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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는 살아난 걸까, 살아남은 걸까 ① [취재파일]

[뉴스토리 565회] 천만 영화가 돌아왔다. 그런데 왜 영화인들은 위기를 말할까

한국 영화는 살아난 걸까, 살아남은 걸까 ① [취재파일]
[SBS 뉴스토리 565회] 한국 영화, 반격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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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600만 관객을 넘어선 데 이어 역대 한국 영화 흥행 2위권에 올랐고, <살목지>, <군체> 등도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다. 지난해 내내 이어졌던 한국 영화 위기론과 달리, 올해 들어서는 반등론도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 수치도 나쁘지 않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한국 영화 관객 수는 2,401만 명으로 전체 관객의 75.3%를 차지했고, 매출액 역시 2,333억 원으로 전체의 73.4%를 기록했다. 1) 전년 동기 관객·매출 점유율이 각각 53%대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뚜렷한 회복세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영화계 내부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영화감독조합과 프로듀서조합, 시나리오작가협회 등 13개 영화단체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영화 산업 위기를 경고했다. 여기에는 단순한 비관론 이상의 이유가 있다. 영화인들이 보고 있는 숫자는 흥행 성적표가 아니라 산업 구조이기 때문이다.

흥행작의 등장은 산업 회복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산업이 회복됐다고 말하려면 특정 작품 몇 편의 성공이 아니라 제작과 투자, 배급, 상영 전반의 순환 구조가 살아나야 한다. 지난해 한국 영화 시장이 기록한 수치는 참담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25년 한국 영화 관객 수는 4,358만 명으로 전년 대비 39% 감소했고, 매출액은 4,191억 원으로 39.4% 줄었다.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면 각각 2005년 이후, 2009년 이후 최저치다. 한국 영화 관객 점유율은 41.1%까지 떨어졌고 매출 점유율도 40% 수준에 머물렀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코로나 이전과의 격차다. 2025년 한국 영화 관객 수는 2017~2019년 평균의 38.5% 수준에 불과했고 매출액은 45.1% 수준이었다. 반면 외국영화는 각각 58%, 69.8% 수준까지 회복했다. 2) 같은 시장 환경에서도 한국 영화의 회복이 훨씬 더딘 것이다. 이는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를 시사한다.
 
허남웅 / 영화평론가
"올해 상반기 한국 영화는 살아난 게 아니라 산업 규모 자체가 예전보다 많이 쪼그라든 상태에서 일부 작품들이 성과를 내고 있는 상황에 가깝다고 봐요. 전처럼 시장 전체가 크게 성장하는 국면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지금 규모 안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천만 영화 한 편이 나왔다는 사실보다 얼마나 다양한 영화들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관객을 만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집니다. 지금은 흥행작 몇 편의 성과보다 산업 전체가 어떤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는지를 봐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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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수는 흥행작이 나오면 단기간에 회복될 수 있지만 제작 기반은 한번 무너지면 복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영화 산업은 본질적으로 미래 산업이다. 오늘 개봉하는 영화는 이미 몇 년 전에 투자와 기획이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따라서 지금 극장가에서 보이는 흥행 성과는 현재 산업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가 아니라 과거에 만들어진 작품들의 성과에 가깝다. 반대로 오늘 투자 받지 못한 프로젝트들은 몇 년 뒤 스크린에 등장하지 못한다. 산업 종사자들이 위기를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이 보는 것은 현재의 박스오피스가 아니라 미래의 제작 파이프라인이다.

문제는 현재 한국 영화 산업에서 가장 크게 위축되고 있는 영역이 바로 그 파이프라인이라는 점이다. 영화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산업을 대작 영화와 독립영화,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중간 규모 영화로 구분해 왔다. 최근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영역으로는 중간 규모 영화가 지목된다. 대작은 상대적으로 대형 투자·배급망에 접근할 수 있는 반면, 제작비 수십억 원 규모의 중간 규모 영화나 신인 감독 영화, 새로운 기획을 시도하는 프로젝트들은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화계는 이러한 구조가 지속될 경우 다양한 규모의 영화가 공존하는 산업 생태계가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재 한국 영화 시장은 제작 위축과 투자 감소의 영향을 동시에 받고 있다. 상업영화는 제작비 부담이 여전히 큰 데 비해 수익률은 낮아지면서 투자 위험이 커지고 있다. 3) 투자자들은 자연스럽게 검증된 IP와 스타 배우, 대규모 프랜차이즈에 집중하게 된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흥행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 다양성을 약화시킨다. 과거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천만 영화 자체가 아니라 수많은 중간 규모 영화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환경이었다. 봉준호, 박찬욱, 연상호, 류승완 등 현재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들도 처음에는 중소 규모 작품과 장르영화를 통해 경력을 쌓아 올렸다. 산업이 건강하려면 실패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시장에서는 실패의 비용이 지나치게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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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시장은 이러한 구조 변화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영역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예술영화 생태계 구축을 위한 수요 중심 정책 연구」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4년까지 누적 기준으로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관객 비중은 전체 영화 관객의 1.2%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개봉 편수 비중은 7.5%였다. 다시 말해 작품은 꾸준히 공급되고 있지만 관객 수요는 그만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이를 '고밀도 공급·저밀도 소비' 구조로 분석했다. 관객 집중도도 높았다. 상위 2.6% 작품이 전체 관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반면, 하위 절반의 작품들은 전체 관객의 3%만을 공유했다. 관객 1,000명 미만 영화도 300편을 넘었다. 4)

