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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화전기가 메리츠서 빌린 1700억…어디 쓰였나 봤더니

지난 6일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 (박현규 부장검사)는 서울 여의도 메리츠증권 본점과 이화그룹 본사, 관련자 주거지 등 10여 곳을 전격 압수수색했습니다. 검찰은 메리츠증권이 이화전기그룹 계열사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주식 등을 매도할 때, 시장에 알려지지 않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메리츠증권
이화전기
신주인수권부사채(BW)란? 
'약정된 가격으로 새롭게 발행되는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가 추가로 붙어있는 채권.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는 일정한 이자를 받으면서 만기에 원금을 상환 받을 수 있는 동시에,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BW를 발행한 회사의 새 주식을 살 수 있다. 주식 가격이 올라, 미리 약정된 신주인수권 행사 금액이 주가보다 싸지면 이 권리를 행사해 이익을 볼 수 있다. 신용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소위 '1금융권'에서 돈을 빌리지 못해 '2금융권' 이하를 찾듯이, BW 시장도 일반적인 경로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기업들이 이용하는 틈새 자본시장에 해당한다.

SBS는 지난 7월, 이 의혹에 대해 상세히 보도해드린 바 있습니다. 이화전기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대량 보유하던 메리츠증권은 올 초 '2차전지 호재 공시'로 이화전기 주가가 오르던 기간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대량으로 주식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가 고점 부근에 주식을 매도해 수백억 원대의 이익을 남겼습니다. 메리츠증권은 경영진 구속으로 이화전기그룹 주식이 거래 정지되기 직전에도 보유하던 주식을 매도해 차익을 남겼습니다. 시장과 개인 투자자들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게 아니라면 이렇게 기막힌 타이밍이 가능했겠느냐"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메리츠증권 측은 "오비이락일 뿐 지나친 억측"이라고 일축해왔습니다. 그런데 의혹을 들여다보던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자료를 이첩받은 검찰이 강제수사에 나선 겁니다.
   

이화전기가 메리츠증권에서 빌린 돈 1,700억 원은 어디로 갔나?

수사의 핵심은 메리츠증권과 부실 경영 의혹이 끊임없이 불거졌던 이화전기그룹 사이 부적절한 유착이 있었는지를 규명하는 것입니다. 둘 사이에 금융 거래를 넘어, '미공개 정보 교환'과 같은 부적절한 유착 관계가 존재했다면 자본시장법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통상의 금융 수사 양태를 봤을 때, 검찰의 판단은 메리츠증권-이화전기그룹 간 증권 발행과 금전 흐름을 바탕으로 이뤄질 것입니다.

메리츠증권이 이화전기그룹의 BW를 대량으로 매입하고 거액의 자금을 투자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SBS 취재 결과 확인해야 할 의혹 하나 더 있었습니다. 메리츠 증권은 자금난에 허덕이던 이화전기그룹 3사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인수하면서 수천억 원의 돈을 빌려줬는데, 이화전기그룹 3사는 이 돈을 부채 상환이나 본업 투자에 쓰는 대신, '전주(錢主)'에 해당하는 메리츠증권이 참여한 부동산PF 사업에 넣었던 겁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보겠습니다. 지난 2021년 10월과 11월, 메리츠증권은 자금난에 허덕이던 이화전기 그룹 계열사 3곳(이화전기, 이아이디, 이트론)에 1천700억 원을 빌려주고, 대가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받았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메리츠증권은 이후 2차전지 사업 호재가 터지며 이화전기그룹 주가가 폭등했을 때 신주인수권을 행사했고, 이후 고점 부근에 주식을 매도해 수백억 원의 이익을 챙겼습니다.

그런데 두 회사 간 거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SBS가 입수한 투자 서류들을 보면 2021년 10월과 11월 1천700억 원을 빌린 이화전기 계열사들은 돈을 빌린 바로 그날, 이 돈을 메릴랜드(주)와 콜롬비아(주)라는 이름의 회사에 투자합니다. 이화전기 그룹 3사가 메리츠증권에서 빌린 돈을 넣은 두 회사는 모두 메리츠증권이 참여한 부동산 PF에 대출을 하기 위해 '메리츠증권이 만든' 회사입니다.

원종진 취재파일 CG 1

특이한 점은 당시 부실 경영 논란과 자금난에 허덕이던 이화전기 그룹 3사가 조달 금리 (4.5%)와 똑같은 금리로 1천700억 원이라는 돈을 투자했다는 것입니다. 부채를 상환하거나 본업 혹은 신사업에 투자하는 대신, 돈을 빌려준 '전주(錢主)'가 만든 PF 대출회사에 돈 빌릴 때와 같은 이자율로 돈을 투자했습니다.

