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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함경도에서도 볼 수 있었던 '천국의 계단'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함경도에서도 볼 수 있었던 '천국의 계단'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cs7922@sbs.co.kr

작성 2021.06.02 08:58 수정 2021.06.02 13:0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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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 ▶ 베를린 장벽 개방이 TV 앵커 멘트에서?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에서 방송 개방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방송 개방은 물리적 통합에 앞서 정서적 통합을 먼저 이루는 작업이며 통일의 밑거름을 마련하는 중요한 토대이기도 합니다. 방송 개방은 미래의 통일을 준비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방송 개방의 구체적 사안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남북한 방송 가운데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통일을 이끄는 중심축은 당연히 남한 방송일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시대에서 일제강점기, 김일성 일가의 왕조적 전체주의 체제를 거치면서 고립과 억압 속에 살아왔던 북한 주민들이 세상에 눈을 뜨고 민주주의를 배우며 미래의 통일을 꿈꿀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 남한 방송 시청인 것입니다.

먼저 독일 통일 과정에서 방송 개방이 한 역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독일의 방송 개방

동독은 분단 시기에도 서독 방송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서베를린이 동독 영토 한가운데에 있었고 전파는 국경으로 가로막을 수 없었기 때문에 동독으로서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동독 주민들은 동독의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보다 서독의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시청했습니다. 동독에서는 모든 정보를 국가와 당이 독점하고 있어 방송 내용에 제한이 있었던 반면, 서독 방송은 보다 객관적이고 내용도 다양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동독 주민들은 동독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서독 방송을 통해 정보를 취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서독 언론은 1972년부터 동독에 상주 특파원을 둘 수 있었는데 여러 가지 제약에도 불구하고 동독 문제에 대해 상세히 보도했기 때문에 동독 주민들은 동독 방송을 통해 얻을 수 없는 정보를 서독 방송을 통해 얻을 수 있었습니다.

동독 주민들은 텔레비전 수상기에 PAL 방식의 서독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해 서독 방송을 시청했고, 1970년대 초부터는 대형 공동안테나를 설치해 위성까지 수신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대체적으로 볼 때 동독 인구의 80%가 정기적으로 서독 미디어를 청취하고 시청했다고 합니다.

동독으로서는 주민들의 서독 방송 시청이 골칫거리였기 때문에 이를 막아보려는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서독으로 향하는 안테나를 철거하는 운동을 벌이거나, 대형 공동안테나의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기도 하고, 방해 전파를 발사해 서독 방송 시청을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또, 형법 규정을 임의로 적용해 서독 방송 시청 자체를 처벌하지는 않지만 시청한 정보를 퍼트리거나 공동으로 모여서 시청하는 행위를 처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독 정부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정통성을 인정받으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독 방송에 대한 노골적인 전파 방해나 수신 방해 조치를 취하지는 못했습니다. 정보의 자유로운 이동을 규정한 국제협약에 서명한 동독 정부가 노골적인 수신 방해 조치를 취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독자적인 국가성을 인정받으려는 동독의 노력이 훼손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동독 지도부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공지사항의 경우 서독 방송의 주요뉴스 시간에는 발표하지 않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동독 주민들의 지속적인 서독 텔레비전 시청은 양독 주민들의 동질성을 유지하고 독일의 분단을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동독 주민들은 서독 방송의 보도 특집 등을 즐겨보면서 주요 정치적 현안에 대한 이해를 넓혔고, 서독 텔레비전의 상업 광고는 동독 주민들의 물질적 욕구를 자극해 서독 사회를 동경하게 만들었습니다.

