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츠 여검사 사건', '감사원 물방울 다이아 청탁 사건', '그랜저 검사 뇌물 사건'...
사건은 결국 '이미지'로 기억된다. 사건의 관련자가 누구였고, 자세한 혐의가 어떠했고, 사건의 수사 경과와 결과는 어떠했는지, 실체와 관련된 대부분의 것들은 결국 시간의 풍화 작용 속 기억의 뒤편으로 사라진다. 그렇게 대중들의 뇌리 속엔 '벤츠', '물방울 다이아', '그랜저'의 선명한 '이미지'가 남는다.
오늘 아침, 무수히 많은 의혹을 품은 채 처음으로 수사기관에 출석하는 김건희 여사 사건도 비슷한 방식으로 기억될 공산이 크다. 특검은 오늘 김 여사를 소환해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통일교의 건진법사 청탁 의혹 ▲ 명태균 씨 공천 개입 의혹 ▲나토 순방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 의혹 ▲윤 전 대통령의 "도이치 주식으로 손해만 봤다" 발언 등 '5대 의혹'을 조사할 방침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세간의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건, 영롱한 이미지로 기억될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 의혹'이다.

반복되는 '영부인 착장' 잔혹사
김 여사의 '반 클리프 아펠' 목걸이도 마찬가지다. 통상의 경우라면 말이다. 현금 보유액만 수십억 원이 넘고, 일가가 요양원에 땅 수만 평을 소유한 김 여사가 본인 돈으로 '반 클리프 아펠' 목걸이를 산 거라면, 그게 6천만 원짜리이건 6억 원짜리이건 굳이 문제 삼고 떠들 필요가 없다. 자기 돈으로 비싼 장신구 사서 정상 외교 무대에 차고 나갔는데 재산 신고를 누락한 정도라면, 경위를 소상히 밝히고 그에 합당한 정도의 처벌만 받으면 될 일이다. 제아무리 '김건희 특검'이라도 사안이 그러하다면 그 이상의 죄를 물어선 안 된다.
그런데 일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2022년 순방 때 논란이 된 뒤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던 그 '반 클리프 아펠' 목걸이가 김 여사 오빠의 장모 집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됐다. 그런데, 이게 모조품이라는 것이다. 수십억 현금을 보유한 김 여사가 '가짜 목걸이'를 산 것도 모자라, 굳이 이 가짜 목걸이를 차고 반 클리프의 본고장인 유럽 순방길에 올랐다는 것이다.
오락가락 해명, '증거 인멸' 부메랑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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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에게는 말장난처럼 느껴지는 이러한 해명은 이제는 김 여사 본인에게는 장난이 아닌 일이 될 수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특검이 김 여사를 한 차례 조사한 뒤 곧바로 신병 확보 수순에 들어갈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증거 인멸을 주요 요건으로 판단하는 구속영장 심사 국면에서, '뇌물'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는 목걸이에 대한 오락가락 해명은 김 여사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일반 상식에는 반하긴 하지만 김 여사가 정말 가짜 목걸이를 산 게 맞다면, 왜 굳이 암시장에서도 구하기 힘들다는 '반클리프 아펠'의 초고가 '스노우플레이크' 목걸이를 샀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게 왜 오빠 집이나 어머니 집도 아닌, 오빠의 장모 집에 가 있어야만 했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을 이제는 내놔야 한다.
무작정 피의자의 방어권 뒤에 숨는 것은 곤란하다. 김 여사는 윤 대통령 재임 시절, 세간의 주목을 끄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윤석열 대선 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 26일, 김 여사는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둬주십시오"라는 약속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는 마포대교에서 경찰들을 몸소 지휘하며, 순방에서 대통령 없이 단독으로 찍은 사진을 배포하며 스스로의 행보를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자신의 말을 뒤집고 관심을 끌 적엔 앞으로 나섰다가, 국민적 의혹이 일었을 땐 오락가락 해명을 던져 놓은 뒤 방어권 핑계를 대는 것은 너무도 궁색하다.

이제는 말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끝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끝내야 한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영부인의 '착장 논란' 말이다. 경제 규모와 국격에 맞게, 재산이 많지 않은 이가 대통령이 돼도 그 부인이 누추하게 순방 나갈 일이 없도록, 국고로 이를 지원할 수 있게끔 기준을 세우고 사회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김 여사 의혹' 뉴스의 홍수 속, 이게 도대체 우리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오늘은, 부디, 숱한 의혹의 당사자인 김 여사가 '가짜 목걸이' 하나에 대해서 만큼은 직접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길 기대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끊임없이 반복되는 '영부인 착장 잔혹사'를 끝낼 생산적인 방안을 우리 사회가 찾아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