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9일, 제주해양경비안전서 수사관들은 제주항 제6부두에서 완도행 여객선을 기다리던 택배 차량을 발견했다. 새벽 6시, 해경은 택배 차를 몰던 40살 중국동포를 붙잡았다. 짐칸엔 한족 등 중국인 5명이 숨어 있는 상태였다. 모두 중국 단체관광 상품을 구매하고, 그 틈에 끼어 제주에 들어온 무비자 관광객이었다. 제주에서 중국인은 비자가 면제다. 2006년부터 제주 관광 활성화를 위해, 30일간 무비자 관광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SBS 뉴스토리(매주 화요일 밤 8시 55분 방송)에선 지난달 5일, 무비자 제도를 악용해 밀입국을 시도하는 중국인 실태를 보도했다.
해경이 첩보를 확인하고 급습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지금쯤 육지 어딘가에서 불법체류자로 일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가려던 전남 완도는 길어야 4시간 거리. 중국을 떠난 지 만 하루 만에 그는 밀입국자로 제2의 인생을 살았을지 모른다. 이들의 범행은 실패했지만, 수많은 중국인이 이런 수법으로 밀입국하고 있다고, 해경은 보고 있다. 그들은 숨을 수 있는 짐칸 어디든 밀입국 통로처럼 악용할 수 있지만, 해경이나 해양수산부 직원이 여객선에 실린 화물차를 모두 열어볼 순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제주에 들어온 뒤 나가지 않은 불법체류자가 1,409명이라고, 법무부 제주출입국관리사무소는 집계했다.

제주도에서 내륙으로 밀입국하는 과정이 얼마나 쉽기에, 이런 범죄가 기승인 걸까. 나는 해경 소속 단속반과 함께, 제주와 전남 완도를 오가는 여객선 내부를 확인했다. 전남 완도해양경비안전서 이정형 수사관의 말이다. "차량 내 모든 승객이나 이런 분들은 다 객실로 이동해야 되는데 그 무사증 중국인들은 차량 내에서 대기하고 운전자는 객실로 이동합니다." 하지만, 화물차 안에 사람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할 순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숨어 있는 밀입국자들 앞에선 해경도 속수무책이다.
지난 1월 초, 이정형 수사관은 다급한 범죄 신고를 받았다. 레저용 승합차 지붕 적재함 즉, 루프박스를 이용해 중국인들을 육지로 날라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였다. 신고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다. 곧바로 완도항으로 출동한 해경은 루프박스 안에서 두 명의 중국인을 발견했다. 운반책은 내국인 남성이었다. 그는 발뺌했다. "처음에는 자신은 잘 모른다. 누가 이렇게 시켜서 단순하게 이동하는 거였고 위에 사람이 있었다는 거 자체도 몰랐다. 이렇게 진술을 했죠."
중국인들은 건강했을까. "아무래도 제주에서 완도까지 나오는 그 시간이 한두 시간 이상 있기 때문에, 협소한 공간에서 장시간 이렇게 누워 있다 보니까 아무래도 좀 멀미도 했던, 그런 상태였습니다."
오래 전 사건이라 이 중국인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실제 범행에 쓰인 차량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녹색 번호판이 달린 9인승 카니발. 운전석부터 열어봤다. 먹다 남아서 썩은 빵조각까지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음료수와 휴지 같은 쓰레기가 나뒹굴었다.

루프박스에 몸을 뉘어봤다. 정말 누울 수 있다. 루프 박스 길이는 1미터 80센티미터. 폭은 1미터 10센티미터라, 성인 두 명은 누울 수 있는 공간이다. 뚜껑은 누군가 밖에서 닫아줘야 한다. 뚜껑을 닫았다.
아주 캄캄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작은 빛이 보인다. 숨도 막힐 줄 알았는데, 어디선가 바람이 조금씩 들어온다. 루프박스 안에서 내 음성을 녹음해봤다.
"여기 있는 숨구멍 때문에 숨은 쉴 수가 있고요. 양쪽으로 숨구멍이 총 5개가 있고, 저는 숨구멍 통해서 바깥에 불빛이 보이는데 아, 바깥이 실내에 있는지 실외에 있는지 차가 움직이는지 지금 어떤지 볼 수가 있습니다."
작은 빛이 들어오는 구멍은, 호흡곤란을 우려해 일부러 뚫어놓은 숨구멍이었다. 루프 박스 내부 높이는 40센티미터. 둘이서 눕는다면, 몸을 뒤척이지 못한 채 꼼짝없이 버텨야 한다. 중국인들은 제주에서 완도로 가는 쾌속선에서 누운 자세로 2시간 반을 버텼다고 진술했다. 4시간이 걸리는 일반 여객선 대신, 쾌속선을 타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빨리 밀폐된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서다.

