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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개혁을 향한 '분노의 에너지', 그 끝에 국민은 있나 [취재파일]

검찰 개혁을 향한 '분노의 에너지', 그 끝에 국민은 있나 [취재파일]
검찰 개혁은 우리 사회의 오랜 화두였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양손에 쥐고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둘렀던 검찰은 항상 정치권의 개혁 대상이었다. 하지만, '검찰 개혁'은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적 화두라기보다 '감정의 소모품'처럼 소비되어 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의 시선이 국민들의 삶이 아닌 '검찰의 칼끝'이 가리키는 방향에만 가 있었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칼날이 자신들을 향할 때는 개혁의 당위성을 주장했지만, 그 칼날이 상대를 향할 때는 검찰을 이용해 온 것에 보수든 진보든 예외는 없었던 것 아닌가. 검찰에 대한 '분노'와 '공포'가 개혁을 위한 동력이었고, 검찰이 주는 효능감이 개혁을 지연시켜 왔다.

분노와 공포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에너지다. 하지만, 때론 그 에너지가 이성적 논의의 자양분이 되지 못하고 맹목적 증오로 격화되기도 한다. 누군가 너무 밉다면, 그래서 그 사람에게 어떻게든 불이익을 주고 싶다면, 내가 손해 볼 줄 알면서도 자기 집 장독도 깨어버릴 수 있다. 혹여 이런 감정이 국가 제도 설계에 투영될 때, '개혁'이라는 정의로운 구호 아래 이뤄진 조치는 국민들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을까. 국민을 위한 개혁이 아니라 응징을 위한 조치가 이뤄졌을 때 그 결과는 정의로울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적폐 청산'의 효능감에 꼬인 시간표와 내용

현재 종반으로 치닫고 있는 검찰 개혁의 본격적 시작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정치 시작의 이유로 설명했던 문재인 대통령이었기에 검찰 개혁 조치가 즉각적으로 이뤄질 거라는 걸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검찰 스스로도 마찬가지였다. 개혁을 피해 갈 방법은 없었다. 검찰은 직접수사 폐지를 자체 개혁안으로 내놨다. 대신 모든 수사를 담당하며 비대해질 경찰을 견제하기 위해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강화하는 이른바 사법 통제 모델이었다. 이른바 특수통 출신 검찰총장이 내어놓은 방안에 문재인 정권과 생각이 비슷할 진보적 법학자와 법조인들이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검찰 개혁 방안은 "이미 검찰이 잘하고 있는 특수수사 등에 한하여 검찰의 직접수사를 인정하는 것"(2018년 1월 14일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권력기관 개혁 방안' 발표)으로 제시됐다.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은 전면 폐지로 가닥이 잡혔다.

이런 배경엔 문재인 정부 초기의 높은 국정 운영 지지율의 버팀목이었던 적폐 수사가 있었다. 검찰이 주는 효능감을 체감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또, 윤석열이라는 스타 검사를 통해 검찰을 바꿀 수 있다는 헛된 기대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이 있던 서울중앙지검은 직접수사 부서가 계속해서 추가됐고, 기수 파괴로 무리하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며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앉혔다. 청와대는 "시대적 사명인 검찰 개혁과 조직 쇄신 과제도 훌륭하게 완수할 것"이라며 윤석열에게 기대를 표했고,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던 특수통은 관례를 깨고 요직을 차지했다.
*참고
[취재파일] '검찰 특수부 축소' 그땐 틀리고 지금은 맞다?
 

배신감과 분노, 공포가 주도한 속도전

하지만 이런 흐름은 2019년 여름 '조국 사태'를 지나며 바꼈다. 정부·여당이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는 소리가 나왔고, 사실상 검찰 해체를 목표로 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2019년 7월 신임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대화하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조국 당시 민정수석

2019년 12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으로 검찰 개혁의 핵심으로 일컬어졌던 공수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20년 1월 13일에는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폐지와 경찰의 1차 수사 종결권 부여 등을 골자로 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조국 사태'에 따른 지지층 내의 검찰에 대한 분노는 높았고 신속 처리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은 빠르게 처리됐다.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에 진 민주당은 추가 검찰 개혁을 진행했다. 이른바 검수완박이었다.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기존 6개에서 2개로 줄이는 법안을 국회 과반 의석으로 통과시켰다. 곧 대통령이 될 윤석열 휘하의 검찰은 민주당에 칼을 겨눌 것이고, 민주당은 공포에 사로 잡힐 거라는 게 당시 정치권의 전망이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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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가 말하는 개혁의 결과

검찰 등 수사기관 개혁의 성과는 정치 구호가 아니라 수사기관의 시계가 얼마나 정확하고 빨리 돌아가는지로 측정되어야 한다.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고, 피해가 신속하고 저렴하게 구제받을 수 있다면 개혁은 성공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경찰청 자료가 보여주는 현실을 보자. 검경 수사권 조정 이전인 2019년 50.4일이었던 형사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2022년 67.7일로 늘었다. 이후 수사 인력 보강 등의 조치로 2024년 56.2일 수준까지 단축됐지만, 여전히 수사권 조정 이전에 못 미친다. 경찰이 사건을 검찰에 보내지 않고 무혐의 종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음에도 벌어진 일이다.

대검찰청 자료 역시 마찬가지다. 경찰 송치 사건과 검찰이 직접 수사한 사건을 모두 포함한 형사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2020년 142.1일에서 2024년 312.7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경찰 송치 사건의 경우, 경찰에 사건이 접수된 날부터 검찰이 사건을 최종 처분한 날까지로 계산됐는데 보완수사 및 보완수사 요구 등을 거친 결과다.

