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한국 영화는 <왕과 사는 남자>가 1,6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점유율 회복세를 보였다. 흥행 성적만 보면 지난해 이어졌던 위기론이 무색해 보일 정도다. 하지만 영화계가 바라보는 상황은 달랐다. 지난 4월 열린 '2026 한국 영화 산업의 위기와 대책' 기자회견에서 영화단체연대회의는 한국 영화 산업의 위기를 제작·배급·상영 구조 전반의 문제로 진단했다. 이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 단어는 '홀드백(극장 상영 이후 다른 플랫폼으로 넘어가기까지의 유예기간)'과 '스크린', 그리고 '펀드'였다. 이들은 상업영화 제작 편수 감소와 투자 위축이 맞물리며 산업 기반이 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일부 흥행작에 스크린이 집중되는 구조가 굳어지면서 중소 규모 영화가 관객을 만날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극장 상영 기간과 플랫폼 이동 시점, 투자 재원 감소 문제를 현재 산업이 직면한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한국 영화는 살아난 걸까, 살아남은 걸까 ① [취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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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작에는 개봉 이전부터 상당한 규모의 자본이 투입된다. 투자자는 향후 수익을 기대하고 제작비를 출자하며, 제작사는 이를 바탕으로 영화를 완성한다. 영화계는 현재 제작비가 매우 높은 수준인 데 비해 투자 회수는 어려워졌다고 보고 있다. 기자회견에서도 투자 기반 약화와 제작 편수 감소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특히 2025년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 상업영화 편수가 30편 안팎으로 줄어든 점이 언급됐다. 영화인들은 제작 편수 감소와 투자 기반 약화를 한국 영화 위기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근거로 제시하며, 스크린 집중 제한 제도와 투자펀드 조성을 주요 대책으로 제안했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영화가 어떻게 수익을 회수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 한 편은 극장에서만 수익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극장 상영 이후 IPTV와 TVOD(건별 결제형 VOD), SVOD(구독형 OTT), 해외 판매, 방송 판권 등 여러 유통 창구를 거치며 추가 수익을 확보한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한국영화 수익극대화를 위한 홀드백 분석 연구」에 따르면 영화가 TVOD, 즉 건별 결제형 VOD로 공개된 뒤 SVOD, 즉 구독형 OTT로 이동하기까지의 기간은 2021년 평균 193일에서 2024년 78일, 2025년 상반기에는 54일까지 단축됐다. 예전에는 관객이 극장 개봉을 놓친 영화를 한 편씩 결제해 보는 기간이 비교적 길었지만, 이제는 구독형 OTT에서 볼 수 있는 시점이 훨씬 빨라진 것이다. 이 기간이 짧아질수록 영화는 건별 결제 시장에서 추가 수익을 회수할 시간이 줄어든다. 결국 극장 이후 수익 회수 과정에서 구독형 플랫폼으로 넘어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것은 해당 연구가 영화계 내부의 오래된 통념에도 의문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OTT 공개 시점이 빨라질수록 극장 관객이 감소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관련 연구에서는 홀드백 기간이 길어질수록 관객 수가 증가한다는 통계적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다. 오히려 관객 규모와 더 밀접하게 관련된 변수는 스크린 수였다. 이는 최근의 논쟁이 단순히 OTT 공개 시점만의 문제가 아니라, 극장에서 영화가 얼마나 충분한 상영 기회를 확보하느냐의 문제와도 맞물려 있음을 보여준다.1) 영화계가 홀드백과 함께 스크린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기자회견에서는 한국 영화 위기의 원인으로 극장 시장의 과점 구조와 수직계열화 문제가 지적됐다. 국내 극장 시장이 소수 대형 체인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일부 흥행작에 좌석과 스크린이 집중되는 관행이 반복돼 왔다는 것이다. 흥행 가능성이 높은 한두 작품에 상영 기회가 몰리면 다른 영화들은 관객 반응을 확인할 시간도 충분히 갖지 못한 채 조기 종영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영화단체연대회의는 이 같은 구조가 관객의 소비 습관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극장에서 오래 상영되지 못한 영화들이 빠르게 IPTV나 OTT로 이동하면서 관객의 극장 방문 유인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참석자들은 특정 영화에 집중해 단기 매출을 올리는 방식이 결과적으로 극장의 장기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극장 스스로 관객을 잃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극장 체인이 배급사를 계열사로 두는 구조도 문제로 거론됐다. 극장과 배급이 같은 기업집단 안에 묶이면 배급사와 극장 사이의 긴장 관계가 약해지고, 제작사와 외부 배급사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기자회견에서는 계열 배급사들이 상영관을 보유한 관계사를 배경으로 작품 확보와 투자 유치 과정에서 우월한 위치를 점해 왔다는 비판도 나왔다. 영화계는 이러한 구조가 작품 선정과 투자 판단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한국 영화의 수익성 저하와 제작 편수 감소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영화계는 현재 한국 영화 산업이 여전히 큰 제작비 부담과 수익성 악화라는 이중 압박에 놓여 있다고 보고 있다. 2025년 한국 상업영화의 평균 총제작비는 전년보다 낮아졌지만 여전히 100억 원대에 이르고, 평균 추정수익률은 -33.13%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2) 문제는 제작비 규모가 클수록 손익분기점도 함께 높아진다는 데 있다. 