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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더 많은 '준호'들이 꽃 피우는 사회가 되기를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2pm 준호 (사진=JYP 엔터테인먼트)

"2PM의 이준호입니다."

지난 연말, 연기대상 시상대에 오른 가수 겸 배우 이준호의 인사말이 화제였습니다. 왜 이게 화젯거리이냐고요? 대부분의 아이돌 가수 출신의 연기자는 배우 활동을 할 때, 소속 그룹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특히 연기대상 시상식에서는 더욱더 그렇지요. 소속 그룹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이돌 출신 배우가 무척 늘어난 요즘, 어떠한 편견 없이 연기력으로 평가해달라는 의미를 담아 출신 그룹을 언급하지 않거나, 가수 시절 사용하던 예명과 분리해 본명으로 활동하곤 하지요.

게다가 특히 데뷔 15년 차에 접어드는 이준호의 경우 이미 충분히 높은 인지도, 출중한 연기력, 최근 출연작의 빅 히트 등, 어떠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사람들이 '다 알만한' 배우였기에, 인사말의 화제성은 더욱 컸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랬을까? 연기자로 평가받는 자리에서 가수 출신임을 다시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을까? 대중의 궁금증도 컸지요.

이에 대해 그는 명쾌한 두 가지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다른 멤버들이 활약하며 2PM을 알리던 과거, 본인은 스스로 그룹을 알릴만한 힘이 없었기에 언젠가는 꼭 그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는 것과 "아이돌 출신이든 아니든, 중요한 건 연기력이기에 어떤 인사말을 하는지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는 부차적인 문제다"라고 말했지요. 그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겨울꽃이 드디어 만개했구나."

2010년, 예능 '강심장'에 출연했던 그는 '인기는 계절'이라는 발언으로 소소한 화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닉쿤, 옥택연 등 타 멤버들의 도드라지는 활약상에 비해 본인은 다소 적은 활동으로 조바심이 나지 않냐는 주제에 대한 답변이었는데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흘러가듯이, 멤버 각자가 각기 다른 시기에 주목받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는 자신의 계절은 조금 늦게 올 뿐이라 믿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21살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꽤 성숙한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때를 기다려온 셈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그치지 않고, 묵묵히 때를 기다리며 자신의 실력까지 갈고닦아온 그는, 아이돌로서 환갑이라는 10년 차를 훌쩍 넘어 14년 차에 드디어 자신의 계절을 맞이한 셈입니다.

2pm 준호 (사진=JYP 엔터테인먼트)

상담가로 일하다 보면 이런 겨울꽃의 자질을 지닌, '자신의 때가 조금 느린 청년들'을 자주 만납니다. 충분히 가능성도 있고, 역량도 있는 청년들인데도 상담을 해보면 불안과 압박감은 물론, 자기 비하에 빠져 있는 경우도 상당히 보게 되지요. 그들을 가장 크게 짓누르는 것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생애주기의 압박'입니다. "몇 살에는 무엇을 해야 정상이다"라는 주변의 시선, 또는 사회적인 분위기 말이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가는 것이 '일반적'이고, 서른쯤에는 적어도 취직을 하는 것이 '정상'이며, 늦어도 마흔이 되기 전에는 결혼을 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그런 관념들 말입니다.

이러한 생애주기적 압박감은 누구 한 명이 정해둔 룰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형체 없는 빅 브라더가 되어 다양한 사람의 입을 통해 청년세대에게 전해집니다. 때로는 이런 압박감에 익숙해진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옥죄기도 하지요. 그런 청년들에게 저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벚꽃, 개나리, 목련, 수선화, 동백꽃, 포인세티아가 각각 언제 피는지 아세요?"라고요. 대부분은 앞의 3가지, 봄꽃들만 얼추 압니다. 수선화와 동백, 그리고 포인세티아가 겨울에 피는 꽃이라는 것은 모르지요. 우리의 인식 속에서 그려내는 꽃이란, 봄에 피고 아무리 늦어도 가을의 코스모스까지가 고작이니까요.

그렇지만 분명히 겨울에 피는 꽃도 존재한다는 것, 그 꽃들을 닦달한다고 여름이나 봄에 미리 피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압니다. 하물며 꽃보다 더욱 다양하고 복잡다단한 존재인 사람은 더 그렇지 않을까요? 단지 내가 어떤 꽃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할 뿐이지요.

하지만 상담을 통해 개인의 인식을 바꾸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늦게 피는 사람도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로의 변화겠지요. 각자의 때를 존중하는 너그러운 시선과, 스스로의 때가 오는 순간까지 초조해하지 않고 자신을 갈고닦을 시간을 제공하는 사회안전망이 우선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2022년, 참으로 청년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 보다 많아진 한 해입니다. 다양한 정책과 공약이 쏟아지고 있는 요즈음인데요, 이러한 모든 약속이 표심을 위한 단편적인 메시지들이 아니기를, 선거가 끝나면 사라지는 썰물 같은 흐름이 아니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사회의 더 많은 가을꽃, 겨울꽃들이 각자의 시기에 피어날 수 있도록요.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제공)
 


인잇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청년 3만 명을 상담하며 세상을 비춰 보는 마음건강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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