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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혜정 교수 "결혼제도 유지되기 어렵다"

사교육비 급증으로 '아이 키울 수 없는 나라'

비혼 선택자 늘어나면서 가족 개념에도 변화

동거하거나 옆집에 살면서 새 가족관계 형성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11일 젊은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는 현상에 대해 "우리 사회가 아이를 기르기 힘든 사회가 되면서 결혼제도가 유지되기 어렵게 됐다"고 진단했다.

조한혜정 교수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또 "비혼(非婚)을 선택한 사람들이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과 동거를 하거나 옆집에 살면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 등 가족의 개념 자체도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상생과 나눔, 돌봄 등의 가치를 중시하며 균형을 맞추지 않고 계속 성장 중심, 하드웨어 중심, 돈 중심으로 나간다면 아이나 제대로 된 가정을 만들지 못하고 미혼 현상도 확산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음은 조 교수와의 일문일답.

--젊은 여자들이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그렇다. 남자들은 오히려 돈이 없으면 아예 결혼을 못한다. 그동안 여성운동을 하면서 '남자는 돈벌이꾼, 여자는 살림꾼'이란 역할 분담을 깬다고 했는데 경제위기 상황에서 이 이분법이 강화하면서 '남자는 돈 없으면 장가 못 간다'는 게 굳어졌다.

--여성의 경우는 어떤가.

▲돈이 중요하지 않은 여성은 구태여 결혼해야 하느냐 하는 고민을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은 열심히 일하다 보면 결혼할 기회가 없고 어느 날 보니까 갑자기 30대 중반이 돼 있더라 하는 식이다.

이 연령이면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낳는 문제가 걸리면서 고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결혼을 구태여 해야 할까에 대한 확신은 안 주는데 대안은 안 찾아지니까 여성들이 후회도 하고 방황도 한다. 나는 그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생각을 하는 여성들도 있나.

▲기존의 상당히 보수적인 혼인체계에 들어갈 필요도, 생각도 없던 사람은 비혼을 선택한다. 싱글도 하나의 삶의 방식이고, 그렇다고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좋은 사람과 동거를 하는 것이다. 또는 옆집에 가깝게 살면서 거의 가족처럼 의논하고, 같이 놀러 가는 식의 새로운 관계를 맺기도 한다. 가족의 개념 자체가 바뀌고 있는 현상이다.

--가족의 개념이 바뀐다면.

▲이성애적 부부 중심의 핵가족은 근대에 출현한 가족제도다. 그전엔 확대 대가족이었다. 그러나 이런 표본 가족은 실제 전체 가족의 절반 이하인 것으로 안다. 앞으로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2010년 서울의 세대별 가구 형태는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가구가 42.9%, 1인 가구 20.8%, 부부 가구 11.9%, 편부모와 자녀 9.7% 등이었음)

그런 표본 가족으로 살려면 사실 집도 필요하고 아이라는 게 엄청나게 비싼 소비재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그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상황인데,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중산층 부모가 자녀를 중산층으로 만드는 데만도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

--자신의 계급을 그대로 물려주기도 힘들단 얘긴가.

▲그 한 단면이 사교육비의 증가다. 1985년엔 가계 월 평균소득에서 사교육비의 비중이 1.5%였는데 2007년엔 7.8%로 거의 6배로 늘었다. 이런 식으로 자녀 양육비가 엄청 높아지고 주거 마련은 힘든데 비정규직 증가로 수입은 안정적이지 않다.

그래서 이른바 근대의 정상가족이라고 얘기한 표본 가족을 유지하기 힘들게 됐다. 여기에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이런 표본 가족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이 늘었다. 고학력에 성공한 사람들이 그런 생각의 지지자로 한편에 있다.

--그렇다면 기존 가족이 점차 와해될까.

▲긴 역사에서 가족이란 건 애를 낳는 걸 의미하는데, 지금 같은 극단적인 개인주의 사회에선 사실 애를 구태여 낳지 않아도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애를 낳아서 행복하게 기를 자신이 없는데, 낳는 건 좋지 않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인간의 도리를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지만, 가정을 꾸리는 게 행복하지 않을 땐 그게 합리적일 수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우리 사회가 1990년대 들어서면서 여성의 사회 진출을 굉장히 장려했다. 문화적이고 정보사회에 보다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노동력이 필요한 시점이어서 여성들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들이 정작 사회생활을 하며 겪은 건 참기 힘든 남성적 조직 원리, 남편의 내조 없이 일과 가사.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이중 역할의 부담이었다. 사회 진출 1세대는 결혼도 했지만 그다음 세대들은 1세대를 보며 육아와 일을 양립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다. 그렇게 살기 위해 결혼할 생각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뭐가 바뀌어야 하나.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굉장히 경쟁적으로 변했고, 채찍을 쳐가며 경제 발전을 했다. 그러면서 돌봄이나 재생산, 휴식, 재생 이런 것들을 하는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다.

결혼해서 아이를 기르는 조건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일터에선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서 가정이나 돌봄의 영역은 전혀 발전하지 않은 형태로 남아 있게 됐다. 그게 선배들의 삶에서 고스란히 보이니까 섣불리 결혼을 하지 않으면서 대안적 삶을 찾기 시작한 세대가 바로 20대에서 30대 중반이다.

--가장 핵심적인 걸림돌은 뭔가.

▲가장 문제는 아이인데, 아이가 소비재가 된 사회다. 아이를 기르기 너무 힘든 사회다. 그 결과 결혼이란 제도가 유지되기 힘들게 됐다. 사회가 건강하려면 이 땅의 모든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남편은 일하고 부인은 집에 있어야 아이를 잘 기를 수 있는 상황이다. 육아 정책도 그런 방향에서 이뤄져야 하고, 다른 한편에선 일터의 문화가 아이가 있든 없든, 가정과 일이 양립 가능하도록 바뀌어야 한다.

--미혼 현상이 더 확산할까.

▲사회가 상생과 나눔, 돌봄 등의 가치를 중시하며 균형을 맞추지 않고 하드웨어 중심, 경제지표 중심, 돈 중심으로 나가면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못할 것이다. 이른바 제대로 된 가정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가족이란 기본적으로 같이 동거하면서 밥 해먹을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아이와 어릴 때 같이 일상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경험을 나누지 않는 게 과연 가족인가. 나는 '토건국가와 돌봄사회'란 말로 이를 표현하는데 계속 이렇게 외형적인 경제 성장만을 추구하면 결국 결혼이란 건 불가능한 것이고, 아이도 지금처럼 투자의 대상, 관리의 대상으로 기르면 잘 자랄 리 없고, 그러니 안 낳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족제도의 변화가 필요할까.

▲표본 가족뿐 아니라 그 외의 다양한 가족들을 다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점점 돈이 궁핍해지니까 실제로 동거를 많이 할 것이다. 돌봄사회로 전폭적으로 전향해야 한다. 모성이란 게 아이를 키우면서 기쁘고 즐거워야 하는데 지금은 경쟁에서 이기는 아이를 만들어야 한다는 도구적 모성을 요구받고 있다.

여자들이 그걸 감지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세상이다. 위에서 바꾸지 못하면 여성 당사자들이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결혼파업은 제도의 모순을 첨예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행동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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