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월 전 그 헤렌벤을 찾았습니다. 소치 입성에 앞서 헤렌벤에서 전지훈련을 하던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팀을 취재하러 간 겁니다. 프랑스 폰트로모에서 쇼트트랙 대표팀과 훈련하다 헤렌벤으로 넘어간 이승훈 선수의 동선을 따라 똑같이 이동했습니다. 밴쿠버 올림픽 이후 네 시즌째 빙상 종목을 취재해왔기 때문에, 헤렌벤에 도착하는 순간 조금 벅찬 감정이 차오른 것도 사실입니다.
이상화, 모태범 선수를 중심으로 한 단거리 선수들, 이승훈이 이끄는 팀추월 대표팀의 훈련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취재한 것도 기자로서 큰 기쁨이었지만, 훈련 시간 전후의 일반인 대관 시간에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을 지켜본 것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인구 3만 정도의 소도시인 헤렌벤은 유럽의 소도시가 대개 그렇듯 우리나라와 같은 다양한 유흥 문화가 없는 조용한 마을입니다. 헤렌벤에서 우연히 잡아탄 택시의 운전기사가 크라머와 함께 사이클을 타는 사이라고 자랑할 정도니, 동네 분위기가 대충 어떨지 그려질 겁니다.
그렇다 보니 스케이트장은 자연스레 사랑방이자 이른바 ‘디스코텍’ 역할을 합니다. 주말 저녁이면 신나는 음악에 조금 화려한 조명이 켜지고, 사람들은 군것질을 하면서 신나게 스케이트를 탑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한 할머니가 보행보조기구에 의지하면서도 할아버지와 나란히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트랙 가장자리에서 느릿느릿 얼음을 지칩니다. 그 연세에도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이 참 여유로워 보였고, 무엇보다 나란히 함께 스케이트를 타는 뒷모습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이 해묵은 사진을 끄집어내서 거의 1년 만에 헤렌벤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은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때문입니다. 진모영 감독과 프로듀서 한경수씨를 인터뷰한 이주형 기자의 취재파일(▶바로가기: [취재파일] "놀랍다" 외국 관계자도 눈물…'님아…' 탄생 비화)을 보면, 이 영화가 죽음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아름답게 늙어가고, 인간답게 죽는 과정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기에, 아차 싶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헤렌벤에서 봤던 노부부의 뒷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시작해서 사랑 이야기로 끝나는 요상한 모양새입니다만, 그리고 사진 한 장에 너무 과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1년 전 길고 험난했던 한 달여 간의 올림픽 출장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올림픽 2회 연속 우승을 이룬 이상화의 위대함, 메달 색상과 관계 없이 진정한 ‘피겨여왕’임을 보여준 김연아의 마지막 무대 못지않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그 뒷모습. 사진과 영화 속 부부의 모습을 우리에게서도 자주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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