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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임윤찬과 반 클라이번, 못다 한 콩쿠르 이야기

2022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역사적 의미

[취재파일] 임윤찬과 반 클라이번, 못다 한 콩쿠르 이야기
"오늘은 반 클라이번(1934-2013)이 살아있었다면 88번째 생일이 되는 날입니다. 2022년 콩쿠르 금메달리스트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의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인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연주하는 영상을 공유하는 게, 오늘을 기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2일, 클라이번 재단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입니다. 재단이 공유한 임윤찬의 결선 연주 영상 (▶바로 가기)은 4주 만에 5백만 뷰를 넘었고, 유튜브에 올라온 이 곡 연주 영상 가운데 최다 조회수 기록도 갖게 됐습니다. 임윤찬은 최근 영국의 Classic FM이 발표한 '30세 이하 클래식 라이징 스타 30인'에도 선정되었죠. 임윤찬에 대한 관심은 콩쿠르가 끝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식을 줄 모릅니다.

저도 이번 반 클라이번 콩쿠르 관련 기사를 참 많이 썼습니다. 방송 뉴스는 물론이고 텍스트 기사와 오디오, 영상 콘텐츠 등 다양한 형태로 임윤찬의 현지 기자 간담회, 스승 손민수 교수 이야기, '임윤찬과 함께 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이 내 음악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했다는 지휘자 마린 알솝의 이야기 등을 전했습니다. 음악 취재를 꽤 오래 했지만 콩쿠르 관련 기사를 이렇게 많이 쓴 건 처음입니다.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 때도 한국에서 관심이 뜨거웠는데, 당시 저는 국외 연수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콩쿠르 얘기를 많이 했는데도 저에겐 아직 다 못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번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정말 여러 가지 의미에서 역사에 남을 만한 중요한 콩쿠르였으니까요. 그래서 클럽발코니 편집장이자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인 이지영 씨를 팟캐스트 커튼콜에 게스트로 초청해 못다 한 '콩쿠르 수다'를 나눴습니다. 팟캐스트 (▶바로 가기)를 바탕으로 제가 미처 못 했던 이야기를 정리해 봤습니다.

팟캐스트 커튼콜 141회, 임윤찬,  그리고 못다 한 반 클라이번 콩쿠르 이야기

(*'김'은 김수현, '이'는 이지영을 가리킵니다. 팟캐스트 발언을 축약해 정리했습니다. 팟캐스트 커튼콜 (▶바로 가기)은 SBS보도국 골라듣는뉴스룸 시리즈 중 하나로, 공연 예술을 다룹니다. 이병희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제가 매주 고정 출연하면서 게스트 섭외, 기획을 맡습니다. 정해진 대본이나 시간 제약 없이, 매주 다양한 분야 게스트를 초청해 '수다'를 함께 합니다.)

'천재 10년 주기설'과 '국내파'의 계보

피아니스트 임동혁, 조성진, 임윤찬

김: 임동혁(1984) 조성진(1994) 임윤찬(2004)으로 이어지는 '천재 10년 주기설'은 음악계 사람들끼리 농담처럼 했던 얘기인데, 이게 기사에까지 등장했다.

이: 임동혁 이후 20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셈인데, 예전엔 '우리가 저런 콩쿠르에 나갈 수 있어' 정도였다면, 임동혁 때 (2005년 쇼팽 콩쿠르 임동민과 공동 3위. 한국인 첫 수상) 상을 받으며 천장을 깼고, 조성진은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한국 연주자가 정상까지 가는 걸 보여줬다. 그리고 이제 어느 콩쿠르인지 중요하지 않고, 딱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임윤찬 같은 연주자가 등장한 것이다.
임윤찬이 유학 경험 없는 '국내파'로 우승했다는 사실도 화제가 됐는데,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손열음에서 시작해 김선욱 그리고 임윤찬으로 이어지는 국내파 계보도 성립될 수 있을 것 같다.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 시스템 안에서 성장하고 해외 유명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이니까.

