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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건설사 줄도산 현실화되나?

[취재파일] 건설사 줄도산 현실화되나?

이병희 기자 able@sbs.co.kr

작성 2011.12.02 10:17 수정 2011.12.02 10:4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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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에 한파가 몰아닥치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시공능력 30위권의 고려개발이 워크아웃을 신청했습니다. 고려개발은 지난 1976년 국내 건설사 가운데 처음으로 해외건설 면허를 딴 중견 건설사입니다. 'e-편한세상' 브랜드로 유명한 대림그룹 계열 건설사여서 충격이 더 큽니다.

2주 전에는 국내 40위권 중견건설사 임광토건이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습니다. 임광토건은 도로와 항만, 지하철 등 주로 공공 토목공사 위주로 탄탄한 성장을 해 온 건설사입니다. 특히 임광토건은 지난 1927년 일제 강점기 당시 설립된 국내 건설업 면허 1호 업체입니다. 국내외 건설업 면허 1호 업체가 나란히 도산한 겁니다.

두 건설사 모두 PF 지급보증에 발목이 잡혔습니다. 고려개발은 지난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금난을 겪으면서 적극적인 자구노력을 벌여왔지만, 최근 경기 용인 성복지구 아파트의 3600억 원 규모의 PF사업 지급보증을 섰다가 이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임광토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임광토건은 건설 경기 침체로 토목공사 수주에 어려움을 겪자 2000년대 중반 주택 사업 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아파트 사업을 확장하는 시점이 주택시장 침체와 맞물리면서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해 자금에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여기에 수천억 원 규모의 PF 대출 보증 기한이 겹치면서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습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100대 건설사 가운데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을 신청한 회사는 모두 25개입니다. 이미 심각한 상황인데, 문제는 나머지 70여 개 회사들의 사정도 좋지 않다는 겁니다. 건설협회가 올 상반기 경영상황을 분석했더니, 상장 건설사 104개 가운데 47% 정도가 번 돈으로 이자도 못 내는 상황으로 나타났습니다.

건설업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한 중견 건설업체 임원을 만나 속내를 들어봤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더군요. 이 임원은 말을 시작하자마자 현행 PF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현행 PF 제도를 간략하게 설명 드리면 이렇습니다. 시행사가 대규모 공사 등을 진행할 때 은행은 절대 시행사만 믿고 돈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시행사가 발주한 공사를 맡게 될 대형 건설사에게 "네가 책임지고 갚겠다는 보증을 서라"는 지급보증을 받고 돈을 빌려줍니다. 액수가 어마어마하니 이자도 엄청납니다. 건설, 부동산 경기가 좋으면 빌린 돈으로 빨리 공사하고, 빨리 분양을 해서 그 돈으로 이자도 갚고, 원금도 갚으면 됩니다. 시행사도 좋고, 건설사, 은행도 모두 좋은 케이스죠.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경기가 워낙 어렵다 보니, 공사 진행도 어렵고, 어렵사리 건물을 지어놔도 살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시행사는 원금은커녕,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고, 이 때부터 은행들은 지급보증을 선 건설사 쪽으로 압박을 가하기 시작합니다. 이 압박을 감당하지 못하면 결국 도산에 이르게 되는 겁니다.

이 건설사 임원은 현행 제도는 프로젝트의 주체인 시행사가 너무 쉽게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데다, 은행은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한 파트너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기 이익만 챙기는 구조라고 지적했습니다. 막대한 이자를 꼬박꼬박 받으면서 엄청난 이익을 챙겼으면서도, 상황이 어려워지면 나 몰라라 하면서 채권 회수에만 몰두한다는 겁니다. PF 뿐 아니라 BTL(임대형민간투자사업), SOC(사회간접자본)에서도 금융권은 일체 책임지지 않는 약정을 만들어놓고 대출을 해주고 있는데, 아무런 리스크 없이 과실만 따먹는 현행 제도는 꼭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임원은 현재 겉으로 볼 때는 건설사들이 국내 공사도 수주하고, 해외에서도 물량을 따내고,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속사정은 다르다고 털어놨습니다. 건설사는 기본적으로 엄청난 인력과 장비라는 자산을 갖고 있는데, 건설사가 생존하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인력과 장비를 가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자전거 페달을 돌리지 않으면 자전거가 쓰러지는 것처럼 말이죠.

쓰러지지 않기 위해 현재 많은 건설사들은 수익이 날지 안 날지 모르는 공사도 일단 따내고 보자는 분위기가 많이 퍼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민자사업의 경우도 최근에는 최소수익 보장이 안 되는 사업에도 건설사들이 서로 뛰어들고 있고, 해외사업에서도 국내 업체끼리 저가 출혈경쟁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이런 ‘악성공사’가 향후 2~3년 안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따라 건설사들의 생사가 달려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아파트를 짓기만 하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던 2000년대 초반, 건설사로서 최대의 호황의 시기를 즐겼던 건설사들이 이제 혹한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줄도산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 불똥이 국민 경제에 확산되지 않을 수 있도록 뭔가 대책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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