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한 뒤 먹고 살기 위해 채권추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말이 채권추심이지 뭐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협박 공갈도 필요 없습니다. 50대 중반에 접어들은 나이에 사람들과 언성 높이는 것도 무상합니다. 이틀정도 뒤따라다니면서 돈 갚으라는 얘기를 특유의 화술로 줄기차게 해대면 왠만한 채무자들은 지쳐서 돈을 챙겨줍니다. 난 역시 프로 해결사였습니다. 채권추심 서류로 방 한쪽은 가득 쌓여갔습니다. 감정노동이란 것만 빼면 제법 체질에 맞는 직업 같았습니다.
그러나 평생 이 짓만 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평생 사람들 등 쳐먹고 살았다는 과거를 씻어내고 싶었습니다. 어엿한 내 사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소박하지만 분위기 있는 아담한 가게를 하나 차리고 싶었습니다. 바리스타는 내 인생이 마지막 남은 꿈이 돼버렸습니다. 고용노동부가 마련해 준 교육 프로그램을 미친 듯이 따라다니며 열심히 배웠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개과천선한 훗날의 모습을 생각하며 즐겁게 배웠습니다. 저금리 시대에 대출을 받아 자그마한 카페를 차리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게 잘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내 인생의 노년기는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습니다.

저를 체포해 끌고간 국정원은 국가보안법 사범이라고 추궁했습니다. 황장엽 암살시도 계획을 실토하라고 압박했습니다. 북한의 정찰총국에서 지령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증거도 제시했습니다. 저는 황장엽 암살을 실제로 모의했던 유능할 킬러가 돼버렸습니다. 국정원이 인정해 준 실체가 있는 프로 해결사였습니다.
국정원은 김 씨가 북한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아 움직였던 고정간첩이었다고 제게 설명해줬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김 씨는 먀약제조기술을 갖고 있었고 북한과 함께 마약을 제조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눈 앞이 깜깜했습니다. 미친 줄로만 알았던 김 씨는 정말 간첩이었습니다. 그리고 김 씨를 제게 처음으로 소개해 준 친구가 경찰에 전화했었다는 사실도 듣게 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황장엽을 제거해달라는 김 씨의 부탁을 듣고 친구에게 전화했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는 제게 별 얘기를 꺼내지 않았었지만 친구도 저를 대신해 김 씨를 간첩이 아닐까 의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경찰은 간첩 신고를 받고도 연락이 오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경찰도 제보전화를 장난전화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국정원에 체포되고 나니 간사하게도 이젠 경찰이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이 친구 전화를 받고 제게 연락이라도 한 번 해줬다면 이런 일이 없었겠죠. 저와 친구는 간첩신고 포상금을 받았을 테고, 저는 빚을 청산해 다시 감옥에 들어갈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괘씸했습니다. 경찰이 한번만 전화를 해 줬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말입니다. 태생은 천박한 사기꾼이었을지 모르지만 간첩신고로 국민영웅으로 떠오르지 않았을까요?
전 타고난 화술로 사람들의 돈을 챙기던 전문 사기꾼이었습니다. 암살은 배운 적도 없고 필리핀에는 가본 적도 없습니다. 필리핀 킬러들은 당연히 알 수도 없습니다. 그저 돈에 눈이 멀어 세 치 혀로 일확천금을 뜯어내고 싶었을 뿐입니다. 고정간첩인 줄 알면서도 2천만 원을 뜯어내겠다고 목숨을 걸겠습니까? 신고를 해서 포상금을 받지!
'사기꾼'으로 처벌한다면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전 간첩이 아닙니다. 킬러는 더더욱 아닙니다. 살인 모의? 가당치도 않습니다. 제게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것은 너무도 가혹합니다. 지금까지 살아 온 인생을 후회하고 있는 노회한 사기꾼일 뿐입니다. 마지막 남은 생애는 '바리스타'로 정직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남은 인생 조금은 손주들에게 떳떳한 할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기회를 주세요.

<에필로그>
박 씨는 지난주 수요일 구속 상태에서 첫 재판을 받았습니다. 북한 정찰총국 공작원에게 포섭돼 황장엽 씨를 비롯한 탈북자 출신 북한인권운동가들을 암살하려고 한 혐의입니다. 국가보안법 위반 (목적수행, 자진지원, 금품수수, 편의제공)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박 씨는 재판에서 "돈을 챙길 목적이었지, 실제로 암살할 생각이 없었다."고 재판부에 항변했습니다.박 씨에게 황장엽 씨 암살을 부탁한 김 씨도 재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꾼(박 씨)에게 휘말렸다. 사기꾼들은 '국정원에서 자료를 제공해준다'고 속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 정찰총국에 포섭당했다는 장본인 역시 박 씨를 사기꾼으로 지목한 것입니다. "애당초 황장엽 암살사건은 제가 능력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 그 자체가 잘 못 됐다"... 결국 사기꾼에게 낚였다는 게 김 씨의 주장입니다.
박 씨의 전과를 통해 박 씨의 과거 행적을 살펴보겠습니다.
- 1993년 사기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 1993년 횡령으로 벌금 20만원
- 1995년 횡령으로 징역 8월
- 1996년 사기 횡령 절도 신용카드업법위반으로 징역 1년6월
- 1997년 사기로 징역 4월
- 2011년 사기로 다시 징역 2년 2월
사기와 횡령 혐의로 전과 6범입니다. '대학총장과 국회의원을 잘 알고 있는데 이들에게 부탁해 취업을 시켜주겠다.' '카드깡을 대신 해주겠다.' '운전면허증을 발급해주겠다.'는 말로 피해자를 속여 돈을 가로챈 혐의였습니다. 폭력이나 살인, 살인 미수 같은 혐의의 전과는 찾지 못했습니다. 국가보안법 혐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박 씨의 과거 전력을 미루어 짐작했을 때 이른바 '해결사'로 지칭하는 '전문 킬러'라기 보기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박 씨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고 있습니다. 억울한 건 사기혐의로 처벌은 달게 받겠지만 자신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기꾼에게 '킬러'...그것도 북한의 지령을 받아 황장엽 씨 같은 주요인사를 살해하려고 했다는 혐의는 지나치다는 게 박 씨의 주장입니다.

박 씨가 고정간첩에 포섭돼 실제로 황장엽 씨를 살해하려고 했는지...박 씨는 그냥 전문 사기꾼인지...판단은 재판부의 몫입니다. 대한민국 법원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
▶ [취재파일] '바리스타'가 '황장엽 킬러'로 둔갑한 사연은? ②
▶ [취재파일] '바리스타'가 '황장엽 킬러'로 둔갑한 사연은?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