김: 김선욱도 2006년 한예종 재학 당시인 18살 때 권위 있는 영국의 리즈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현재 임윤찬의 상황과 비슷한 점이 있다. 그때도 기사가 많이 나왔고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당시엔 유튜브가 없었다. 김선욱이 리즈 콩쿠르에서 1등을 했다더라, 정도였지, 실제로 어떤 연주를 했는지 일반인들이 알기 힘들었다. ( ▶2006년 김선욱 리즈 콩쿠르 우승 당시 SBS8뉴스 보기 콩쿠르 연주 영상이 없어서 김선욱이 리즈 콩쿠르 출전하기 전 국내에서 열린 공연 때 촬영했던 자료 화면을 썼다.)
그런데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는 임윤찬뿐 아니라 다른 출전자 연주까지도 다 생중계되었고, 지금도 언제든 찾아볼 수 있다. 요즘 주요 콩쿠르 경연이 다 이런 식으로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되니까 예전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 이제는 콩쿠르의 권위나 어떤 평론가의 말에 의존하지 않고, 누구나 똑같이 볼 수 있는 상태에서 각각 감상을 얘기할 수 있기 때문에 콩쿠르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시대와는 많이 달라졌다. 콩쿠르에서 상을 받아야 뭘 할 수 있다는 개념에서 바뀐 것 같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유튜브라는 매체의 영향력이 더 커졌고, 누구나 볼 수 있는 상태로 임윤찬의 연주가 나오지 않았나. 콩쿠르 우승이 아니었더라도 업계의 반응이 이미 뜨거웠다. 해외 유명 공연장에서 다 연락이 왔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기도 했고, 그만큼 대단한 인물이 나온 것이기도 하다.

반 클라이번, 정치를 넘어서는 음악의 힘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지휘자 마린 알솝(왼쪽)과 피아니스트 임윤찬 (사진=반 클라이번 재단 트위터 캡처, 연합뉴스)

김: 이번 콩쿠르 일정을 다 챙겨 보셨나.
이: 다 보지는 못했고, 마지막 결선 연주만 봤다. 그렇지만 이미 모든 경연 연주가 다 공개되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술렁임을 더 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콩쿠르의 결과만을 봤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각자의 평을 이야기하고, 같이 나왔던 다른 연주자들 얘기도 한다. 또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음악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공교롭게도 이번 콩쿠르에서 러시아 연주자가 2위, 우크라이나 연주자가 3위를 했다. 반 클라이번이 냉전 시대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인물 아닌가. 이번 콩쿠르는 모든 참가자들은 예술 앞에서 평등하다고 얘기하면서, 러시아 연주자 출전을 허용했고, 좋은 결과가 나왔다. 재미있는 이슈가 많은 콩쿠르였다.

김: 시상식을 쭉 라이브로 지켜봤는데, 우크라이나 국가로 시작하더라. 바로 이 콩쿠르의 13대 우승자인 바딤 콜로덴코, 우크라이나 출신 음악가가 연주했다. 굉장히 숙연한 분위기였고, 콩쿠르 참가자나 관객들이 다 우크라이나 사람들과 연대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줬다. 그러면서도 이 콩쿠르는 전쟁과 직접 관련 없는 러시아 음악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수상자를 발표할 때 먼저 3위로 이름이 불려 시상대에 올라있던 우크라이나 연주자가 2위 러시아 연주자를 반겨주고, 서로 축하해 주는 장면이 굉장히 상징적이었다. (▶시상식 보기)
시상식에서 울려 퍼진 우크라이나 국가, 전쟁 중인 두 나라 연주자가 나란히 수상한 의미를 TV뉴스에서 이미 보도하기는 했다. 하지만 임윤찬 우승을 주로 다루느라 간단하게 언급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에는 계속 임윤찬 관련 기사들을 쓰느라 더 자세히 할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다. (*그래서 팟캐스트를 녹음하고, 이 취재파일을 쓰고 있다)
러시아 보이콧 분위기가 팽배하고, 다른 콩쿠르에서는 러시아 음악가들의 출전을 막기도 했지만,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러시아 연주자들의 출전을 허용했다. 콩쿠르가 기리는 반 클라이번이 바로 국제 정치를 넘어서는 예술의 힘을 보여준 사람이니까. 그는 냉전 시대 미국인에게는 적진의 심장과 같았던 러시아(구 소련)에서 열린 제 1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1958년)에 가서 우승했다. 사실 그 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선 미국인에게 상을 주고 싶어 하지 않았을 텐데.

