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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PET병 생수에 찝찝한 비밀이…당신의 선택은?

환경호르몬 검출

[취재파일] PET병 생수에 찝찝한 비밀이…당신의 선택은?
대선 국면에 묻힌 국정감사 자료가 하나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이학영 의원실에서 나온 자료인데요. 현재 시판 중인 생수 5종에서 ‘인공 에스트로겐’이라는 물질이 검출됐다는 것입니다. 의원실은 자신 있게, 어느 업체 제품인지 실명도 공개했습니다. 롯데 아이시스, 홈플러스 맑은샘물, 제주 삼다수, 풀무원 워터라인, 동원샘물 미네마인 등 총 5종입니다. ‘인공 에스트로겐’을 검출한 기관은 광주과학기술원의 한 연구팀입니다. 제대로 검출한 것인지 그 복잡한 분석 방법에 대해선 알 길이 없었지만, 어쨌든 신뢰할 만한 기관에서, 신뢰할 만한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 내놓은 결과이니, 일단 귀 기울일 만한 연구 결과입니다.

의원실에서 이번 업무를 담당한 보좌관과 통화했는데, 분석 결과는 이렇습니다. 5종의 생수에서 나온 인공 에스트로겐이 모두 미국 환경청의 잠정 기준치를 넘어섰다는 것입니다. 미국 환경청 잠정 기준치는 1.23ng/L(생수 1리터에 1.23ng 이상 검출되면 안 됨)인데, 롯데 아이시스 1.80 홈플러스 맑은샘물 2.17 제주 삼다수 2.45 풀무원 워터라인 2.80 동원샘물 미네마인 3.32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마트 봉평샘물과 내추럴미네랄 워터석수 2종에서는 인공 에스트로겐이 나오긴 했지만 기준치 이상 검출되지 않았고, 수돗물과 증류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공 에스트로겐’은 어떤 물질인가요. 환경호르몬의 일종입니다. 학교 다닐 때 배워 귀에 익숙한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앞에 ‘인공’이라는 말이 붙었으니, 우리 몸에 들어와 여성호르몬처럼 기능하는 환경호르몬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습니다. ‘제노-에스트로겐’이라는 정식 이름이 있지만, 좀 난해한 것 같아서 머리에 ‘인공’을 붙였다고 의원실 보좌관은 설명했습니다. 광주과학기술원 연구팀은 의원실에 보낸 시험성적서에서, 분석 결과 검출된 물질을 미국 환경청이 발암성 물질로 규정했고, 수질 기준 대상 후보군에 올려놓았다, 또 미국이 잠정적인 인체 유해 기준으로 1.23ng/L를 산정했다고 설명해습니다. 2006년 방송된 SBS 스페셜에서는 이 인공 에스트로겐이 실험쥐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는 국내 교수팀의 연구 결과가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인공 에스트로겐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그건 생수에서 검출되긴 했지만, 시작은 플라스틱 PET병일 거라고 광주과학기술원 연구팀은 설명했습니다. 해외에서도 유리병 물과 PET병 물을 대조 실험해, 에스트로겐 오염의 용의자를 PET병으로 지목한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물이 아무리 깨끗해도 PET병이 사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년 한 해 국내에서 유통된 생수가 16억 6천만 병이고, 그 가운데 15억 7천만 병이 PET병 생수였습니다. PET병 생수에 입을 안 대본 한국인이 없을 텐데, 그렇다면 이번 분석 결과를 대선 국면에 묻고 넘어갈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당장 집에서 6개월 된 아기에게, 문제의 5종 가운데 하나로 분유를 먹이던 아내가 흥분했습니다. 인터넷에는 이번 분석 결과의 진상을 상세히 알려달라는 글이 넘쳐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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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병 생수와 환경호르몬.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PET병 생수가 무조건 위험하다, 이렇게 몰고 가는 보도가 아니라, 생수에서 이런 물질이 검출됐는데, 실제 위험성은 어느 정도인지, 물을 어느 정도 마시면 괜찮은지, 소비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관련 정보를 상세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시청자의 알 권리이며, 소비자의 알고 마실 권리입니다. 광주과학기술원 연구팀 책임자와 통화했습니다. 그런데 당혹스러웠습니다. 의원실 보도자료와 그걸 취재해 작성한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교수의 말은 이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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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검출한 것을 ‘인공 에스트로겐’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단지 ‘에스트로겐과 같은 성질’을 보이는 ‘내분비계 장애 물질’(환경호르몬)의 총량을 검출했을 뿐이다. 에스트로겐성에 반응하는 세포를 분석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미국 환경청의 잠정 기준 1.23ng/L은, 미국도 지금 사용하는 수치가 아니다. 또 에스트로겐성 물질의 총량을 검출한 만큼, 특정 환경호르몬이 미국 기준치를 넘었다고 표현하면 안 된다. 기존 보도는 많은 부분 사실과 다르다. 정리하면, PET병 생수에서 환경호르몬이 나오긴 했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고, 기준치를 넘었다는 말도 잘못이고, 마시면 위험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당연히 인터뷰도 거절했습니다. 쓰지 말아달라며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했습니다. 혹시나 업체에서 항의 전화를 많이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아…복잡합니다…”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추가 보도는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핵심 당사자가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의원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교수의 말대로라면 의원실이 국정감사를 앞두고 생수 분석 결과를 위험한 쪽으로 과장한 것이고, 의원실 말대로라면 교수의 말이 뒤늦게 바뀐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진실을 얘기하는지?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PET병 생수에서 분명 환경호르몬이 검출됐고, 나머지는 도대체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확실함의 실종은 불안감으로 이어집니다. 뭔가 찝찝한 거죠. 저희 집 아기의 분유 물도 바로 바뀌었습니다. 불신 가득했던 수돗물로요. 수돗물에 더 안 좋은 성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PET병 생수에서 등을 돌리겠다는 게 아내의 결심입니다. 집에 잔뜩 사놓은 생수는 어쩌지도 못하고, 제가 매일 그 께름칙함을 마시고 있습니다.