이러한 관객 집중 현상은 최근 극장 시장 전반을 이해하는 데에도 시사점을 준다. 지난해 전체 극장 관객 수는 1억609만 명으로 여전히 1억 명을 넘겼다. 관객 감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간 1억 명 이상이 극장을 찾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문제는 그 관객들이 점점 더 적은 수의 작품을 선택한다는 데 있다. OTT의 성장 이후 관객들은 모든 영화를 극장에서 소비하지 않는다.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할 작품만 선택한다. 그 결과 흥행 가능성이 높은 소수 작품은 더 크게 성공하고, 그렇지 않은 영화는 관객과 만날 기회 자체를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영화의 품질 문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상영 기회의 문제이기도 하고 홍보비의 문제이기도 하며 관객의 소비 습관 변화 문제이기도 하다. 영화계는 이러한 승자독식 구조의 배경으로 스크린 집중 현상도 함께 지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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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 /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
"계속 지금 같은 형태로 극장만 남아 있게 되면 결국 관객들을 더 내쫓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관객 입장에서 보면 극장에 갔는데 몇 달 동안 비슷한 영화 몇 편만 계속 걸려 있는 거죠. 그러면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거나 다양한 작품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을 이유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의 규모와 성격이 다양해야 하고, 관객에게도 선택지가 많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극장이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는 공간으로 계속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립예술영화 시장에서는 배급 구조의 영세화도 나타나고 있다. 배급에 참여하는 회사 수는 늘었지만 한 회사가 맡는 작품 수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전용관 숫자도 수년째 큰 변화 없이 정체돼 있다. 지역 간 격차 역시 크다. 서울과 수도권에 관객과 상영 기회가 집중되는 반면, 일부 지역에서는 독립예술영화를 꾸준히 만날 수 있는 상영 기반이 부족하다. 영화계는 이러한 현상을 개별 부문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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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 /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
"천만 영화가 많이 나오는 것이 좋은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천만 영화 때문에 다양한 영화들이 사라졌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2019년 한국 영화는 천만 영화가 다섯 편이나 나왔지만 그 호황 자체가 이미 하나의 모순을 안고 있었습니다. 극장을 가진 대기업들이 배급과 투자, 제작까지 장악하면서 많은 이들이 천만 영화를 만드는 구조로 몰려갔습니다. 최근 '왕과 사는 남자'가 1600만 관객을 모으면서 다시 호황이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특정 흥행작에 의존하는 산업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의 위기는 코로나 때문만도, OTT 때문만도 아닙니다. 30년 동안 성장해 온 한국 영화 산업 내부에 쌓여 있던 구조적 모순이 드러난 결과라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시장 실패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위에서 어떻게 다양성을 회복하고 다시 공정한 경쟁 질서를 만들 것인가를 논의해야 합니다."

한국 영화를 둘러싼 논쟁은 위기냐 회복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시장은 회복되고 있다. 관객도 돌아오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제작 기반의 축소와 투자 위축, 중간 규모 영화의 감소, 신인 창작자의 진입 장벽 상승이라는 문제 역시 진행되고 있다. 두 현상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흥행작이 나왔다고 해서 산업 전체가 건강하다는 뜻은 아니며, 산업이 위기라고 해서 흥행작이 나올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지금 한국 영화 산업은 바로 그 두 현실이 겹쳐 있는 과도기적 국면에 놓여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천만 영화의 등장 자체가 아니라 그 성공이 산업 전체의 재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관객이 보는 것은 개봉한 영화지만 산업이 유지되는 조건은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들이다. 한국 영화는 살아난 것일까, 아니면 일부 영화들만 살아남은 것일까. 그 답은 올해 흥행 순위가 아니라 앞으로 3~5년 뒤 극장에 걸릴 영화들의 숫자가 말해줄 가능성이 크다.

# 2편에서 계속

* 참고문헌 *
1) 영화진흥위원회, 「2026년 1분기 한국 영화산업 결산」, 2026.
2) 영화진흥위원회, 「2025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요약문, 2026.
3) 영화진흥위원회, 「2025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2026, '제작비 및 추정수익률' 항목.
4)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예술영화 생태계 구축을 위한 수요 중심 정책 연구」, KOFIC 연구 2025-1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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