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순국 당시 뤼순감옥 통역관이던 소노키는 1910년 3월 26일 안 의사의 사형집행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적어놨습니다. 이른바 '안의 사형시말보고서'입니다. 이 보고서 내용 중엔 안 의사 유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소노키는 '10시 20분 안 의사의 시체는 특별히 감옥에서 만든 침관에 거두고 흰색 천을 덮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일제가 안 의사의 유해를 침관, 즉 눕힌 상태로 관에 모셨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사실은 안 의사의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과 유해가 안 의사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도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박물관이 된 뤼순감옥 북동쪽엔 사형 집행실이 있습니다. 안 의사가 순국한 사형실은 따로 있고, 북동쪽 사형실은 뤼순감옥이 확장될 때 새로 만들어진 곳입니다. 1934년부터 북동쪽 교형실로 불리며 사용해온 이곳은 지금도 당시 모습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데, 사형이 어떻게 집행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2층 구조로 된 교수대 아래엔 원통형 관이 놓여 있습니다. 교수대에서 절명한 시신은 그대로 아래쪽에 놓인 원통형 관으로 떨어집니다. 시신이 누워 있는 자세가 아니라 쪼그려 앉은 자세로 관에 들어가는 거죠. 원통형 관 내부가 좁기 때문에 시신의 상하체가 거의 겹쳐지게 됩니다. 반면 침관은 시신이 반듯하게 누워 있는 자세로 놓여지기 때문에 상하체가 겹쳐져 훼손될 가능성이 적습니다. 다행히 안 의사는 누운 상태로 침관에 안치됐다고 기록된 만큼 유해가 온전히 보전된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깁니다.
일반적인 원통형 관 매장 방식도 정해져 있습니다. 한 구덩이를 가로로 길쭉하게 파서 네다섯구씩 일렬로 매장합니다. 하지만 침관은 그렇게 매장할 수 없겠죠? 이는 침관에 안치된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눈에 금방 띌 수 있다는 얘깁니다. 눈에만 띌까요? 지표투과조사(GPR) 장비에도 침관은 다른 원통형관에 둘러싸여 있더라도 쉽게 윤곽을 구분해낼 수 있습니다. 즉 안 의사 유해매장 장소로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되는 둥산포 묘지 땅을 전부 다 파헤쳐내지 않아도 된다는 얘깁니다. 지표투과레이더 탐사만으로 안 의사의 침관의 윤곽을 찾아낼 수 있고, 그 윤곽을 찾아내면 그때 땅을 파헤쳐 발굴하면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식으로 발견한 유해가 안 의사 본인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뤼순감옥 묘지에서 발견된 원통형 관엔 손바닥 크기만한 검정색 유리약병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그 약병 안엔 시신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있었다는 사실도 발견됐습니다. 유리병은 시간이 지나도 부식될 가능성이 없는 만큼, 유리병 안에 있는 종이도 온전하게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바람입니다.
또 하나. 안 의사는 1909년 3월 이토 히로부미를 주살하기 반년 전쯤 조국 독립에 헌신을 맹약하는 의미로 손가락 관절을 잘라 열두명의 애국 의사들과 단지동맹을 맺었습니다. 안 의사의 신체적 특징, 즉 왼손 네번째 손가락이 절반만 남아 있는 점도 신원 확인을 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여기에 소노키 보고서엔 언급되지 않았지만, 천주교 신자인 안 의사가 침관에 안치되고 특별예배를 거행한 만큼, 침관 속에 십자가도 함께 있을지도 상상해볼만 합니다.
무엇보다 확실한 방법은 유전자 검사겠죠. 안중근 의사 후손으로는 어린 나이에 숨진 큰딸 외에 아들 안준생, 딸 안현생, 손자 안웅호, 손녀 선호, 연호 씨가 있습니다. 미국에 거주한 안웅호 씨는 안보영 씨를 낳았습니다. 정부는 이들 가운데 안 의사의 손자 안웅호 씨, 손녀 안연호 씨와 증손자 안보영 씨의 유전자 감식용 혈액을 채취해 보관하고 있습니다. 안 의사의 유해만 발견된다면 이미 준비해놓은 직계후손들의 유전자를 대조해 확실하게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다만 우려되는 건 땅속에 묻혀 있는 안 의사 유해 보존 상태입니다. 안 의사 유해발굴 전문가들은 매장 유력 후보지인 동산포 묘지를 갈 때마다 구석구석의 흙 상태를 유심히 살펴봅니다. 흙이 어떤 성질인지, 산성도는 얼마나 되는지 등을 확인해보는 거죠. 순국 108년이 지난 만큼, 흙 상태에 따라 안 의사의 유해 모습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 전문가는 몇 년 전 둥산포 묘지의 흙의 산성도를 측정해봤더니, 약한 산성을 띄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준비와 우려도 선결 조건이 있는 얘기겠죠. 안중근 의사의 유해 발굴을 다시 시도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준비와 과정은 전부 허무해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