안정식 취재파일용-조선중앙TV

남북한 방송 개방

남북한의 방송 환경은 분단 시기의 동서독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먼저, 텔레비전 방송의 경우 남북한의 일반 국민들이 자기 지역에서 상대 측 방송을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아날로그 방송 시절에도 남한은 NTSC 방식인 반면 북한은 PAL 방식이어서 특별한 장치를 달지 않으면 수신이 불가능했고, 남한이 2012년 12월 31일 아날로그 방송을 종료하고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하면서 남한 방송을 북한 지역에서 수신하기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북중 접경지대인 함경북도, 양강도, 자강도나 남북 접경지역인 개성, 해주, 평양, 사리원, 고성 등에는 외부의 전파가 미치는 만큼 기술적 문제만 해결되면 중국 쪽에서 유입되는 방송이나 남한 방송의 수신이 가능한데, 남북 접경 지역뿐 아니라 동해안의 함흥, 청진 등에서도 남한의 지상파방송이 수신된다는 증언들이 있었습니다. 함흥이나 청진은 남한에서 상당히 떨어져있는 지역으로 전파가 도달한다는 것이 의아할 수도 있지만, 함흥·청진 지역과 남한 간 직선 구간은 육지가 아니라 바다로, 전파를 막는 산이나 건물 같은 장애물이 없어 남한에서 전파를 보내면 함흥, 청진까지도 도달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즉 기술적 문제만 해결되면 북한의 상당수 지역에서 남한 방송 수신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라디오 방송의 경우 남북한이 상대 측 지역으로 송출하는 전파가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월경하는데, 북한의 대남방송은 출력도 약하고 요즘 남한 내에서 북한 방송을 은밀히 들을만한 유인도 별로 없어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북한이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발표하는 입장은 대체로 남한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고, 북한 매체들의 인터넷 사이트는 접속이 차단돼 있긴 하지만 해외로 우회해 접근하는 방식을 활용하면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대북 라디오 방송은 KBS 한민족방송과 민간의 단파라디오 방송(국민통일방송, 자유북한방송 등)이 있는데, 수신자가 수십만 명에서 100만 명 이상까지 이른다는 추정이 있긴 하지만 정확한 수신자 수를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2005년 탈북자 13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북 라디오 방송을 청취한 경험이 있다는 사람이 63명, 전체의 45.7%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 가운데 대북방송을 일주일에 1∽2회 이상 청취했다는 사람이 33명, 청취 유경험자의 53.2%였고, 거의 매일 들었다는 사람도 14명, 청취 유경험자의 22.6%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함경도에서도 볼 수 있었던 드라마 '천국의 계단'
남한 방송 콘텐츠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관심은 높은 편입니다. 북한 지역에서 수신되는 TV나 라디오 방송의 전파를 몰래 수신하는 것 말고도, 북중 접경지대를 통해 들어오는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를 발전된 디지털 기기를 통해 소비하고 있습니다.

한류 붐이 북중 접경지대까지 미치면서 조선족이나 화교, 한족 상인들은 상업적 목적으로 남한의 프로그램들을 VCR이나 CD, DVD, USB 등에 담아 북한 지역으로 엄청나게 유통시켰습니다. 이 같은 콘텐츠를 재생할 수 있는 중고 컴퓨터와 VCR, CD, DVD플레이어, 노트텔 등도 북한 내부로 급속히 보급됐습니다. '천국의 계단', '가을동화', '올인', '꽃보다 남자' 같은 남한 드라마들이 북한에서 인기를 모았다고 탈북자들은 말합니다.

북한은 남한 방송 시청을 용인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남한 방송을 몰래 보고 듣다 적발되면 처벌을 감수해야 합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까지 만들어 남한 영상물 시청 시 최대 15년의 교화형, 남한 영상물 유입 유포 시 최대 사형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엄혹한 단속으로 남한 방송 유입을 막겠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남한 콘텐츠를 비롯해 외부 정보 유입을 완전히 막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한류 붐'이 '방송을 통한 정치 사회적 교육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북한으로 유입되는 한국 콘텐츠가 대개는 드라마 등 오락성 프로그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 등 오락프로그램의 유입도 남한 사회에 대한 동경심을 유발하고 한민족의 구심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줘 향후 남북 통합에 기여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또, 오락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한류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북한에서도 지대하다는 것은 북한 당국의 규제만 사라지면 남한 방송이 북한 지역에 전파되는 데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오락프로그램뿐 아니라 새로운 정보에 대한 욕구도 있을 것인 만큼, 북한 당국의 규제만 사라지면 남한 방송의 보도나 교양프로그램들도 북한 지역에서 생명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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