(*구 소련은 당시 세계 최초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는 등 문화예술뿐 아니라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서방을 앞서가고 있었다. 그런데 소련이 문화적 우월성을 서방에 과시하기 위해 창설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자국민이 아닌 미국인 음악가가 우승한 것이다. 반 클라이번은 우승 당시 23살, 줄리아드에서 러시아 출신의 스승에게 배웠다. 구 소련 관객들은 반 클라이번의 연주에 열광했고,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그를 우승자로 결정했다. 연주자의 국적이 아니라 예술만 본 것이다. 그가 귀국할 때 뉴욕에서 환영 카 퍼레이드까지 열렸고, 미국 전역이 들썩였다. 그는 미국인의 자부심을 한껏 끌어올려준 영웅이었다.)

이: 그래서 당시 소련 서기장이 심사위원들한테 '저 미국인이 진짜 1등 맞냐'고 다시 확인했다고 한다. 당시 구 소련은 음악은 물론이고 발레도 그렇고, 정말 문화적으로 최강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 자존심을 미국인이 와서 문화적으로, 소리 없이 무너뜨린 셈이다. 미국에선 이 사람을 기리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 윤이상을 기리는 콩쿠르가 있는 것처럼, 미국에서도 적진에 깃발을 꽂은 반 클라이번의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1962년 이 콩쿠르를 만들었다. 그런데 후대에 보더라도 올해가 이 콩쿠르 역사상 가장 센세이션을 일으킨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참가자도 같이 참가해 수상했고, 이 와중에 우승은 최연소 참가자였던 한국인 임윤찬에게 돌아갔으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연주자, 콩쿠르에서 만나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과 은메달 수상자 러시아의 안나 게뉴셰네(왼쪽), 동메달 수상자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초니(오른쪽)

김: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이전에도 중요한 콩쿠르였지만, 올해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은 적은 없었다. 이번에 2위를 차지한 러시아 연주자 안나 게뉴셰네는 이미 활발하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이고, 임신 6개월인 상태에서 출전한 사실도 화제가 됐다. 안나는 브람스 발라드를 연주한 준준결선에서 평소 입던 연주복과 다른, 꽃 문양을 수놓은 옷을 입고 나왔는데, 이 옷은 우크라이나 전통 복식 '비쉬반카'였다. 그런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연대를 표현한 것이다. 이번 콩쿠르에선, 비록 현실에선 전쟁이 벌어지고 첨예한 갈등이 존재하지만, 무대 위에서 음악으로는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많았다.

*안나 게뉴셰네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브람스 발라드를 연주할 때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고통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와 영국에서 공부했고, 남편인 루카스 게뉴서스도 유명한 피아니스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자 안나는 가족과 함께 러시아를 떠나 남편이 시민권을 가진 리투아니아로 이주했다. 그는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러시아에 돌아가지 않을 예정이라며, 행동이 말보다 더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고 했다. 또 콩쿠르 출전자들을 국가 대표로 보는 건 구식이라고 말했다.
"무대에 오르면 우리는 서로 다른 여러 음악 학파들을 대표하게 되죠. 우리는 운동선수가 아닙니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아요. 우리는 프리랜서 음악가들이에요." (▶출처 달라스모닝뉴스)

유일한 우크라이나 참가자로 3위를 차지한 드미트로 초니는 키이우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예선 때 그가 무대에 오르자, 객석에서 누군가가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고 외쳤다. 그의 연주 영상에는 우크라이나 국기 이모지를 달고 우크라이나를 응원하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뉴욕 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드미트리 초니는 유일한 우크라이나 참가자로서 더욱 부담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관객과 음악 동료들의 응원에 큰 힘을 얻었다. 그는 클라이번 콩쿠르 준비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작곡가의 곡을 종종 연주하며 고향을 생각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드미트로 초니의 연주에서 큰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그는 음악이 어두운 시대에 치유의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고 일종의 위안을 제공하는 게 목표입니다. 음악은 치유제가 될 수 있어요. 음악은 항상 그래왔지만, 요즘 같은 시대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출처 뉴욕타임스)
 

연주자에게 콩쿠르는 어떤 의미인가


김: 콩쿠르에서 우승한 걸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물론 콩쿠르에는 개개인이 출전하는 것이지만, 국가 대항전 같은 느낌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콩쿠르는 올림픽하고는 다르지 않나. 그런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이: 올림픽은 결과가 나오면 거기서 끝나는 거지만, 콩쿠르는 결과가 나오고 순위가 나오면 그게 연주자들의 '출발 지점'이 된다. 사실 우리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중에는 콩쿠르와 관련 없는 사람들도 많다. 콩쿠르 결선에 가지 못하고 중도 포기했지만 유명 음반사와 계약한 표트르 안데르제프스키 같은 사람도 있고, 랑랑이나 얼마 전 내한 리사이틀에서 관객을 홀렸던 유자 왕도 콩쿠르에서 유명해진 게 아니다.

