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이주 대책 마련 전에 철거부터 하자'는 민주당의 검수완박

더불어민주당 검수완박
검찰 개혁은 오래된 화두였다. 검찰 내부에서도 개혁의 필요성, 그 대의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개혁의 방향은 직접수사, 이른바 특수수사의 폐지 내지 축소였다. 수사 주체가 기소 여부까지 판단하게 되면 과잉 수사, 표적 수사, 소위 먼지털이식 수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확증 편향이 작동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다만, 전제는 있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양손에 쥔 공룡 검찰의 권한을 분산해 다른 곳으로 넘긴다면, 그 권한을 넘겨 받을 기관 역시 '공룡'이 될 우려가 있었다. 때문에 해당 기관에 대한 사법적 통제 장치로서 검찰의 수사지휘권은 유지 내지 강화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검찰을 수사기관이 아닌 인권 옹호 기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구상이었다.
 

'직접수사 폐지, 수사지휘권 강화'가 골자였던 '일반적인' 검찰 개혁 방안

문재인 정부 초기 많은 사람들은 현 정부가 이런 '일반적인' 검찰 개혁의 길을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실세들이 검찰의 정치적인 특수수사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잃었다고 생각하기에 현 정부 검찰 개혁의 방향은 검찰의 특수수사 폐지 내지 축소일 것이라는 데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익히 알려졌듯이 예상은 빗나갔다. "이미 검찰이 잘하고 있는 특수수사 등에 한하여 검찰의 직접수사를 인정하는 것"(2018년 1월 14일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권력기관 개혁 방안' 발표)이 검찰 개혁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경찰에 대한 사법적 통제 장치로서 일컬어졌던 '수사지휘권'은 전면 폐지로 가닥이 잡혔다.

이런 급변침의 배경엔 문재인 정부 초기 높은 국정 운영 지지율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적폐 수사가 있었다. 검찰 특수수사의 효용을 체감한 문재인 정부는 검찰 특수부의 규모를 잔뜩 키웠고, 기존에도 거대하다고 평가 받았던 서울중앙지검에 4차장 검사라는 직제도 신설했다.
 

검찰 특수부를 잔뜩 키웠던 문재인 정부

이후 특수부 검사들에 대한 논공행상도 분명히 했다. 소위 기획통, 공안통이 가던 자리에 특수통 검사들을 전진 배치하면서 특수통 전성시대를 열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문재인 정부였다. 법조계에선 대검에 기획통, 공안통이 요직에 분산 배치되었더라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가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참고 기사 :  윤석열 호 첫 검찰 인사…여러 뒷말 나오는 까닭은)

문재인 정부 초기 검찰 개혁 방안에 특수통들은 조용히 웃음 짓고, 강화하겠다던 형사부의 검사들이 비판하는 묘한 상황이 연출됐다. 앞서 살펴봤듯이 축소 내지 폐지될 것으로 예상됐던 특수수사를 정권이 명시적으로 인정하겠다고 한 결과였다. 형사부 검사들은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폐지가 야기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특수통 검찰총장이 특수수사 축소, 나아가 폐지를 하는 대신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검찰 개혁 방안을 주장했다. 수사 총량을 유지하기 위해 금융범죄특별수사청, 마약범죄특별수사청 등 개별 범죄를 직접 수사하는 별도의 수사청을 만드는 방안도 제시됐다. (참고 기사 :  '검찰 특수부 축소' 그땐 틀리고 지금은 맞다?)
 

특수통 검찰총장이 주장한 직접 수사 축소와 수사지휘권 강화

이런 검찰의 주장에 검찰, 특히 검찰의 직접수사에 반감을 가졌던 진보적 법조인이 호응하는 이색적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검찰총장의 이런 주장은 검찰 개혁에 대한 반발로 치부됐고,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2018년 1월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제시했던 방향대로 진행됐다. 검찰의 직접수사에 대한 내부 통제 장치로 만들어졌던 대검의 '인권수사자문관' 직제는 이번 정부에서 만들어졌다가 다시 사라졌다.

특수수사를 명시적으로 보장했던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방안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겠다는 검수완박으로 급발진 한 건 물론 조국 사태의 영향이다. 문재인 정부 상반기 검찰 개혁 방안은 검경 수사권 조정 중심으로 논의됐지만, 조국 사태 이후 검찰 개혁 방안은 공수처 설치 우선으로 방향을 틀었다. 검찰에 대한 견제 장치라는 명분도 있었지만, 법무부 장관 등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수사 권한을 검찰에서 빼앗기 위해서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였다.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은 폐지하고, 검찰의 특수수사를 보장하는 '일반적인' 검찰 개혁 방안과는 다른 설계도. 문재인 정부가 그 설계도로 집을 집고, 국민들을 입주시킨 지 1년 정도가 지났다. 물이 새고, 날림으로 지어진 집에서 수사 지연 등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건 새 집에 입주한 국민들이라는 게 일선 변호사들의 평가다.
 

잘못된 설계도로 지어진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집

그 사이 형사부 검사들은 기존보다 상대적으로 웰빙한 직업으로 바뀌었다. 업무 부담이 경감된 결과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현재 체계에서 검사가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구하면 사건을 처리한 것으로 집계 된다"며, "과거와 같이 검사가 사건 처리 기한을 지키기 위해 밤샘 근무를 하는 건 대폭 줄었다"고 말한다. 보완 수사 이후 송치되는 사건은 검사들에게 새롭게 배당되는데, 기존에 업무를 맡았던 검사가 아닌 다른 검사에게 사건이 배당될 수도 있다. 사건 처리의 연속성이 깨어지는 것이다. (참고 기사 :  '수사권 조정안'과 '형사부 강화'는 양립 가능한가)

국민의 세금을 받는 검사들이 편해지면서 불편해진 건 국민들이다. 정상적이라면 물이 새는 곳을 보완하고, 보수 작업을 하면서 현재 지어진 집을 최대한 안전하고 튼튼하게 만들 대책을 마련하는 게 일반적이다. 차제에 '직접수사 폐지와 수사지휘권 강화'라는 원칙적인 설계도를 기반으로 보수 공사를 하거나 새로 집을 짓고 국민들을 이주시키는 근본적인 방안 모색도 필요하다.
 

이주 대책 마련 전에 철거부터 하자는 민주당의 검수완박

그런데 민주당은 지금 이주 대책을 마련하기 전에 일단 철거부터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집이 철거되면 그나마 제한적으로 이뤄졌던 검찰의 송치 후 보완 수사도 불가능해진다. 민주당의 이런 방안은 현재 집에 입주해 있는 국민을 위한 것일까. '수사를 증발 시키는 것',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고문을 지키겠다', '(검찰이) 문 대통령을 수사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냐'는 민주당 인사들의 발언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방안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심케 한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주장에 공감한다. 하지만, 주장에 대한 공감은 '궁극적으로'라는 단서가 전제됐을 때다. 수사를 증발시키는 것이 아닌 수사 총량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 마련됐을 때, 수사기관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단단히 보장됐을 때, 권력자를 위한 직접수사 폐지가 아닌 일반 국민의 위해 국가의 수사 기능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작동할 수 있는 게 보장됐을 때 동의할 수 있는 주장이다.

이런 측면에서 검찰의 직접수사는 필수라는 검찰 일각의 주장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급할수록 원칙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수사를 증발시키는, 일단 철거부터 하자는 식의 검찰 개혁 방안이 아닌, '수사지휘권' 복원과 강화를 위한, 원칙으로 돌아간 검찰 개혁 방안 논의가 필요하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