숫자가 보여주지 않는 현실도 있다. 과거 민사 소송을 제기하면 수사 기관에 고소나 고발을 통하는 게 통상적 절차였다. 수사기관의 수사가 소송보다 빨리 진행되기에 수사기관이 수사를 통해 취득한 자료 등을 민사 소송에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국가의 무료 법률 서비스를 개인 권리 구제를 위해 이용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 변호사 업계에서는 "민사 소송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수사기관에 가져가 독촉해야 그나마 수사가 진행된다"거나 "법정에서 다퉈보겠으니 그냥 기소해 달라고 이야기하는 게 속 편할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수사 기간은 늘어지고, 길어진 시간과 복잡해진 절차 탓에 변호사 비용은 증가한 현실. 감정이 이성을 압도한 조치가 낳은 결과다.

검찰, 경찰
 

'책임의 증발'…누구에 책임을 물어야 하나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수사지휘권 부활, 모든 사건을 공소청에 보내는 전건송치 등이 언급됐지만 이제 보완수사권을, 그것도 제한적으로라도 줄지 말지로 논의는 축소됐다. 이 논의로 검찰 개혁은 종착지에 다가서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5일, 법조인 출신인 민주당 김남희 의원은 "형사사법 절차 개혁의 가장 큰 목표는 국민이 억울하고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라며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것을 정책의 목표로 삼거나 생각이나 입장이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으로 이 복잡한 방정식을 풀 수 없다"고 밝혔다. 형사사법 절차의 변화는 사람들 특히 힘없는 서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감정을 걷어내고 차분히 접근해 보자는 것이다. 현재 민주당 분위기를 감안할 때 용기 있는 발언이다.

감정을 조금만 걷어내고 하나만 살펴보자. 보완수사권 없는 공소청 검사는 기소 여부에 대한 판단을 어떻게 해야 할까. 찝찝하거나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어도 기록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맞을까. 기록을 검토하다가 증거가 부족해 보이거나 피의자 진술의 모순이 발견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쉽지 않은 문제다.

어쩌면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다. 기소된 사건이 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선고된다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기소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던 경찰이나 중수청 수사관에게 물어야 할까, 아니면 그런 의견을 받아 서류만 보고 기소하고 재판을 진행한 공소청 검사에게 물어야 할까. 경찰 등 수사기관은 "검사가 재판 대응을 엉망으로 해서 진 것"이라 탓할 것이고, 검사는 "기록만 보고 들어갔는데 어떻게 재판을 이기냐"고 항변할 것이다. 권한이 나누어지면서 책임질 사람이 사라지는 책임의 증발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억울하게 기소된 피고인이나 결과적으로 범죄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피해자의 고통을 누가 보상해야 할까. 현재 정치권의 논의는 책임의 증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거나 방지할지, 그에 따라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가 제한받을 수 있는 현실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까지 나아가지 못 했다. 보완수사권을 주면 공소청의 수사권이 결국 확대되는 건 아닌지에 대해 논쟁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래에 생길 지 모르는 국민의 피해보다, 미래에 생길 수 있는 공포를 제거하는 데 집중돼 있다.
 

자업자득인 검찰 위기, 그러나 '불신의 원칙'은 유지돼야

검찰은 지금 상황에 억울해할 자격이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수사에 전방위적으로 매달렸고, 언론사에 대한 정권의 하명수사를 대대적으로 벌이면서도 김건희 여사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던 검찰의 행태가 지금의 개혁 논의를 불렀다. 검찰 스스로 '검찰 개혁'이라는 거대한 분노에 계속해서 땔감을 넣어 왔으니 지금의 위기는 자업자득이다.

하지만, 검찰이 밉다고 해서 검찰의 권한을 넘겨받을 경찰이나 중수청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이재명 정부의 검찰이 다를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다. 윤석열 개인에 대한 신뢰, 그를 통한 검찰 개혁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불과 몇 년 전에 입증되지 않았나. 제도의 설계는 기본적으로 불신에 기반해야 한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이 무너진다면 검찰 개혁이라는 구호는 언젠가 경찰 개혁, 중수청 개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검찰 개혁에 대해 '검찰의 업보'라고 지적하면서도 왜 '상호 견제'를 강조하는지 곱씹을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불신에 기반한 제도 설계를 위해서는 신중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공소청 검사에게 어떤 형태로든 수사권을 줄 수는 없다면, 그러면서도 경찰이나 중수청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면 수사지휘권 부활을 검토하라는 의견도 있다. 공소청에 어떤 형태의 수사권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은 그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대안으로 검사와 경찰의 협력 강화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법률에 규정되지 않고서야 협력이라는 건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강도와 수준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미 폐지된 제도를 다시 살려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국민을 위한 제도 개혁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수사지휘권도 선택지에서 완전히 배제할 필요는 없지 않냐는 의견까지 나오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정치권이 감정을 걷어내고 검찰 개혁을 논의하길 기대한다. 그리고 개혁 그 자체를 성과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제도적 한계, 기관의 역량을 생생하게 우리가 목격했지만 공수처법 국회 통과를 주도한 걸 자랑스러운 업적 중 하나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만나봤기에 드리는 말씀이다. 공수처가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기능하는 게 진짜 목적이었다면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계속 보완했겠지만 그런 건 없었다.
*참고
[취재파일] 검찰-공수처 간 초유의 사건 핑퐁…졸속 입법이 야기한 예견된 혼란

분노는 에너지가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분노가 지나간 자리에 찢어진 그물이 아닌 국민을 위한 튼튼한 안전망이 남아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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