때그때 결정된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입니다.

정권별로 정무적 판단에도 차이가 있음을 반영하듯, 부적격 수훈자 12명 가운데 박정희 정권에서 7명, 전두환 정권에서 3명, 김영삼 정권에서 1명, 이명박 정권에서 1명이 훈장을 받았습니다.

외교부 “양국우호증진에 기여…서훈 취소 어렵다”

10월 9일 SBS 8시 뉴스 보도 이후 일본인 수훈자에 대한 논란이 일자 다음날 정례브리핑에서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훈장 수여 기록을 볼 때 대상자들이 양국 우호 증진에 기여한 점을 감안해서 훈장이 수여된 것으로 사료가 된다. 앞으로 어떻게 할 지는 이번에 제기된 지적도 감안해서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1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과거 정부 적법절차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공적사실 자체가 거짓으로 밝혀지는 중대흠결 없는 한 서훈 자체를 취소하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국민 정서는 상관 없고 이미 과거 정부에서 판단했으니 돌이킬 수는 없다는 겁니다. 다만 앞으로 서훈 추천 과정에서는 특히 일본인 관련 적절성 판단에 신중을 기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부적격 서훈, 국민들 왜 몰랐나

훈장 캡쳐_500

정부는 의원실의 공식 요청에도 개인 정보 보호와 과거 자료의 관리 미비를 이유로 외국인 훈장 수여 명단을 전면 공개하기는 힘들다고 버텼습니다. 외교부는 "5년 이상 경과 기록물은 외교부 외교사료관으로 이관해 확인 어렵다", 안행부는 "수훈자 이름 공개는 개인정보보호법 19조에 위배된다"며 성명 소속 등 익명 처리해 자료 제공했습니다. 벌을 줘야할 인사들에게 상을 주고도 제대로 알지 못해서 따질 수 조차 없는 게 현실입니다. 몰랐다고 하기에는 이미 훈장 심사 이전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고, 침략 미화 발언을 일삼고, 신사 참배를 해도 대한민국 훈장을 받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겁니다. 훈장을 받고도 앞장서 우리나라를 모욕해도 국민들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국민들이 알았으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민주당은 “즉각 대국민 사과를 하고 서훈 취소 등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지만 외교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재근 의원실은 외교부 수훈절차상 문제점을 규명하기 위해 양국 우호증진에 기여했다는 기록을 담고 있는 공적조서와 부적격 일본인 12명에 대한 서훈을 추천하고 심사한 위원 명단을 외교부에 요청했다는데, 과연 언제쯤 답을 받을 수 있을까요. 담당자가 출장가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네요. 국회의원에 이정도 응대하는데 과연 평범한 국민이 제대로 알 수 있을까요. 전면적인 서훈 시스템 개혁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는 한일간 우호에 기여한 한국인에게 훈장을 얼마나 수여했을까요? 일본은 외무성 홈페이지에 훈장 수훈자를 전면 공개하고 있는데, 정부가 수여한 훈장은 지난 8년간 36건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 민간인이며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는 4-5명 안팎이었습니다. 주고 받았다기 보다는 상납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