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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피해자에게 불쑥 나타나 "사과하면 받을래요?"

<앵커>

이렇게 정부는 고문 가해자 명단을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에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그럼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기관의 사과는 제대로 이뤄져 왔을까요? 고문 피해자들은 사과 방식이 황당했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원종진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전두환 정권 시절 재일 공작원의 지령을 받은 간첩으로 몰려 5년을 복역한 김양기 씨.

35년 전 일이지만 광주 보안대에서 모진 고문을 받은 기억이 뚜렷합니다.

[김양기/1986년 재일 공작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 나는 지금도 군화 소리만 들으면 나는 트라우마에 빠져요. 옛날에 내가 고문을 당할 때 그 군홧발로 지하실에서 내려오는, '쿵쿵쿵'하고 고문하려고 준비하려고 내려오는 그 군홧발 소리.]

그런데 지난달 말, 바로 그 군화를 신은 낯선 사람들이 불쑥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김양기/1986년 재일 공작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 일언반구도 없다가 무죄 받은 지 10년이 지났는데, 이제 와서 뜬금없이 느닷없이 하루아침에 나타나서 '사과하면 받아주시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거예요.)]

국가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피해 회복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겠다는 건지, 더 이상의 얘기는 없었다고 합니다.

[김양기/1986년 재일 공작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 처음에는 좀 황당했죠. '그거는 내가 좀 상의도 해보고 고민을 좀 해보겠다' 하니까 이제 내 전화번호를 좀 달래. 연락을 할 거라 그러더만. 아직 (연락이) 안 왔어요.]

1980년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7년을 복역한 이에게는 최근 관할 경찰서장 명의로 A4 용지 한 장짜리 서한문이 전달됐을 뿐입니다.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의 활동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2010년부터 행안부는 국정원, 국방부, 경찰청 등 사정기관에게 과거 국가 범죄 피해자에게 적극 사과할 것을 권고해 왔습니다.

하지만 간첩조작 사건 등 고문 피해자에 대한 사과 이행률은 10%를 조금 넘는 수준, 그마저 피해자들에게는 실적 채우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박민중/인권의학연구소 팀장 : (국가 기관들이) 어떤 스탠스냐면 '아니 하라고 해서 굳이 이전에 안 하던 거 하는데', 이런 것은 수준 미달이고 함량 미달이고, 안 하느니만 못한 거고, 피해자에게 또다시 2차 가해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가 국가 범죄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적극적으로, 또 구체적으로 국가의 잘못을 사과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있는지, 고문 피해자들은 묻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배문산, 영상편집 : 김종태, VJ : 김준호)

▶ "고문 가해자 공개하라" 법원 판결에도 정부는 '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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