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조선일보 보도로 사건이 알려진 지난해 12월 19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평소 같으면 조용했을 토요일 오전이었다. 현직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보도로 서초동이 들썩였다. 석연치 않은 내사 종결에 은폐 또는 압력 의혹이 제기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시 법무부의 '입' 역할을 맡고 있던 검사들이 대응에 나섰다.
그때도 쟁점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운전자폭행죄 적용 여부였다. 경찰이 이 전 차관에 대해 특가법이 아닌 반의사불벌죄인 폭행죄만 적용했고, 피해자인 택시 기사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건을 종결했기 때문이다. 보통 승객이 택시 기사를 때리는 많은 사건에서 특가법상 운전자폭행죄가 적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임명 전이라고는 해도 현직 법무부 차관의 사건이었다.
'운행 중' 아니라던 경찰과 법무부
법무부 검사들의 논리도 비슷했다. 신호 대기에 걸려 잠시 세우는 게 아니라 목적지에 도착해 승객이 하차하는 경우는 운행이 종료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당시 법무부 대변인실 한 검사의 설명이었다. 택시는 버스와 달리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운행이 한 번 끝나는 구조로 봐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기자들이 법리를 잘 몰라 빚어진 해프닝이라는 게 당시 한 검사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사건 발생 열 달이 지나 검찰이 재수사 끝에 내린 결론은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이 맞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이 부분은 재수사에서 쟁점조차 되지 못 했다. 사건 발생 직후 이 전 차관의 증거인멸교사 혐의와, 담당 경찰관의 특수직무유기 혐의, 윗선의 압력 의혹 등이 쟁점이 됐을 뿐 특가법 위반 여부는 재수사 과정에서 이론의 여지조차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법 전문가인 검사들의 논리를 스스로 뒤집을 만한 대단한 반전이라도 있었던 걸까?
검찰 재수사 결론은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 맞다"
법안 심사보고서에는 입법 취지에 대해 '여객 승·하차를 위한 정차 시 운전자에 대한 폭행·협박 등은 운전자의 심리적 불안을 야기하여 2차적인 사고의 위험이 증가할 수 있음'이라는 내용도 적혀 있다. 이는 폭행·협박으로 인한 추가 사고는 물론 피해를 입은 운전기사가 다음 승객에게 미칠 2차 사고 가능성까지 고려했다는 게 국회 법사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당시 법무부 측의 '목적지에 도착한 경우 운행이 종료되는 구조로 봐야 한다'는 해석은 입법 취지에도 어긋나는 셈이다.
다른 법 전문가들의 해석도 마찬가지였다. 한 전직 헌법재판관은 SBS와 통화에서 "승객 승하차를 위해 일시 정차한 것은 운행 중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고 헌재 결정은 그런 법원 해석을 인정한 것"이라며 "택시기사가 이후 다른 승객을 태우기 위해 운행을 계속했다면 역시 운행 중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 역시 "택시는 시동을 계속 켜고 있고, 손님이 요금 계산하고 내리면 곧바로 다시 출발하기 때문에 운행 종료로 볼 수 없다"고 답했다. 또 "일시 정차시 폭행이 발생해서 차량이 잘못 움직이면 2차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특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미 그 당시에도 객관적인 법리 판단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달리는 택시에서 기사를 폭행한 승객이 특가법 적용을 받지 않은 대법원 판례가 있기는 하다. (2008도4375) 운전기사가 폭행 당한 직후 경찰서로 차를 몰고 가 승객을 신고한 사건이다. 당시 대법원은 기사가 1) 경찰서 관내에 2) 신고할 목적으로 차를 세웠기 때문에 1) 교통안전과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없는 장소에서 2) 계속적인 운행의 의사 없이 자동차를 세웠다고 보고 특가법상 운전자폭행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전 차관의 사건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 전 차관 사건의 경우 1) 아파트 공동경비실 앞에 정차했고 2) 사건 이후에도 택시 기사가 운행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이마저 2008년 판례라 2015년 법 개정 이후라면 달랐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막무가내 아니라던 법무부 검사들, 모두 영전했다
이후의 경과는 알려진 바와 같다. 서울중앙지검은 부장검사회의까지 소집해가며 이 전 차관에게 특가법상 운전자폭행죄 등을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당시 법무부 측 논리대로라면 수사팀과 중앙지검 부장검사들은 모두 '법무부나 현 정권에 안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거나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되는 셈이다.
당시 '법무부의 입' 역할을 맡았던 주요 검사들은 검찰로 복귀했고, 모두 영전했다. 당시 대변인은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부대변인은 전주지검 남원지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떤 관점에선 맡은 바 역할에 충실했던 것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받은 셈이다.
장정구와 이용구, 또 다시 잃어버린 '신뢰'
국민이 실망하고 우리 사회의 공정에 회의를 느끼게 되는 건 바로 이런 지점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보다 더욱 뿌리 깊은 유권(有權)무죄, 무권유죄 말이다. 힘 있는 자에게는 한없이 자비롭고 힘없는 사람에게는 갑자기 추상 같아지는 공권력을 보며 사람들은 신뢰를 잃을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일선에서 백날 고생해 봐야 이런 일 한 번 터지면 도루묵이다.
사실 복잡한 법리를 찾아보지 않아도 달리는 택시에서 승객이 운전기사를 때리면 더 중하게 처벌된다는 건 인터넷 검색만 해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택시 블랙박스가 보급되면서 택시기사 폭행 기사는 오래 전부터 단골 뉴스거리가 됐고 특가법에 따라 더 중하게 처벌된다는 내용은 꼭 한 문장이라도 들어간다. 그럼에도 고위 공직자의 택시기사 폭행에 헌재 결정문과 온갖 법 해석을 들이대며 '우주방어'에 나섰던 경찰과 엘리트 검사들의 작태를 생각하면 쓴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는 그들 역시 공무원이자 조직원으로서 위치에 따른 소임에 충실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공권력, 특히 검찰이 신뢰를 잃어왔던 과정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검찰에 엄청난 불신과 지탄이 가해진 것도 그들이 법대로가 아닌, 정치적 이해로 수사를 한다는 프레임 때문이었다. 이제는 여러 검사들을 지휘하는 자리에 간 당시 법무부 검사들이 비슷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할지 의문이 든다. 적어도 부끄러움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