원종진 취재파일 CG2

검찰 수사와 금융감독당국 조사의 핵심은 메리츠증권과 이화전기그룹이 BW 발행, 신주 인수, 주식 매도의 과정에서 부적절하게 유착했는지 규명하는 것입니다. 검찰은 어제 압수수색 뒤 수사의 '입구'에 해당하는 BW 발행 과정을 면밀히 살피고 있는데, 메리츠증권과 이화전기그룹 사이 거래 구조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적법하고 문제없는 거래" 해명하지만…"사회 전체 금융 리스크 확대 우려"

이화전기 그룹 측은 SBS에 '자본 확충을 위한 거래로, 적법하고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애초에 PF 투자를 염두에 두고 자금을 조달한 것이라며, 독자적인 경영 판단이었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SBS 질의에 대한 이화전기그룹 측 답변]

Q. 당시 부채 상환이나 사업 투자 대신, 조달 금리와 같은 금리로 PF 대출 사업에 참여한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아무 이익 없는 비정상적 경영 행위였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해 대한 입장은?
A. 당사는 NH증권 여의도 사옥을 생숙시설로 변경하는 프로젝트에 투자하기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BW를 발행하였고 이를 메리츠증권에서 인수하였습니다. 따라서, 본 자금은 위 프로젝트만을 목적으로 사용하여야 하고 조달된 자금으로 기타 사업이나 부채 상환 등 다른 목적의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Q. 당시 투자 결정이 이화전기그룹의 독립적인 경영 판단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또 그렇다면 조달 금리와 같은 금리로 메리츠가 하는 부동산 사업에 수백억 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당사는 금리 차이를 통한 이자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향후 BW가 행사되면 자본 확충과 채권 확보의 두 가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독자적인 판단 하에 투자를 진행한 것입니다.


메리츠증권 측도 SBS에 "이화전기그룹 측은 우량한 부동산 PF에 투자하고, 메리츠증권은 우량 채권을 확보할 담보를 잡을 수 있어서 거래에 응한 것"이라며, "부동산 PF 세계에서는 일반적인 거래"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화전기그룹 BW를 주식으로 전환해 매도한 과정에 대해서도 메리츠증권 최희문 대표가 지난달 17일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최 대표는 "메리츠증권은 이화전기가 거래 정지되기 3주 전 이화전기에 주식 전환신청을 했다"며 "전환 신청을 하는 순간 담보 권리가 상실되는데 이를 알고 있었다면 전환 신청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미공개 정보 이용 의혹을 반박했습니다.  또한 "매매 정지 6일 전 이화전기 관련 유가증권 279억을 추가로 인수했는데, 거래 정지가 다가오는 회사라는 걸 인식했다면 추가 인수는 없었을 것"이라고도 밝혔습니다. 그는 이어 "이화전기는 거래정지 당일 오전 메리츠증권에 300억원의 유가증권을 프리미엄을 주고 사 갔는데, 이 경우 높은 확률로 이화전기도 거래정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고 본다. 철저히 조사에 임해 의혹을 소명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요약하면, 금융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성사된 일반적인 거래였을 뿐 미공개정보 이용과 같은 부적절한 유착은 없었다는 게 양측의 공통된 주장입니다.

그런데 거래 구조를 살펴본 경제·금융 전문가들의 평가는 조금 달랐습니다. 서로 맞아 떨어졌다는 '이익'의 이면에는 '사회적 비용'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SBS와 통화에서 "BW와 같은 시장을 우리 사회가 용인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거래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시장의 이해 당사자들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때 그 금융 기법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화전기그룹은 일반 투자자들이 투자하는 공개 상장 기업이고, 메리츠증권은 사모펀드 운용사가 아닌, 일반 투자자들의 주식 거래를 중개하기도 하는 증권사입니다. 또한 이 두 회사가 거래한 BW는 주식으로 전환돼 일반 투자자들이 참여한 주식시장에 물량으로 풀릴 수 있는 상품입니다. 이런 점에서 두 회사 간의 거래에서는 사회적 책임성을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박상인 교수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경제학 박사)
"최근에 금융 기법들이 많이 발생하면서 정부 규제들을 우회하거나 회피하는 식으로 악용이 되는데 지금 이 사례가 대표적인 것 같아요. 첫 번째로는 PF에 아마 메리츠가 직접 돈을 넣지 않고 제 3자한테 우회해서 하는 식으로 활용한 것 같고요. 두 번째는 이화전기는 BW를 발행했으니 결국은 나중에 메리츠가 우호 지분 역할을 할 수가 있게 되죠. 그래서 앞으로 경영권 분쟁이나 그런 것에 대해서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식으로, 어떻게 보면 둘 다 서로 서로 이익이 맞아 떨어진 거죠. 이화전기입장에서는 무자본으로 의결권을 높인 것인데, 우리 사회가 무자본으로 의결권을 넓히는 이런 것들을 막으려고 여러 가지 법 장치를 마련했는데 그걸 우회한 거죠. 그래서 증권사와 기업 입장에서는 '윈-윈'이지만 우리 사회 입장에서는 '루즈-루즈' 상황인 거죠."


