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 비극이 어디서 시작됐을까요? 대한민국이 어쩌다가 최순실 씨와 한 줌도 안 되는 그의 측근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놀아나게 됐을까요? 가장 큰 원인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고 권좌에 오른 뒤에도 최순실 씨와의 사적인 인연을 끊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집권 이전에 두 사람의 관계가 아무리 돈독했다 하더라도 취임 이후에는 공사(公私)를 확실히 구분했어야 했는데 여기서 실패한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몇 달 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또 저지릅니다. 정유라 선수 사건을 조사했던 문체부 노태강 체육국장과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이 있는 사실대로 보고하자 유진룡 당시 문체부장관 면전에서 ‘나쁜 사람들’이라며 질책했습니다. 두 사람은 며칠 뒤 한직으로 좌천됐고 서미경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도 전격 경질됐습니다.
그럼 박 대통령은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일면식도 없는 노태강 체육국장과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을 ‘나쁜 사람들’이라고 판단했을까요? 누군가가 박 대통령에게 아주 부정적으로 보고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최순실 씨가 직접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든지, 아니면 일명 청와대의 ‘문고리 3인방’이 했든지 둘 중의 하나임이 틀림없습니다.
노태강 체육국장은 문체부 내에서 능력이 출중하고 성품도 강직해 ‘차기 장관감’으로 신망을 받던 공무원이었습니다. 인사 고과에서도 선두를 달렸습니다. 그런데 사실대로 보고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루아침에 된서리를 맞은 것입니다. 최순실 씨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보고를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대한민국 모든 공무원이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달 25일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제가 어려울 때 최순실 씨가 도와줬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의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이 최순실 씨를 도운 것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3년 전 ‘승마 사건’ 때를 비롯해 박 대통령은 국가 원수의 지위를 망각하고 최순실 씨를 사사로이 도운 것이 분명합니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씨의 각종 부탁을 일언지하에 단호하게 거절했다면 오늘의 사태는 오지 않았을 것이고 당연히 그 측근들의 국정농단과 ‘호가호위’도 없었을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2년 ‘국민 행복시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모든 국민이 행복해지는 나라를 꼭 만들어 ‘100% 대한민국’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대한민국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이라는 믿기 힘든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순실 행복시대’ ‘국민 불행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