과거에는 극장 상영 이후 부가판권과 해외 판매 등을 통해 일부 수익을 추가로 회수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유통 환경 변화로 이러한 수익 구조도 달라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TVOD 이후 SVOD로 이동하는 기간은 지속적으로 짧아졌다. 영화계는 이러한 변화가 영화의 수익 회수 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높은 제작비 부담과 수익률 악화, 유통 환경 변화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투자 환경 역시 이전과는 다른 조건에 놓이게 됐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은 중간 규모 영화다. 수백억 원 규모의 대작은 대기업 투자와 배급망을 통해 자본을 조달할 수 있다. 독립영화는 공공지원이나 영화제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제작비 수십억 원 규모의 장르영화와 신인 감독 프로젝트는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다. 위험은 크지만 기대 수익은 상대적으로 낮고, 투자 회수 구조도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1편에서 살펴본 중간 규모 영화의 감소는 단순히 창작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 구조의 결과이기도 하다. 현재 시장은 실패를 견딜 수 있는 영화보다 실패해서는 안 되는 영화만을 만들도록 압박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는 대규모 펀드와 함께 중저예산·중간 규모 영화를 위한 별도 펀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중간 규모 펀드의 경우 모태펀드가 50% 이상을 출자하고, 나머지는 개인 출자로 조성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개인 출자금에 대한 소득공제 등 세제 혜택을 통해 기업과 금융권, 일반 투자자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프랑스의 소피카(SOFICA)도 사례로 거론됐다. 소피카는 세제 혜택을 결합해 민간 자본을 영화산업으로 유도하는 프랑스의 영화 투자 제도다. 투자자에게는 세금 감면 유인이 제공되고, 영화산업은 공공 재정만으로는 부족한 제작 재원을 보완할 수 있다. 기자회견에서는 이와 같은 방식의 제작자 중심 펀드를 통해 순제작비 30억 원 이하 중저예산 영화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영화 <변호인>과 <강철비>를 연출한 양우석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상업영화 평균 제작비가 100억 원에 육박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최소 1천억 원 규모의 펀드들이 여러 개 조성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영화산업의 제작비 규모를 고려할 때 기존 투자 재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대규모 펀드 조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자회견에서는 대형 펀드뿐 아니라 중저예산 영화를 위한 별도의 투자 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영화인들은 현재의 모태펀드 규모만으로는 제작비 부담이 커진 영화산업 환경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영화산업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해 민간 자본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한국 영화 시장에는 흥행작과 함께 관객도 일부 돌아왔다. 문제는 그 성공이 산업 전체의 재생산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영화 한 편이 성공해도 그 수익이 다시 새로운 영화의 제작비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산업은 성장하지 않는다. 자본이 위험을 분산하지 못하고 안전한 프로젝트에만 집중된다면 제작 편수는 줄고 새로운 창작자는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영화계가 스크린과 홀드백, 펀드를 함께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정책이 아니라 영화산업 안에서 수익이 어떻게 회수되고, 다시 어떻게 투자로 환류될 것인가를 둘러싼 하나의 문제다.
올해 들어 나타난 흥행은 한국 영화가 여전히 관객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러나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는 것은 흥행 그 자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 편의 성공이 다음 작품의 제작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가 존재하느냐다. 산업은 흥행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재투자를 통해 성장한다. 결국 지금 한국 영화가 직면한 질문은 단순히 관객이 돌아왔느냐가 아니다. 흥행의 수익이 과연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자본으로 돌아오고 있는가. 그것이야말로 한국 영화가 살아났는지, 아니면 몇 편의 영화만 살아남은 것인지를 가를 기준이 될 것이다.
* 참고문헌 *
1)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 수익극대화를 위한 홀드백 분석 연구」, 2026. 연구는 회귀분석 결과 R²=0.937을 제시했으며, 변수 중요도 분석에서는 스크린 수의 중요도가 93.4%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2) 영화진흥위원회, 「2025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라. 한국영화 제작비와 추정수익률', 2026.
[SBS 뉴스토리 565회] 한국 영화, 반격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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