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를 장려하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주차장에서 전기자동차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쉽게 볼 수 있다. 주차하는 동안 거의 공짜로 충전까지 할 수 있는 곳도 많다. 특히 태양열로 전기를 생산하고 그 전기로 자동차를 충전할 수 있는 시설까지 되어 있는 곳도 있다.
기후변화를 비롯한 환경문제가 크게 대두되면서 장기적으로는 전기자동차가 대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 켈리포니아주에서 전기자동차를 구입할 경우 보조금 지급부터 세금 감면, 카풀 전용차선 이용 등 혜택도 다양하다.
이런 혜택과 친환경이라는 인식, 기술 발전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상대적으로 차량 가격이 비싸고 대부분 한번 충전으로 갈 수 있는 거리도 기존 자동차에 비해 턱없이 짧고, 집에서 한번 충전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길게는 8시간 정도나 걸리지만 전기자동차는 앞으로도 보급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전기자동차는 친환경적일까? 가솔린이나 디젤을 사용하는 자동차를 단순히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전기자동차로 바꾸기만 하면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기준은 있는 것일까?
캐나다 토론토대학 연구팀이 기존의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 대신 전기자동차를 운행하는 것이 친환경적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제시했다(Kennedy. 2015). 연구팀은 다른 요소는 배제하고 자동차 운행으로 인해 배출될 수 있는 온실가스만을 고려해 기준을 만들었다.
연구팀은 전기자동차가 이용할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과 기존의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을 비교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결과 발전소에서 1GWh(기가와트시=10억 와트시)의 전력량을 생산하는데 600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면 이 전기를 이용하는 전기자동차를 운행할 때와 기존의 화석 연료 자동차를 운행할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이 같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지역이나 국가가 1GWh의 전력량을 생산하는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600톤을 넘어서면 전기자동차 운행으로 인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기존의 화석 연료 자동차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이고 반대로 1GWh의 전력량을 생산하는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600톤 이하일 경우는 전기자동차를 운행하는 것이 기존의 화석 연료 자동차를 운행할 때보다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한다는 뜻이다.
1GWh의 전력량을 생산하는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600톤 이하일 경우를 친환경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모든 국가나 지역에 600톤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할 수는 없지만 500~700톤 정도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정 국가나 지역에서 일정량의 전기를 생산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그 국가나 지역에서 전기를 생산할 때 에너지원인 석탄이나 석유, 원자력, 수력, 풍력, 태양열 등을 어떤 비율로 얼마만큼 이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수력발전과 지열발전만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아이슬란드의 경우 전기 생산 과정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없다. 하지만 전기의 거의 대부분을 석탄을 이용해 생산하는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경우 1GWh 전력량을 생산하는데 무려 1,787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발전소 에너지원으로 석탄을 많이 사용하는 인도(856)나 호주, 중국(764)의 경우 600톤 기준을 크게 넘어서고 있고 수력발전소가 많은 브라질(68)이나 캐나다(167)는 600톤 기준을 크게 밑돌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GWh의 전력량을 생산하는데 평균 500~600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국가 전체 통계로 봐서는 국내에서 화석 연료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바꾸는 것이 친환경적이다 아니다 단정적으로 말하기 힘든 상황이다.
주요 국가에서 1GWh의 전력량을 생산하는데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전기의 탄소강도; Carbon intensity of electricity)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자료:Kennedy. 2015)
실제로 2015년 1월 국내 에너지원별 발전전력량을 보면 총 발전전력량 4만 8,637GWh 가운데 석탄을 연소시켜 생산한 발전량이 1만 9,321GWh로 가장 많은 40%를 차지하고 있고 이어 원자력이 29%인 1만 4,220GWh, 가스가 19%, 유류는 4%를 차지하고 있다(자료:한국전력공사 전력통계속보).
한 국가 내에서도 각 지역마다 이용하는 전기의 에너지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 운행하는 전기자동차가 친환경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특정 지역의 전기자동차가 원자력이나 풍력, 태양열 등을 이용해 생산한 전기를 이용한다면 온실가스 배출 측면에서 친환경적이다 라고 할 수 있지만 반대로 석탄이나 석유를 연소시켜 발전하는 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이용한다면 친환경적이라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겉보기만 친환경일 뿐 전기자동차의 에너지원인 전기를 생산하는 단계까지 포함시키면 친환경이 아닌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Carbon Free Island Jeju by 2030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1단계로 2017년까지는 운행 자동차의 10%를, 2단계로 2020년까지는 20%를, 그리고 2030년까지는 운행 자동차의 100%를 전기차로 대체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이개명, 2014). 제주도가 모든 자동차를 다른 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100% 전기자동차[all electric vehicle]로 대체할 경우 제주도에서 운행하는 자동차가 배출하는 배기가스는 없다. 자동차 운행만 볼 경우 ‘Zero Emission', 'Carbon Free'가 된다.
하지만 논문에서 지적했듯이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전기자동차가 사용하는 전기를 어떻게 생산하느냐 하는 점이다. 만약 전기자동차가 화석 연료 대신 수력이나 원자력, 풍력, 태양열을 이용해 생산한 전기를 사용한다면 온실가스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전기자동차가 석탄이나 석유 등을 이용해 발전하는 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이용한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화력발전소에서는 화석 연료나 바이오 연료 등을 사용해 전기자동차가 이용할 전기를 생산하는 만큼 기존에 화석 연료 자동차가 돌아다니면서 배출하던 모든 배기가스를 발전소에서 한꺼번에 배출하는 꼴이 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화력발전소의 열효율이 40% 정도인 점을 고려할 경우 화력발전소에서 전기자동차가 이용할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기존의 화석 연료 자동차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보다 오히려 많은 것은 아닌지 반드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평상시 제주도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는 제주화력발전소와 남제주화력발전소 두 곳이다. 두 발전소의 총 설비용량은 633.343MW(메가와트)로 이 가운데 93%인 590MW는 중유와 등유를 사용해 발전한다. 제주화력 3호기(75MW)와 남제주화력 1호기(100MW)는 바이오 중유를 사용하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석유에서 뽑아낸 중유와 등유를 사용한다.
바이오 중유가 신재생에너지로 분류되지만 연소될 때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은 석유에서 뽑아낸 중유가 연소될 때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과 큰 차이가 없다. 단순히 발전소에서의 연소 과정만 볼 경우 화석연료 대비 바이오 중유의 온실가스 감축효과는 1%가 채 안 된다. 설비용량을 기준으로 제주도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풍력발전이나 태양열발전이 생산하는 전기의 비율은 7%에 불과하다(자료:한국중부발전, 한국남부발전).
전기자동차가 친환경적일까? 답은 국가와 지역, 그리고 어떻게 생산한 전기를 이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단순히 가솔린자동차나 디젤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바꾸는 것을 친환경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전기를 생산하는 단계를 포함해 전 과정을 고려해야 한다.
<참고문헌>
* Christopher Kennedy. 2015: Key threshold for electricity emissions. Nature Climate Change, DOI:10.1038/nclimate2494
* 이개명, 2014: 전기차 보급이 제주 전력계통에 미치는 영향, Journal of the Electric World /Monthly Magazine Special Issues _ 5, 7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