보통 승합차를 밀입국 전용차로 교묘하게 개조한 사람은 40대 내국인이었다. 구속돼 1심 재판에 넘겨진 그는 이런 수법으로 두 차례나 중국인들을 밀입국을 시켜준 사실이 있다고 진술했다.

● 가짜 한국 신분증까지 공급해서 송출
제주와 완도를 취재하면서, 나는 중국인들의 밀입국 시도가 갈수록 조직적이고 대범하게 진화하고 있단 걸 확인했다. 그리고 단순히 몰래 이 땅에 입국하는 게, 밀입국 범죄의 완성은 아니란 사실도 알았다. 제주해경에 붙잡혀 조사를 받던 중국인 밀입국자의 얘기를 떠올렸다.
해경 통역관이 뜻밖의 얘기를 옮겨줬다. "육지에 온 후에 돈을 주면은 신분증을 만들어 준다고 했답니다." "신분증은 어떤 신분증이요? 한국인 신분증이요?" "네. 한국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준다고."
지난 4월 23일 오후, 제주해경 외사과에서 난 밀입국을 시도한 중국인 남성을 만났다. 그는 분명히, 한국인 신분증을 받는 조건으로 밀입국 조직에 돈을 보냈다고 했다. 통역관의 도움을 받아, 취재를 이어갔다. "한국 주민등록증을 본인 사진을 보내면 넣어준다는 겁니까?" 중국인 밀입국자의 대답은 의외였다. "진짜를 만들어 준다고 했기 때문에 자기 얼굴을 쓸 거라고 했습니다." 통역관이 덧붙였다. "그러니까 자기가 알고 있기에는 진짜 주민등록증이라고 합니다."
그가 밀입국 실행 조직에 보낸 돈은 우리 돈 600만 원 정도. 이 가운데 약 100만 원이 신분증 제작과 운송비였다. 사진에만 밀입국 중국인의 얼굴이 들어간, 가짜 한국 주민등록증. 겉으로 보기엔 한국 신분증 같지만, 사실은 가짜다.
이런 신분증이 중국인 밀입국자에게 필요한 이유가 뭘까. 국내 중국인들의 사정에 밝은 사람을 취재해야 했다. 나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중국동포 협회장 김숙자 씨를 만났다. 그는 꼭 10년 전 중국동포가 겪던 일을 지금은 중국인 밀입국자가 겪는다고 말했다.
"요즘 중국인 불법체류자는 일 강도는 더 높고 더 하지만 봉급은 (중국) 동포들보다 좀 적게 받는 곳으로 가요. 시내를 벗어나서 저기 평택 이남 어디 거기 좀 시골 쪽에 가든(식당)이나 이런데."

취재 도중 만난 한 이민전문가는 그들은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한국인 신분증만 있으면 곧잘 중국인을 고용한다고 말했다. 단속에 걸려도, 한국인인 줄 알았다고 발뺌하려는 속내라는 거였다. 최근 농촌지역에선 다문화가정이 늘면서, 과거처럼 한국어를 못한다고 무조건 외국인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했다.
● 메신저로 주문…제작·배송에 단 사흘
해경에 붙잡힌 중국인들은 한국에서도 돈만 보내면, 위조 신분증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쉽게 믿기 어려운 진술 내용이었다. 나는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쓴다는 메신저 앱 QQ를 통해 한국 여권과 신분증을 실제로 살 수 있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중국인 유학생의 도움을 받아, 해당 아이디로 신분증 위조를 해줄 수 있느냐고 메시지를 보내봤다.


원하는 이름과 주소, 증명사진만 보내면 하루 만에 신분증을 만들 수 있다는 그에게, 신분증 제작을 의뢰해 봤다.
"저희가 작업을 할 때 해상도를 많이 높여서 할 거거든요. 지문은 상관없습니다."
바로 다음 날, 위조 신분증 완성본을 찍은 인증 사진이 메일로 도착했다. 그걸 보낸 뒤부터, 김 실장이란 인물은 수시로 거래의사를 확인했다.

