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25일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2 2026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프로축구 K리그 시·도민구단들이 잇따른 혈세 낭비와 관리 부실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현실 속에서도 수뇌부들은 시민 혈세로 호화 외유성 출장을 떠나고, 허술한 내부 통제 탓에 수십억 원의 공금이 줄줄 새는 사태까지 벌어지며 구단 운영 실태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2026시즌 K리그 1·2부 전체 29개 구단 중 시·도민구단은 강원FC, 인천 유나이티드, FC안양, 부천FC, 광주FC 등 17개(58.6%)로 절반을 훌쩍 넘습니다.
이들 구단에는 매년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명목으로 예산이 투입됩니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지난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K리그 시·도민구단에 배정된 지자체 예산은 총 1천511억 원에 달합니다.
구단 1곳당 평균 약 88억 원의 세금이 들어가는 셈입니다.
▲ 지자체 프로축구단 칸쿤 휴양 출장 의혹 관련 고발 기자회견
이처럼 시민의 혈세에 기대어 운영되지만, 구단 수뇌부들의 씀씀이는 방만했습니다.
그제(4일) 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는 지난 6월 멕시코 휴양지 캉쿤 등으로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9개 시·도민구단 대표자들을 최근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이들은 한국프로축구연맹 주관 행사에 참석하며 다분히 외유성 일정이 포함됐음에도 이코노미석이 아닌 비즈니스석을 고집했습니다.
특히 '이코노미석 선택 시 약 600만 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연맹의 사전 안내 공문에도 1인당 1천592만 4천 원에 달하는 비즈니스석 비용을 각 구단 예산으로 집행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곳간 문도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김포FC에서는 내부 직원이 수년에 걸쳐 총 80억 원대의 공금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며 허술한 관리 시스템의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직원이 허위 보고로 거액을 유용할 때까지 감시망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대표이사가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임했고,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선수단은 최근 6경기 연속 무승의 늪에 빠졌습니다.
상당수 시·도민구단은 자생적인 수익 기반이 취약해 지자체 지원에 의존하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산이 없는데도 여름 이적시장에서 선수를 영입하려고 시의회에 손 벌려 추가경정예산을 타내는 건 예사입니다.
지방선거 결과나 지자체의 정책 기조 변화에 따라 구단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현재도 상당수 구단은 지자체의 세수 부족 여파로 예산 동결 또는 삭감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FC안양은 올해 연간 집행 예산을 지난해와 같은 100억 원 수준으로 묶고 긴축 재정에 들어갔습니다.
성남FC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불투명해지면서 예산 삭감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고, 안산 그리너스는 K리그2(2부) 최저 수준인 55억 원의 예산으로 운영을 이어가며 수년째 성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민 혈세 투입을 향한 지자체의 잣대도 한층 엄격해졌습니다.
타 종목의 사례지만, 최근 김상욱 울산시장이 지역 프로야구 시민구단을 향해 "시민 동의가 없다면 더 이상 시비를 지원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은 대목은 K리그 시·도민구단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스스로 수익과 가치를 창출하는 자생력 없이 공공재원에만 기대는 구조가 이어진다면, '프로'가 아닌 '실업구단'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K리그 시·도민구단은 말이 시·도민구단이지, 시민의 의사는 운영에 거의 반영되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민, 팬들이 주인이 되는 '조합'이 아닌, 지자체 산하 법인으로 설립됐습니다.
주식회사, 재단법인, 사단법인 등 법적 형태는 다양하지만, 지자체장이 운영자를 임명하는 구조인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지자체장이 곧 '구단주'입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자생력을 갖추지도 못하다 보니 정치권 입김에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게 시·도민구단이 처한 현실입니다.
선거철이 되면 K리그 경기장에서는 잡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2024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 시민구단이 원래 입던 파란색 유니폼 대신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홈 경기에 나서 논란을 빚었습니다.
이 구단 구단주는 국민의힘 소속이었습니다.
최근엔 한 시민구단 사무국장이 올해 지방선거 기간 특정 후보의 선거 홍보물을 직원 단체 대화방에 올렸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때는 수도권의 한 시민구단 업무 회의에서 '어떻게 하면 대통령을 도울 수 있을까'를 두고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시·도민구단이라는 용어로 팬과 납세자들의 눈을 가릴 게 아니라 실제 성격에 맞게 '시·도립구단'이나 '지자체구단'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시·도민구단이 58.6%에 달하는 지금의 구조가 결국 K리그 전체의 경쟁력과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라는 비판도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화성FC에 이어 올해 김해FC, 용인FC, 파주 프런티어까지 최근 2년 사이 4개 구단이 새로 합류한 K리그2의 경우에는 17개 팀 중 13개가 시·도민구단으로 그 비율이 76.5%입니다.
K리그 행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외형을 키우는 데만 집중할 게 아니라 그만한 운영 역량과 관리 체계를 갖췄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며 "구단이 늘어날수록 관리해야 할 인력과 예산, 행정 부담도 함께 커집니다.
이를 감당할 준비도 없이 지자체 주도로 급하게 창단된 구단 수만 계속 늘리다 보면 결국 리그 전체의 경쟁력까지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이러한 비판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현장의 항변도 만만치 않습니다.
K리그 행정에 밝은 한 실무 책임자는 "최근 급격히 늘어난 시·도민구단 중 일부 운영이 미흡한 곳이 있다 보니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지만,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시민구단만의 가치도 분명 존재한다"며 "지방소멸 시대에 구단을 통한 지역 홍보 효과는 물론, 원정 팬 유입에 따른 지역 경제 활성화 기여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짚었습니다.
이어 "문화·예술 분야나 비인기 종목 등 지자체 지원을 받는 다른 사례도 많다"며 "프로야구 등 타 종목이나 해외 리그에는 시민구단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다 보니, 상대적으로 뚜렷한 비교군 때문에 유독 더 날 선 눈총을 받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병지 강원FC 대표이사(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역시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시민구단의 순기능을 강조했습니다.
김 대표는 "강원FC는 지난 1년 동안 강원특별자치도를 전국에 알리는 훌륭한 홍보·마케팅 역할을 수행했다"며 "도의 투자 대비 약 5배인 700억 원 규모의 홍보 효과를 창출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역설했습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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