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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비하인드] 마스크 벗으시겠습니까?

마스크 벗으시겠습니까?
※ '코로나 비하인드'는 코로나19 취재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SBS 보도본부 생활문화부 박수진 기자의 취재기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기사에는 담지 못했던 박 기자의 취재물과 생각들을 독자들께 풀어놓습니다. [편집자 주]

"마스크, 벗으실 건가요?" 이 질문을 하러 지난 금요일, 서울 연남동에 나갔습니다. 정부가 5월 2일부터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한다고 발표한 날이었습니다. 어떤 정책이 발표되면 시민들의 생각은 어떤지 묻기 위해 거리로 나가는 건 기본적 취재인데요, 시민들의 의견도 듣고 또 정부 발표 내용을 현장감 있게 전달하기 위해 '스탠드 업(stand-up)'을 해야겠단 생각도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이럴 때' 실외 마스크 벗어도 된다…시민들 엇갈린 반응)



방송 뉴스를 보면 기자가 리포트 중 직접 등장해 한두 마디 논평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주로는 본인이 쓴 기사 내용 중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거나, 관련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할 때 사용하는 방송 기사의 주요 요소인데요, 이걸 '스탠드 업' 또는 '스탠딩'이라고 부릅니다. 이날 제가 준비한 스탠드 업 문장은 이랬습니다.

"지금은 이런 야외 공원에서도 거리두기가 2m 되지 않으면 마스크 착용이 의무입니다. 하지만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요, 마스크를 이렇게 벗어도 처벌 대상이 아닙니다."

평일 오후에도 사람이 북적이는 '연트럴파크'와 같은 공공 실외 장소에서 지금과, 앞으로의 마스크 착용 기준이 다르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시작해 벗고 끝내기로 했습니다. 준비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촬영이 시작되니 왜 이렇게 어색한지요. 카메라 앞에서 마스크를 벗는 게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그제야 이날 제가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아 마스크가 참 편했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급한 대로 파운데이션 팩트를 얼굴에 두드렸지만, 결과물을 보니 별 소용없는 짓이었습니다. 그동안 '마기꾼(마스크 사기꾼)'까지는 아니었지만, 마스크 뒤편에서 꽤 큰 자유(?)를 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화장품을 다시 잘 챙겨 다녀야겠단 교훈도 얻었습니다.

실외 마스크 벗는 기대감 화장품 매출 증가

마스크가 준 '안전' 그리고 '구속'과 '자유'

마스크에 대한 공통적인 평가가 있습니다. "가장 간편하지만, 가장 효율적으로 감염을 예방해주는 장치". 2년이 넘는 코로나 대유행 상황에서 마스크는 우리에게 안전을 선사했습니다. 근본적 예방책이라고 볼 순 없지만, 마스크를 올바로 착용했다면 쓰지 않은 사람과 같은 상황에 처했어도 감염의 가능성은 크게 줄어듭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최근 기침 상황 실험에서 수술용 마스크의 경우 얼굴에 밀착해 올바르게 사용했을 경우 보호 효과는 7.5%에서 65%로 높아졌습니다. 다른 연구에선 N95 마스크를 얼굴에 밀착해 올바르게 착용했을 경우 보호 효과는 95%까지 높아졌습니다. 마스크를 벗을지 말지 고민하는 이유가 '안전'과 '보호' 효과를 의심해서는 아닌 겁니다. 그럼에도 마스크를 벗을지 말지 고민하는 이유. 시민의 인터뷰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마스크를 벗어야 정말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우리가 마스크를 쓰기 시작한 건 2020년 1월부터입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고 과태료를 내야 한다는 등의 처벌 규정은 없던 때지만, 마스크 한 장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은 밤샘 줄 서기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공포감이 컸던 때입니다. 지금은 기억도 흐릿해졌지만, 마스크 수급이 불안정해 돈을 배로 줘도 구매할 수 없던 '마스크 대란' 시기도 있었고요, 대구 지역 신천지 발 1차 유행이 한창이던 3월부터는 <출생 연도별 마스크 구매 5부제>를 시행하며 1주일에 마스크 2장만 구매하도록 제한됐던 적도 있습니다. 마스크가 우리의 일상을 구속하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습니다.

대구를 시작으로 경기, 서울 등 지자체별로 실내외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행정명령이 이어졌고, 2020년 10월 실외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를 물게 하는 감염병예방법이 시행됐습니다. 2021년 4월부터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와 상관없이 실내 전체 및 2m 거리두기가 되지 않는 실외에선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됐습니다.

처음엔 입과 코를 틀어막아야 하는 불편함이 컸던 것 같은데, 2년이란 시간은 불편함을 익숙함으로 바꾸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제 경우는 화장하지 않고도 외출하고, 사람들을 편하게 만날 수 있던 '자유'가 좋았던 것 같고요. 돌이켜보면 때론 취재의 수월함도 있었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하는 걸 꺼리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마스크 썼으니 괜찮아요'라며 별도의 '익명 처리(모자이크, 음성변조)' 없이 응해주셨던 취재원들도 있었습니다. 시민들을 인터뷰하면서 들었던 "이제 밖에서 마스크를 벗으면 옷을 벗는 느낌이에요"라는 한 20대 대학생의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인터뷰하며 '인간은 구속 안에서 자유함을 느끼는 걸까' 이런 (취재와 관련 없는) 생각도 잠시 했습니다.