그냥 PET병 생수를 계속 마셔? 생수 배신하고 수돗물 끓여 먹을까?

선택에 참고할 만한 정보들이 있습니다. 우선 PET병 생수는 보관이 중요합니다. 생수 온도가 올라갈수록 PET병에서 환경호르몬이 쉽게 나온다고 합니다. PET병 생수는 반드시 차갑게 보관하시고, 차 안에 오래 보관한 생수는 아까워도 마시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또 한 번 사용한 PET병에 약수를 담아 먹는 것도 좋지 않겠죠. 겨울에는 그나마 낫지만, 여름에는 더운 날씨에 오다가다 약수가 직사광선에 노출돼 온도가 쉽게 올라갈 수 있습니다. 다만 이걸 하루에 어느 정도까지 마시면 안전한 것인지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습니다. 환경호르몬이 물에서 생성된 것인지, PET병에서 나온 것인지도 논란거리입니다. 또 세계에서 인공 에스트로겐을 수질 검사 기준에 넣은 나라는 아직 없습니다. 미국만 이걸 후보군에 올려놓고 있는데, 최종적으로 포함될지는 모릅니다. 해외에서도 생수의 상당량은 PET병에 담겨 유통되고 있습니다.

국내 생수업체들은 이번 분석 결과에 대해 입을 닫고 있습니다. 입장을 내놓은 바 없습니다.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테니까요. 업체들이 절차상 잘못한 것도 없습니다. 생수 수질검사 기준에 인공 에스트로겐과 같은 환경호르몬 기준치가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생수업체도, 정부도, 소비자도, PET병 생수의 환경호르몬을 좀 더 걱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무덤덤합니다. 선진국이 나선 뒤 뒤따라가면 늦습니다. 국내외에서는 환경호르몬이 실험쥐의 생식기 등에 장애를 초래한다는 연구 결과가 지속적으로 쌓이고 있습니다. 불안한 것은 환경호르몬의 부작용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불확실성입니다.

PET병 생수에 대한 자세, 마음의 결정을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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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잘 모르면, 일단 피해가고 보자는 안전제일주의에 기대기로 했습니다. 속 편한 게 최고입니다. 집에서는 끓인 수돗물을 유리병에 담아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님이 큰 냄비에 팔팔 끓여주신 보리차입니다. 무미한 생수를 버리고, 구수한 복고풍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환경호르몬에서 멀어지려면 물을 끓이고, 보리를 우려내고, 또 식히고, 무거운 유리병에 담고, 이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밖에서는 PET병 생수를 자제하기로 했습니다. 원래 이런 거에 유난을 떠는 스타일은 아닌데, 현재로서는 그게 환경호르몬의 역습을 피하는 최선의 전략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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