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마전 : 비밀리에 나쁜 일을 꾸미는 무리들이 모이거나 활동하는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성공적인 투자처'로 각광 받았던 지식산업센터. 2025년 현재, 기대와 달리 전국 곳곳의 많은 지식산업센터는 높은 공실률로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분양률을 높이려는 새로운 판매 수법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복마전을 연상케 하는 지식산업센터의 천태만상을 취재했습니다.
'전매 제한' 없는 지식산업센터
'전매 제한'이 없다는 점이 큰 특징입니다. 부동산을 타인에게 팔아 수익을 남기는 걸 전매한다고 하는데, 보통 전매는 무제한 허용되지 않습니다. 투기 수요가 올라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 오히려 실수요자가 진입할 수 없기 때문이죠. 아파트나 상가를 대상으로 정부가 전매 횟수, 기간, 지역 등을 규제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지식산업센터는 전매를 제한하는 규정 자체가 없습니다. 횟수나 기간, 지역에 구애 받지 않고 전매가 가능합니다.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자유로운 진입과 퇴장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취지는 좋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부가세 환급으로 잔금 치르자"
하지만 A 씨의 지식산업센터는 공실이 됐습니다. 잔금을 치를 날짜가 다가왔지만 대출이 막혔습니다. 잔금을 어떻게 마련할까 고민하던 중 한 분양대행사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돈을 구할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것입니다.

"환급받을 수 있는 부가세가 (한 물건당) 976만 원 이거라고 말씀을 드렸잖아요."
- 대행사 직원
대행사가 제시한 해법은 '부가세 환급'. 지식산업센터 같은 사무용 건물은 구매할 때, 양도인으로부터 부가세를 환급받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대행사가 미리 추려놓은 지식산업센터 여러 대를 넘겨 받아 부가세를 환급받고, 그 돈을 필요한 곳에 쓰라는 논리였습니다. A 씨가 필요했던 돈은 4천여만 원. 대행사는 A 씨에게 지식산업센터 사무실 5개를 건넸습니다.
납득 안 되는 제안…"실입주 기업으로 넘기면 돼"
A 씨가 따져 묻자, 대행사는 지식산업센터를 가져갈 '실입주 기업'이 정해져 있다고 답합니다. 이 실입주 기업들은 사무실을 구하고 있는데, 자신들이 필요한 만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A 씨 같은 투자자가 잠시 사무실을 확보해 맡아주면 부가세가 환급된 후 기업이 가져갈 것이라 답합니다.
중도금 대출 채무도 기업들이 가져갈 것(권리 승계)이라 합니다. 사무실 마련을 도와준 보답으로, 기업은 부가세를 받지 않겠다고 사전에 약속해 놨다고도 합니다. 여러 번의 상담 끝에 A 씨는 제안을 수락합니다.
"저랑 약속된 내용은 (잔금 내시고) 등기 치시는 게 아니라 그저 부가세 수익만 빼고 실입주 기업들 대상으로 명의 변경이잖아요."
- 대행사 직원
하루아침에 생긴 '9억 2천만 원' 빚
결과적으로 실입주 기업으로의 전매는 없었습니다. 채무에 대한 권리 승계도 없었습니다. A 씨는 대행사가 건넨 지식산업센터 사무실 5개를 떠안았습니다. 일으켰던 중도금 대출 채무도 고스란히 지게 됐습니다. 빚만 9억 2천만 원에 달합니다.
해당 분양대행사는 이런 방식으로 양주의 한 지식산업센터에서만 150여 개 사무실을 팔았습니다. 건물 전체의 60%에 달하는 양입니다. 취재진이 만난 다른 투자자들과 경찰 조사 내용을 종합하면, 대행사는 전국 곳곳의 다른 지식산업센터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영업한 걸로 보입니다.

'폭탄 떠넘기기'

왜 그렇게 하는지 이유를 묻자, 대행사에서 근무했던 전 직원은 "중도금 대출이 승인돼 시작되는 시점에 시행사가 대행사에 수수료를 더 내려준다"고 증언했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중도금 대출이 일어나지 않으면 대행사는 수수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중도금 대출이 정상적으로 일어나 물건을 받을 투자자를 찾을 때까지 폭탄 떠넘기기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중도금 대출이) 부결 나면 아버님이나 어머님께 드렸던 것처럼 다른 분으로 명의 변경 해드리는 거고."
- 대행사 직원
A 씨가 대행사로부터 추천받았던 지식산업센터 역시, 일부는 중도금 대출이 승인되지 않았던 다른 투자자의 물건을 대행사가 A 씨에게 넘겼던 물건이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확보한 대행사 직원들 간의 SNS 대화에는 "먹이고 중도금하고 버려"라는 표현이 적나라하게 나옵니다. 중도금 대출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하고 잠적하라는 취지로 보입니다.

"준공 승인까지만 가능"…개정안은 상임위 계류
대행사는 지식산업센터의 전매 제한이 없다는 점을 이용해 A 씨에게 무려 5개의 물건을 떠넘겼습니다. 많게는 11개나 넘겨 받은 투자자도 있습니다. 이런 전매 행위를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주체는 각 지자체들입니다.
이번 취재에서 문제가 된 지식산업센터가 모여 있는 양주시에 찾아가 물었습니다. 양주시청은 "지자체의 권한은 준공 승인까지"라고 못 박았습니다. 건물을 올릴지 말지 승인해 주는 역할까지만 할 수 있지, 완공된 건물이 개인 간 어떻게 전매되고 거래되는지까지 일일이 개입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런 점을 보완하고자 '사용 승인이 나기 전까지는 전매 횟수를 제한하는 내용' 등이 담긴 법 개정안이 발의되긴 했지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업의 성지에서 복마전으로…남은 과제는?
시행사는 시공사에 공사 대금을 주기 어려워지고,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은행으로부터 받은 PF 대출금도 갚지 못하게 됩니다. 자금 상황이 괜찮은 시행사는 버틸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최악의 경우 시행사는 파산합니다. 시공사와 은행은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합니다. 지식산업센터에 입주하려는 기업이 갈수록 주는 추세 속에, 사무실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빚더미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번듯한 겉모습과 반대로, 관계자들은 파산하거나 빚더미에 안고 있습니다. 투자자의 조급함을 비집고 들어가 분양률을 높이려는 분양대행사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지식산업센터를 일반화하면 곤란합니다. 다만 지식산업센터 시장이 '복마전'으로 전락하기 않기 위해서라면, '창업의 성지'라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수상한 분양을 막을 방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