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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횡령범들, 처벌받아도 돈은 안 갚는 이유

[취재파일] 횡령범들, 처벌받아도 돈은 안 갚는 이유

김혜민 기자

작성 2022.06.29 15:45 수정 2022.06.29 15:5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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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횡령범들, 지금 잘 살까?' 기사에 달린 댓글들
그때 그 횡령범들, 지금 잘 살까?' 기사에 달린 댓글들
그때 그 횡령범들, 지금 잘 살까?' 기사에 달린 댓글들

"처벌은 받았지만 돈은 안 갚는다"

"횡령하고 잠깐 살다 옴 되니까 빼돌린 돈으로 떵떵거리고…."

"환수가 어려우면 인생을 환수해야지 국가에서 평생 추적하면서 감시해야 한다."

"보는 내내 화가 너무 나네요. 횡령범들에게 돈을 모두 돌려받고 다시는 이런 생각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법을 강화했으면 좋겠네요."

'횡령범 추적기' 기사에 댓글들입니다. 취재로 확인된 횡령범들의 삶은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과거 '시대의 횡령범'들은 복역을 하고 있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기는 해도, 자신이 횡령한 돈을 열심히 갚고 있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아직 돌려줄 돈이 100억 원이 훌쩍 넘는데도, 일반인들과 비슷한, 평범하게 살고 있는 횡령범까지 있었습니다.
 

'죽은 사람 찔러보지 마시고 내버려 두시죠'

평범하게 살고 있는 '그'에게 취재진이 처음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입니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여가생활까지 누리면서 평범하게 사는 그의 삶은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취재진의 눈엔 일반인의 생활과 비슷하게 살고 있는 듯하게 보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연락이 닿아 해명을 요청하자, 여러 이유를 들면서 간절하게 보도하지 말아 줄 것을 부탁하기까지 했습니다.
 
"죽은 사람 찔러보지 마시고 내버려 두시죠."
"여기저기 묻는 것 자체가 치명적인 피해가 갈 수도 있다."
"잘못한 사람이자 약자이기에 할 말은 30년 뒤에나 하겠다."

그가 기자에게 보내온 문자메시지 내용들입니다. 물론 그는 자신이 저지른 횡령죄에 대한 처벌은 모두 받았습니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상 같은 범죄로 다시 처벌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의 말대로 취재로 인해 추가적인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떠들썩하게 보도됐던 횡령사건에 대해 국민들은 그 횡령범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권리가 있고, 횡령금은 거의 갚지 못한 상태에서 도의적인 책임까지 피할 수는 없습니다. 취재진은 고심 끝에, 그의 행적을 기사에 사실 위주로 간단히 담고, 그가 누구인지 암시하거나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은 모두 빼기로 했습니다. 취재를 통해 아주 구체적인 내용까지 추적이 됐고, 기사에 모두 담아낼 수도 있었지만, 처벌을 받은 이후의 그의 사생활은 보호돼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회사 자금 횡령

돈 갚게 하는 처벌

그런데 처벌받은 이후의 삶을 함부로 파헤칠 수 없는 건 '그'뿐만이 아닙니다. 죗값을 치른 다른 횡령범들이나,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피의자, 피고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역시 법원이 선고하는 '짧은' 형기를 마치고 나오면, 누구든 더 이상 책임을 묻기가 힘듭니다. 수사기관과 법원에선 횡령에 대한 낮은 구형, 양형과 범죄자가 재판에서까지만 돈을 일부라도 돌려주면 여기에서 또 감형을 해주는 관례는 아직도 남아있고, 횡령 범죄가 오히려 더 증가하고, 횡령 액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미국과만 비교해도 명확합니다. 우리나라는 300억 원 이상 횡령하면 권고 형량이 5~8년이지만, 미국의 경우, 주마다 조금씩 달라도 이보다 훨씬 많은 형량을 부과합니다. 텍사스주의 경우, 3억 6천만 원 횡령해도 최대 99년 구형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선 징역형 외에 벌금과 추징금 등 추가적인 형벌도 부과한다고 항변할 수 있지만, 취재 결과 이것조차 거의 쓸모가 없습니다. 추징금 역시 안 갚으면 그만이고, 벌금은 노역으로 하루에 1천만 원을 계산해 탕감받습니다. 동아건설에서 1천800억 원을 횡령했던 A 씨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는 벌금 100억 원을 선고받았지만, 노역을 하루에 1천만 원으로 계산합니다. 현행법상 노역은 부과받는 벌금 액수와 상관없이 최대 3년까지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일할 계산하면 하루 1천만 원 꼴이 되는 겁니다.

여기에다가 횡령한 돈을 숨겨 놓는 것도 이제 더 쉬워졌습니다. 과거에는 도박, 이제는 코인으로 돈을 날렸다고 하면, 실제로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 확인하기 거의 불가능합니다. 횡령죄에 대한 양형, 죄의 무게에 비해 적절한 것인지, 횡령범을 양산하는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입법을 하는 국회와, 사법기관과 수사기관 모두 다시 점검해봐야 할 때입니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여러 번 들은 얘기가 있습니다.
 
"'횡령을 해도 되는구나'라는 결말이 나오면 범죄를 조장할 수 있어 안 된다."

하지만 취재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한국은 '횡령을 권장하는 나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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