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년 3월 15일,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농장. 흑인노예제도가 합법이었던 이곳에서 ‘검은 피부를 가진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백인 아버지와 흑인노예 출신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조셉 젠킨스 로버츠.
놀랍게도 이 아이는 나중에 ‘자유의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이 됩니다. 부모님이 자유흑인이었던 조셉은 국가에서 인정받는 ‘자유시민’이었지만, 여전히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에서 그의 가족은 매우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노예 해방 후 미국식민협회는 차라리 흑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그 결과 흑인들은 조상의 땅인 아프리카 서해안으로 대거 이주했습니다. 그렇게 1824년, 이주 흑인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식민지가 만들어지는데 이곳이 바로 ‘자유의 나라’라는 뜻의 라이베리아(Liberia)입니다.
조셉은 20살이 되던 해에 라이베리아에 이주했습니다. 1833년 이곳에서 보안관이 된 그는 이주민들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 힘썼고, 1842년엔 흑인 최초로 라이베리아 식민지 총독의 자리에 오릅니다. 총독이 된 그는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정치적 경제적 안정을 위한 기금을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독립의 기반을 다진 라이베리아는 1847년,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완전한 ‘독립’을 쟁취합니다. 그리고 라이베리아 독립의 주역이었던 조셉 로버츠는 큰 지지를 받아 초대 대통령이 됩니다.
미국의 해방노예들이 뭉쳐서 만든 자유국가, 그리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있었던 ‘라이베리아’. 흑인들을 위한 가장 자유롭고 평등할 것 같은 나라가 탄생한 겁니다. 하지만 ‘라이베리아’라는 나라는 ‘자유’라는 이름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주해 온 미국계 흑인들이 토착 원주민들을 차별하며 사실상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조셉 로버츠는 이주민들을 위한 정책만 펼쳤습니다. 심지어 라이베리아 인구의 95%를 차지하는 토착원주민들은 ‘선거권’조차 없었습니다. 그들은 원주민들을 야만인처럼 취급했습니다. 1980년 원주민들이 쿠데타로 권력을 잡기 전까지, 미국계 흑인들은 무려 130년 넘게 라이베리아를 ‘지배’했습니다.
지금도 라이베리아에는 소수의 미국계 흑인과 다수의 아프리카 토착민 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또한 군사쿠테타 후 벌어졌던 내전으로 여전이 불안한 상태입니다. 자유를 찾은 미국계 흑인들이 또 다른 흑인들의 자유를 빼앗았던 모순의 나라 라이베리아. 이제 비참했던 내전은 끝났지만, 오랜 갈등이 남긴 상처는 여전히 깊이 패여있습니다.
기획 권영인 / 구성 권재경
(SBS 스브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