이때부터 취재팀은 이들의 뒤를 쫓고 있던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와 함께 김실장이라는 인물을 추적했다. 두 장의 신분증을 제작한 그는 내가 송금을 미루자, 돌연 신분증부터 보내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그만큼 품질에 자신이 있다는 거다.
"제가 먼저 (배송) 작업을 할게요. 확인하시고 입금하시고 물건을 받아가세요."
처음엔 직접 만나서 거래하겠다던 남성은 배송 날짜가 다가오자 여러 차례 말을 바꿨다. 그리고 이틀 뒤, 신분증을 찾아야 할 곳을 알려줬다.
"(오후) 3시 30분까지 물건을 받으시러 가면 됩니다. '김실장'이라는 이름으로 물건을 보냈고."

"들어가셔서 여직원 있을 거예요. 바꿔주세요."
여직원에게 휴대전화가 건네지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행사 직원에게 지시 사항을 전달하는 그의 음성이 내 휴대전화에 고스란히 녹음됐다.
"'김실장' 님 물건 찾으러 왔고요. 거기 드리면 될 것 같은데."
능수능란하게 상황을 통제하는 김실장. 불안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나를 안심시키는 여유를 부린다. 나는 어디서 그가 날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거기 직원들이 있는 곳이라서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물건만 받으세요. 아무 말씀 하지 마시고 그냥 물건만 받으시면 돼요."
통화가 끝나자 여직원은 노란색 서류 봉투를 건넸다. 이중으로 봉해진 봉투. 그 속에 든 건 발급일자와 발행처는 물론 홀로그램까지 선명한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이었다. 발급 일자는 2012년. 이 날짜에 맞춰 일부러 낡아 보이도록 만들었다는 위조 신분증은 실제 주민등록증으로 보일만큼 정교하게 제작됐다.
경찰 수배자 정보를 확인하는 모바일 시스템에 주민번호를 입력하자, '형식에 맞지 않는 주민번호입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가 뜬다. 가짜 주민번호로 된 허위 신분증이란 얘기다. 내국인 사기꾼들은 이런 신분증으로 타인 행세를 할 수도 있고, 밀입국 중국인들은 한국인 행세를 할 수도 있다.


● 국내 단순노무직은 언제나 부족…'한족 네트워크' 믿고 밀입국
이렇게 한국인 신분으로 위장한 중국인 밀입국자가 급증하는 근본 원인은 뭘까. 나는 법무부 외국인 통계부터 뒤져봤다. 국내에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중국인이 빠르게 늘어난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13년 현재, 중국동포를 제외한 한족 등 중국인 수는 28만 명이 넘는다. 5년 새 2.5배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중국동포는 1.6배, 전체 외국인 숫자가 2배로 각각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이민정책연구원 오정은 박사의 분석은 이렇다. "여기 이미 (중국인 불법체류자인) 동향인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죠. 오늘날에는 네트워크가 이제 인터넷망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일자리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밀입국한 중국인들은) 불법이든 합법이든 일단 국내에 오면 일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합법적인 중국인 체류자가 늘었기 때문에, 이들을 믿고 한국행을 결심하는 한족 불법체류자도 늘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오정은 박사는 국내 산업구조상 늘 단순노무직이 필요한 노동시장 특성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농업 같은 경우는 굉장히 특수한 단순노무직이라서요. 굉장히 일손이 많이 필요한 시기가 몰려 있거든요. 값싼 노동력으로 아주 최저임금보다도 더 낮은 상황에서도 들어오기 때문에 한국인 고용주들은 그 저렴한 임금을 매력 삼아서 계속 고용합니다."

나는 이번 취재를 통해, 한족 등 중국인 밀입국 범죄가 또 다른 사회문제로 굳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대책은 뭘까. 해경은 연안 항구에 밀입국 감시 장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위안화의 가치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 우린 중국인이 다른 곳이 아닌 제주도에서 돈을 써주길 바라며 무비자 제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중국 내 송출 조직은 이런 편의를 놓치지 않았다. 달콤한 문구로 농촌의 한족 젊은이를 꾀어, 밀입국자로 만들고 있다.
얼마나 많은 중국인이 제주를 거쳐, 육지 밀입국에 성공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우리 이민 당국이 먼저 나설 수밖에 없다. 중국 당국과 공조해 밀입국 시도부터 억제하려는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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