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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안중근 유해 찾기 키워드⑨ - '하얼빈산 소나무관'이 최선입니까?

안중근 의사 순국 112년을 맞은 지난달 26일, 국가보훈처 보도자료가 나왔습니다.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한 귀중한 자료를 찾아냈단 내용입니다. 옛 만주지역 신문인 성경시보(盛京時報)의 1910년 3월 30일 자, 즉 안 의사 순국 나흘 뒤 발행 기사였습니다. 보훈처는 일제강점기 독립 유공자 발굴에 필요한 자료 수집을 위해 일제 강점기 중국에서 발행한 신문과 간행물을 샅샅이 뒤졌다고 했습니다. 기사 3만 3천여 매를 분석했다는데, 성경시보 기사가 그중 하나였단 겁니다.
 
안중근 의사 하얼빈산 소나무관 안치

먼저 지금까지 알려진 안중근 의사의 순국 상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 심장을 쏜 안 의사는 일주일 뒤 뤼순감옥에 수감됩니다. 그날부터 144일간 수감 생활을 했습니다. 사형 집행일은 3월 26일. 이날 상황은 일본인 통역관 소노키 스에키가 남긴 '사형시말보고서'에 상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뤼순감옥 사형집행실에서 교수형이 오전 10시에 시작됐고, 안 의사 시신은 사형집행실에서 걸어서 수 분 거리인 감옥 내 교회실로 운구됐습니다. 교회실에선 한국식 특별예배가 진행됐고, 안 의사 시신이 모셔진 침관(寢棺)은 당일 오후 1시에 '감옥서의 묘지'에 매장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보훈처가 공개한 성경시보 기사 내용은 기존에 알려진 이런 과정에 살을 더 불였습니다. 안 의사 옥바라지를 한 동생 안정근이 처형 집행 이전에 교도소 측에 안 의사 유해를 한국에 매장하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교도소 측은 거절했습니다. 규정을 내세우며 사형수 공동묘지에 매장해야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안정근은 친분관계가 있던 형무소장을 직접 찾아갔고, 형무소장은 파격적으로 하얼빈산 소나무로 만든 관에 안 의사 유해를 안치하고, 조선 풍속에 따라 흰 천을 씌우도록 허락했습니다. 안 의사 침관에 흰 천을 씌운 건 소노키 보고서 내용과 일치하는 내용이고, 그 침관이 '하얼빈산 소나무'로 만들었다는 내용은 처음 알려진 셈입니다. 성경시보는 안 의사의 유해를 교회실에 안치해 특별예배를 진행했단 내용을 기술했는데, 이도 소노키 보고서 내용과 일치합니다.

종합해봅니다. 성경시보 기사는 안중근 의사의 사형 집행 과정을 기술한 1) 기존 소노키 보고서가 전반적으로 사실에 부합한다는 점을 재확인해줬습니다. 여기에 안 의사 침관이 2) 하얼빈산 소나무 재질이었다는 점을 새롭게 알렸고, 3) 사형수 유해를 공동묘지에 매장해야 한다는 점이 뤼순감옥 규정이었단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보훈처가 공개한 성경시보 기사

 
이렇게 새로 발견된 팩트들이 안 의사 유해 발굴에 어떤 도움이 될까란 점도 생각해보겠습니다. 안 의사 침관이 하얼빈 소나무 재질이란 팩트는 안 의사 유해를 발견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안 의사는 원통형 관에 겹쳐진 상태로 매장된 당시 일반 사형수와 달리 침관에 눕혀진 상태로 모셔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상대적으로 유해 훼손 가능성이 적다는 점과 외관이 다른 관과 달라 땅을 파보지 않고도 지표투과조사 만으로도 발견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여기에 관이 하얼빈 소나무 재질이란 점이 더해지면 안 의사 유해로 특정할 수 있는 수단이 하나 더 생기는 겁니다.
 