원종진 취재파일 cg3

카카오뱅크 대표를 지낸 금융인 출신 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대형 증권사가 주가 조작 전과가 있고 횡령 배임 의혹이 불거진 회장이 이끄는 그룹에 대규모 투자 결정을 하면서, 이 돈이 자신들이 참여하는 부동산 PF로 들어오도록 구조를 짠 것은 '불건전 거래 행위'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화전기그룹은 거래 정지로 38만 명에 달하는 소액 주주 피해가 생기기 전에도 끊임없는 부실 경영 논란을 일으켜왔습니다. 국내 굴지의 증권사가 이러한 회사에 대규모 자금을 지속적으로 투입하면서, 이 자금이 사용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윤리적 고민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이용우 전 카카오뱅크 대표이사 (사진=연합뉴스)

이용우 의원 / 국회 정무위원 (민주당)
"대형 증권사는 보통 투자 심의에서 거래의 수익성뿐 아니라 대상 기업의 재무, 영업 실적, 지배 구조 등을 봅니다. 이를 통해 건전한 영업을 위한 이른바 '평판 리스크'를 관리합니다. 이 거래 구조는 마치 메리츠증권이 이화전기그룹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기업이 자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사채업자들이 가장납입의 형태로 해왔던 일들과 유사한 형태입니다.
이러한 구조에서 만약에 메리츠증권이 참여한 부동산 PF에 리스크가 생기면, 이건 고스란히 이화전기그룹 리스크가 돼버리거든요. 메리츠증권의 입장에서는 그 위험을 이화전기그룹에 전가할 수 있는 구조이고요. 과연 이게 이화전기그룹이 의사결정을 한 건지, 아니면 메리츠가 주도해서 이화전기에게 그런 걸 권유했는지도 당국이 잘 봐야 할 것입니다."

 

금융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 사회를 프래질(Fragile)하게 만들고 커다란 위기를 일으키며 승부의 책임을 지지 않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다른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익을 취하면서 안티프래질(Anti-Fragile)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손실의 위험에 노출시키면서 자신은 가변성, 변화, 무질서로부터 이익을 얻는다. (…)
역사상 어떤 순간에도,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 사람들, 즉 개인적으로 리스크에 노출되지 않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커다란 권력을 행사한 적은 없었다. 이제 중요한 윤리 원칙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프래질하게 만드는 대가로 자신이 안티프래질해져서는 안 된다."

-나심 탈레브 <안티프래질> 중


미국의 금융투자가이자 경제학자인 나심 탈레브는 책 <안티프래질>에서  다른 사람들을 프래질(Fragile)하게 만드는 대가로 자신이 안티프래질해져서는 안 된다는 윤리 원칙을 제시합니다. 즉,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취약하게 (프래질) 만듦으로써 자신의 리스크는 없애고, 어떤 상황에서도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안티프래질) 구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이전투구 속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지키기에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도덕 원칙으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부정과 술수가 판치던 월가에서 업적을 이룬 투자가이자 철학자가 제시한 도덕 원칙에는 분명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CB와 BW, 공매도 시장처럼 일반인들로서는 알기 어려운 생소한 금융시장이 존재할 수 있는 건 '이 시장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암묵적 합의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 성장성이 있는 기업들에게 금융이 성장의 마중물을 대주고, 이로 인해 파생된 유무형의 가치를 사회가 향유할 수 있어야만 무언의 합의는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부실 기업이 BW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이 본업 경쟁력 강화에 쓰이는 대신 돈 빌려준 증권사의 PF 사업에 들어가는 구조가 "일반적"이라면, 그리고 이렇게 발행된 BW로 인한 매물 폭탄으로 일반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떠안는 일이 반복된다면, 암묵적 합의는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부 큰 손들이 엄청난 돈을 벌어가는 대한민국의 사회 구성원 상당수는 1만 원도 안 되는 최저임금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이곳은 또한 젊었을 적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한 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로 빈곤한 노인이 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파리 경제대학 부속 연구기관인 세계불평등연구소는 '한국의 소득수준은 영국과 비슷하지만, 소득 불평등 수준은 서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심하다'고 지적합니다. 금융 자본의 부도덕한 행태에 대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분노가 폭발할 때마다 '세계 기준'을 들먹이기 전에, 그 분노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한 번쯤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큰 돈 만지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논리가 앞으로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작동하기를 바란다면,  우리 사회가 왜 이러한 금융 시장들을 용인해야 하고 이 시장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에 대해 보다 정교한 대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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