마스크 쓴 시민들 (사진=연합뉴스)

2주 동안 정부 안팎에서 진행된 '실외 마스크 해제' 논쟁

정부의 '실외 마스크 해제' 결정 과정은 내부 논의가 꽤 치열했습니다. 2주 전인 4월 15일. 정부는 거리두기를 전면 해제하면서도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는 보류했습니다. 유행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며 2주 더 고민하고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유행이 감소세라고는 여전히 십 수만 명에 달하는 확진자(4월 15일 기준 일평균 확진자 16만여 명) 규모는 부담이었기 때문입니다.

본격 논의가 시작된 건 지난주부터입니다. SBS 보건의료팀 취재 결과, 주초 이뤄진 방역 당국 내부 비공개회의에는 두 가지 안이 상정됐습니다. 2주 더 지켜보자는 것이 1안, 5월부터 해제하되 착용이 유지돼야 하는 일부 공간은 따로 수칙을 정하자는 것이 2안이었습니다. 취재해보니, 질병관리청이 좀 더 신중했습니다. 거리두기 해제와 실내 취식 허용 등 최근에 있었던 방역 완화 조처가 내려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발생 상황을 좀 더 관찰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고 합니다. 대신 산책이나 운동, 동거 가족끼리의 실외 활동 등 국민들이 주로 불편을 느끼는 일부 상황을 예외로 두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5월부터 해제한다는 두 번째 안은 청와대와 복지부의 의견이 좀 더 반영됐다는 게 방역 당국 안팎의 이야기입니다. 유행이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판단 이유였습니다. 다만 고위험군이나 증상이 있는 사람, 또는 집회나 행사와 같은 밀집 장소에선 실외라도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도록 예외를 두자는 의견이었다고 합니다.

보통 정부 내에서의 의견 조율, 일상회복지원위원회를 통한 민간 자문을 받는 정도가 통상의 의견 취합 과정인데, 이번 '실외 마스크 해제 결정'엔 또 다른 변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인수위원회입니다. 인수위원회는 방역당국의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주 수요일(4월 27일) "실외 마스크 해제는 5월 하순은 되어야 한다"며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인수위의 의견도 적극 검토하겠다는 게 방역당국의 설명이었지만, 그다음 날 총리실 주재로 진행된 방역전략회의에서 인수위의 의견이 크게 반영되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방역전략회의에서 방역당국이 내놓은 안은 총 3가지였는데, ▲1안은 '실외마스크 해제, 일부 시설 착용 권고' ▲2안은 '실외마스크 해제, 일부 시설 착용 의무' ▲3안은 '2주 연장'이었다고 합니다. "1안과 2안을 섞어서 최종안을 만들었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전언입니다. <실외 마스크 착용을 해제하되, 50인 이상 모이는 집회나 공연 실외스포츠경기장은 의무가 유지된다.>는 새 방침이 이런 과정을 통해 결정됐고 내일(2일)부터 적용되는 겁니다.

인수위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질문에 이 관계자는 "5월 말까지 미뤄야 한다는 인수위의 이야기에 구체적 근거나 기준이 제시됐으면 수용하고 검토했겠지만 그런 것이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코로나19, 마스크

왠지 눈치 보이는 '탈 마스크'…"주변 사람 60-70% 벗으면"

SBS 보건의료팀은 정부가 실외 마스크 해제를 결정하기까지 2주간, 여러 현장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에게 생각을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2주 동안 정부의 입장이 '신중'에서 '해제 결정'으로 바뀐 것처럼, 시민들의 생각도 유행 감소세에 따라 변해가는지를 관찰했습니다. 같은 대상을 놓고 여러 번 질문을 한 건 아니다 보니 관찰의 정확도가 정교하진 않습니다만 큰 여론 변화를 감지하진 못했습니다. 여전히 찬성, 반대, 고민 여러 의견이 혼재돼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남들 하는 거 보고 하겠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서울 연남동에서 만난 한 서비스업 종사자는 "굉장히 반가운 소리긴 한데 걱정되는 부분도 있어요. 제가 비염이 있어서 마스크 쓰면 코도 막히고 두통도 생기거든요. 그래서 너무 벗고 싶긴 한데 좀 고민이 되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언제쯤 벗을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었더니 "음...한 주변 사람 60~70% 정도 벗으면 저도 같이 벗지 않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밖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은 야외 노동자는 어떨까 싶어 환경미화원께 물었습니다. 온종일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하는 분들은 벗고 싶은 생각이 크지 않을까 싶었는데, 대답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직은 좀 빠른 것 같아요. 아직 걸리는 사람도 많고요. 이게 습관이 되니까 또 괜찮기도 하고요. 월요일부터 당장 벗고 그러진 않을 것 같은데요."

물론 "지금도 이미 늦었다"며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분도 있었고, "확진자가 크게 줄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분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요. 공통점은 있었습니다. '실내 착용'에 대해선 양쪽 모두 '아직 이르다'였습니다.

"월요일부터 벗기는 할 건데, 실내에 들어갈 땐 써야 하니까 여분을 챙겨 다닐 거예요."
"실내에서도 마스크 안 쓰는 사람들이 늘어날 거 같아 걱정이에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 국가 대부분은 실외 마스크 의무를 이미 해제했습니다. 방역당국은 이런 나라들을 분석해보니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한 이후에도 큰 유행 증가는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UCLA 대학 연구팀도 실외 감염률은 실내보다 최대 18.7배 낮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고, 유럽 공동 연구팀도 실외 마스크의 감염 예방 효과는 미미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관련기사▶ 마스크 해제 두고 서로 "비과학적"…실제 효과 따져보니)



과학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한국 사회의 수용성은 과연 어떨까요? 여러분은 내일부터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으실 건가요?

(취재 : 박수진, PD : 김도균, 일러스트 : 김정연, 제작 : D콘텐츠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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