유해를 사형수 공동묘지에 매장해야 한다는 게 뤼순감옥 규정이었다는 점을 확인한 것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규정이었다는 건 모든 사형수에게 예외없이 적용했다는 얘기일 텐데, 결국 안 의사의 매장 장소도 뤼순감옥이 1910년 당시 감옥 공동묘지로 사용하던 장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 신빙성을 더해주기 때문입니다. 즉, 1910년 당시 뤼순감옥 공동묘지가 어딘지를 찾는 것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뤼순 감옥 전경 사진 (1910년 당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뤼순감옥 동쪽 방향 1.2.km 거리에 위치한 동쪽 산 언덕, '둥산포'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1907년부터 1942년까지 뤼순감옥 공동묘지로 사용된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게 이 지역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다롄시도 지난 2001년 이곳에 뤼순감옥 옛 묘지 터라는 비석을 설치해놨습니다. 여러 증언과 기록이 안 의사 유해 매장 장소로 이곳을 지목하고 있다는 얘기고, 성경시보 기사도 그런 점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보훈처가 찾아낸 성경시보 기사의 가치는 이런 정도로 평가하면 충분할 듯합니다. 평가는 할 만큼 했으니, 이제부턴 톤을 좀 바꾸겠습니다. 보훈처가 안 의사 유해 찾기에 도움이 될 만한 작은 단서를 찾아낸 것과 별개로, 개인적으론 안 의사 순국 112년을 맞아 내놓은 결과물로는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안 의사 유해 매장 추정 장소로 '둥산포'가 지목된 지가 언제인데, 감옥 공동묘지에 매장했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정도의 단서를 찾아낸 걸 얼마만큼 평가해야 하는 걸까요? 왜 아직까지 '둥산포' 탐사를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단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유해발굴 전문가들은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에 실질적인 진전을 위한 여러 가지 제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우선 매장지가 중국 땅인 만큼 당연히 중국의 협조가 필수입니다. 중국의 협조를 위해선 남북 간 합의도 필요합니다. 중국이 그렇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지난 정부는 북한에 유해 발굴 남북한 공동 추진을 제안했습니다. 이게 벌써 4년 전 얘깁니다. 물론 코로나19라는 '블랙홀'이 생긴 상황도 있고, 남북 관계도 악화일로라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그렇더라도 우리 정부가 그 흘러간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적어도 하려 하는지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1910년 당시 발간한 신문이나 발간물을 발췌 분석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직접적인 자료를 찾는 시도를 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일본 패망 직후 무도한 뤼순감옥 형무소장이 모든 자료를 태웠을 때도 남아 있었던 비공개 문서들, 일제강점기 관동국 사령부가 있던 지린성 당안관에 남겨진 자료 같은 것들 말입니다. 만약 이 또한 중국측 협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면, 일본 외교사료관이나 방위성 연구소, 국회 도서관 등에 비공개 자료로 보관돼 있을 일본 측 자료를 찾아보려는 노력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근본적으로 이런 작업들을 실질적으로 추진해야 할 구성체는 존재하고 있는 건가요? 남북한과 중국, 일본의 민간 전문가들도 함께 참여하는 상설기구 구성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얘기일까요? 혹시 공개하진 않았지만, 이런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는거겠죠? 보란듯이 예산도 확보해 놓은 상태 아닐까요? 이러 저런 게 다 궁금합니다.
 
안중근 유해 찾기 키워드⑨ - 둥산포 최근 사진 1
안중근 유해 찾기 키워드⑨ - 둥산포 최근 사진 2

지인이 건넨 둥산포 언덕의 최근 모습입니다. 비가 많이 내려 나무가 꺾이고, 곳곳이 파였다고 합니다. 다른 지역 같았더라면 특별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할 듯합니다. 하지만 둥산포는 느낌이 좀 다릅니다. 현재로선 안 의사 유해 매장 장소로 가장 유력한 곳이 훼손되고 있다는 생각, 그래서 자칫 우리가 지금 기회를 잃고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들기 때문일 겁니다. 마치 시간을 재촉하는 타이머처럼 조여 오는 듯 합니다. 마음이 이러니, 하얼빈산 소나무관이란 걸 알아냈다는 보훈처 자료가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는 건 당연할 결론 같습니다. 

(사진=국가보훈처 제공, 연합뉴스)

[시리즈 이어보기]
▶ [취재파일] 안중근 유해 찾기 키워드 ① - '감옥서의 묘지'가 어딘가?
▶ [취재파일] 안중근 유해 찾기 키워드 ② - 주목해야 할 '둥산포' 묘지
▶ [취재파일] 안중근 유해 찾기 키워드 ③ - 최후 형무소장 '타고지로'의 악행
▶ [취재파일] 안중근 유해 찾기 키워드 ④ - "안중근 의사는 침관에 누워 계신다"
▶ [취재파일] 안중근 유해 찾기 키워드 ⑤ - "어렵고 힘들다"는 건 국민도 다 압니다
▶ [취재파일] 안중근 유해 찾기 키워드 ⑥ - 안중근 기념관은 돌아오는데…
▶ [취재파일] 안중근 유해 찾기 키워드 ⑦ - 사라진 안 의사 가족의 유해
▶ [취재파일] 안중근 유해 찾기 키워드 ⑧ - 안중근 의사 동생 안정근 선생 거주지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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