* 폴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 표트르 안데르제프스키는 1990년 영국 리즈 콩쿠르에 참가했다가 연주 도중 그만두고 퇴장한 일화로 유명하다. 그는 준결승에서 베토벤 '디아벨리 변주곡'의 압도적 명연으로 심사위원과 관객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런데 다음 곡인 베베른의 변주곡을 연주하다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연주를 중단했고, 영문을 몰라 놀란 사람들을 남겨두고 무대를 퇴장해 버렸다.
그는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런 연주를 계속 진행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콩쿠르에서 연주 도중 퇴장해 버린 스캔들의 주인공이지만, 그는 수상자들을 제치고 이 콩쿠르가 낳은 스타가 되었다. 그만큼 그가 연주한 '디아벨리 연주곡'이 강렬하고 압도적인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 중국 출신인 랑랑과 유자 왕 얘기가 나왔으니, 반대로 콩쿠르에서 우승하고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중국인 피아니스트 윤디 리 얘기도 해보자. 윤디 리는 중국에서만 공부하고 2000년에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단박에 스타로 떠올랐지만, 두 번째 음반이 나왔을 즈음부터 유명세에 흔들리고 음악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였다. 최근엔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공안에 체포되기도 했고, 재기가 힘들 것 같다.
콩쿠르 우승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콩쿠르가 중요한 이유는, 좋은 연주자를 세상에 선보이는 장이 되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피아니스트들을 사람들이 다 알기는 힘들다. 그런데 권위 있는 심사위원들이 연주를 다방면으로 평가하는 좋은 콩쿠르에서 상을 받았다고 하면, 그 연주자를 주목할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사실 임윤찬이 왜 쇼팽 콩쿠르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안 나갔지 궁금해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임윤찬에게는 이젠 더 이상 콩쿠르가 의미가 없다. 클래식 음악계는 2, 3년 전부터 공연 기획에 들어가는데, 3년 이내에 임윤찬이 전 세계 주요 무대에 다 서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나서 도이치그라모폰과 음반 계약하고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도 하지 않았나.
그런데 연주자에게 콩쿠르가 어떤 의미인지, 또 다른 측면에서도 볼 수 있다.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얼마 전에 시벨리우스 콩쿠르에 참가해 우승했다. 양인모는 이미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연주자이고 멋진 음반이 이미 나와 있는데, 콩쿠르에 다시 참가한 것이다. 양인모는 베를린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콩쿠르를 나가보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이렇게 이미 연주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콩쿠르를 나가는 이유는 연주자로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기 위해서이다.
연주자로 활동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나태해지기도 하는데, 다른 연주자들은 어떻게 연주하고 있고,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지, 콩쿠르에 참가해 자극을 받고 싶었다고 한다. 양인모는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피 말리는 긴장을 오랜만에 느껴봤다고 한다. 내가 이걸 통해 뭘 또 성취할 수 있을까, 콩쿠르에서 연주할 현대 곡은 몇 달 만에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원고도 데드라인이 있어야 써지고 시험이 다가와야 공부가 되는 것처럼, 일상을 살고 있는 연주자들에게도 그런 자극이 필요하다는 얘기에 공감이 갔다.
이번에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2위를 한 러시아 연주자 안나 게뉴셰네도 이미 세계 무대에서 활발하게 연주하고 있는 피아니스트인데, 그런 면에서 안나도 개인적으로 뭔가 성취하고 싶어서 출전한 게 아니었을까.

김: 콩쿠르의 경연 과정 자체가 계속 연주가 이어지는 형식이다. 자신의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구성해서 무대에 올리는 과정이 이어지고, 결선에 가면 오케스트라와 협연도 하고, 콩쿠르는 다양한 무대 경험을 쌓는 자리이기도 하다. 연주자들은 단순히 상을 받아서 내 이름을 알려야겠다, 이런 목표로만 콩쿠르에 나가는 게 아니다. 임윤찬 자신도 계속 얘기한 거지만, 수상에 대해서는 한순간도 생각한 적이 없고 그저 내 음악이 더 깊어지기를 바라며 콩쿠르에 참가했고, 콩쿠르를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니까 내 음악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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