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이곡지 할머니
"한 10분 동안 캄캄했어. 한치 앞도 안 보여서 오카짱(어머니)만 찾았지. 10분 겨우 찾으니 차츰차츰 밝아지대. 사람들이 도로에 여기저기. 드러누워 있는데 입만 겨우 살아가지고 신음을 해 말 못하는 사람들은 다 시체고...그런 사람이 길거리에 널려 있었어. 내 다리는 너덜너덜 고기처럼 익어가지고 새카맣게 다탔어. 언니는 원폭맞고 저 세상 가고..6살이었던 나랑 3살 동생이랑 어머니만 살았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잔폭탄이 떨어진 그날. 70년이 지났지만 할머니의 기억은 선명했습니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사사모리 시게코 할머니
"피폭 이후 약 1년간은 온 가족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손이 다 녹아낼려서 밥도 손등에 그릇을 겨우 올려먹었고...부모님도 모두 병을 얻었습니다."
이곡지 할머니는 다친 몸보다 마음의 상처가 휠씬 더 아팠습니다. 결혼 후 낳았던 아들이 원폭피해 유전으로 인한 희귀성 난치병으로 지난 2005년, 34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이곡지 할머니
"우리 형율이는 참 인정도 많고 영리하고... 자기 병도 본인이 다 책 찾아보고 공부하고 그랬어. 일찍 죽는 아들이 효자라카더만...그래서 먼저 갔나봐...너무 착하고 똑똑해서..."
대학생이 되기까지 저는 원폭피해를 책으로만 봤습니다. 그리 깊게 읽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70년 전 그날을 여전히 선명하게 떠올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증언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 상처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사사모리 시게코 할머니
"젊은 사람들이 꼭 알아줬으면 하는 것은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방관하면 안된다는 거예요. 제 아픔으로 핵무기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전달됐으면 좋겠고, 이런 아픔이 다시 없도록 핵무기가 없는 시대를 열어주기 바랍니다. 저 같은 상처는 저희로 족합니다."
(SBS 스브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