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개정 과거사정리법이 시행된 지난 2월 이전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진실 규명 결정을 받은 피해자라면, 국가배상 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패소 확정판결을 받았더라도 다시 같은 소송을 낼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오늘(23일) 망인 A 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A 씨는 한국전쟁 직전인 1949년 경찰의 좌익 세력 소탕 작전의 일환으로 재판 절차 없이 총살됐습니다.
A 씨 유족은 앞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패소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국가가 불법 행위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판단했습니다.
국가재정법상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원칙적으로 불법 행위 시점으로부터 5년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진실화해위는 2023년 8월 "경북 영덕 군경이 좌익 활동 또는 빨치산에게 협조했다는 혐의 등을 이유로 A씨 등 민간인 20명을 적법 절차 없이 살해한 행위는 불법"이라는 진실 규명 결정을 했습니다.
A 씨 유족은 이 결정에 근거해 국가를 상대로 재차 손해배상 소송을 냈습니다.
소송의 쟁점은 패소가 확정된 선행 소송의 기판력이 이 사건에도 미치는지였습니다.
기판력은 앞서 확정된 판결의 쟁점과 내용에 대해 추후 다른 소송에서 다툴 수 없도록 하는 소송법상 효력을 뜻합니다.
2024년 4월 선고된 1심과 지난해 5월 선고된 2심은 모두 선행 사건의 기판력이 있다는 이유로 A 씨 유족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2월 26일 시행된 개정 과거사정리법에 근거해 원심을 뒤집고 유족 측 손을 들어줬습니다.
개정법 61조는 진상 규명 결정을 받은 사건으로 발생한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에는 국가재정법상 소멸시효(5년)와 민법상 소멸시효(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이 법 부칙 제5조에는 "이 법 시행 전에 진실 규명 결정을 받은 사람은 법 시행일로부터 3년 이내에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 조항에는 '법 시행 전 진실 규명 결정을 받은 사람'의 범위에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청구기각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을 포함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들 조항은 국가가 과거 반민주적·반인권적 행위의 희생자 배상이 철저하지 못했던 점에 대한 반성의 토대 위에서 장기 소멸시효 기간을 배제하거나 스스로 시효 이익을 포기하고, 피해자가 손해배상 소송을 새로 제기하더라도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한 청구기각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미치지 않도록 한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이어 "개정법 시행 이전에 진실 규명 결정이 이뤄졌다면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한 패소 판결이 확정됐더라도 희생자 유족 등은 개정법 시행일로부터 3년 내 다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며 "이는 개정법 시행 전 이미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돼 법 시행 당시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도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 측은 "이번 판결은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 특례에 관한 적용례인 개정 과거사정리법 부칙 제5조가 개정법 시행 당시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에도 적용된다는 새로운 법리를 판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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