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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일본 '외교청서'에 가려진 또 다른 결정…그리고 램지어

[월드리포트] 일본 '외교청서'에 가려진 또 다른 결정…그리고 램지어

위안부 부정을 계속하는 일본 극우…언제까지?

유성재 기자 venia@sbs.co.kr

작성 2021.04.28 15:27 수정 2021.04.29 17:5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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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매년 전 세계의 외교 동향과 자국의 외교적 성과, 그리고 과제를 정리해서 발간하는 일종의 백서 '외교청서' 2021년판을 지난 27일 각료회의(각의)에서 결정했습니다. SBS 8뉴스에서 올해 외교청서에서 우리나라와 관련된 부분을 전해드리기도 했는데요( ▶기사 바로 보러가기 ), 지난해 아베 총리의 뒤를 이어 집권한 스가 요시히데 총리도 외교, 특히 한국에 대한 외교에서는 기존 주장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이 실망스러웠습니다.

27일 각의에서는 한일 관계에서 퇴행을 반복하는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이 확인된 장면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보수 성향의 산케이 신문이 28일자 2면에 마치 '당연하다'는 듯 전한 내용인데요, 일본 정부가 '종군 위안부'라는 표현에서 '종군'이라는 단어가 부적절하다는 '답변서'를 결정했다는 겁니다.

누군가의 '질의'가 있었으니 정부가 '답변서'를 결정했겠죠. 질의는 보수 성향의 일본 유신(維新)의 모임 소속 바바 노부유키 중의원(오사카 17 선거구, 3선)이 정부에 던진 겁니다. '종군 위안부'의 '종군'이라는 단어와, 강제동원 노동자의 '강제징용'이라는 단어가 적절한지를 묻는 내용이었고, 이 질문에 대해 정부가 견해를 답변으로 정리한 겁니다.

일본 정부가 결정한 답변서의 핵심 내용은 이렇습니다. 위안부의 강제 동원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에서 "이른바 종군위안부"라는 표현을 쓴 것은 "당시 사회에서 그 표현이 폭넓게 사용되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한 뒤 "'종군' 위안부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오해를 부를 우려가 있으니 단순히 '위안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겁니다. 위안부의 이미지에서 군대로 상징되는 당시 일제의 공권력을 걷어내려는 치졸한 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종군'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면 언젠가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도 희미해질 거라는 속셈이겠죠.

이미 여러 보도에서 접하셨겠지만, 일본군 위안부에게서 '강제성'을 들어내려는 시도는 일본 극우 보수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일본 극우의 논리를 그대로 써내려간 하버드대 램지어 교수의 어처구니없는 논문이 대표적이겠네요. 지난 토요일(24일) 도쿄에서 열린 '국제역사논전연구소' 주최 학술 회의도 이런 시도의 일환입니다. 한국 언론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SBS가 학술 회의를 화면에 담아 당일 8뉴스로 전해드리기도 했습니다. ( ▶ 기사 바로 보러가기

일본 국회의사당이 있는 도쿄 나가타쵸의 세이료회관에서 열린 학술 대회에는 200명 규모의 강당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접수장에서 한국 취재진임을 밝히고 명함을 제출한 저희들에게는 참가비를 받지 않았지만, 일반 참가자들에게는 자료비 등의 명목으로 2천 엔(약 2만 1천 원)을 받았습니다. 강당에 들어가자마자 연단 쪽에 눈길이 갔는데요, 램지어 교수의 사진을 크게 현상해 거치대에 놓았고, 그 위로는 일장기를 중심으로 태극기와 성조기까지 걸어 놓았습니다. 이날 학술대회가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둘러싼 '국제적 논쟁'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를 강조하기 위해 한미일 3국의 국기를 걸어 놓은 걸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유독 태극기만 위아래가 뒤집어진 채로 걸려 있었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걸어 놓은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주최측은 그대로 학술대회를 시작하려는 듯 연단을 움직이고, 마이크를 점검하고 있었습니다.

램지어 옹호 학술대회 모습
그런데 대회 시작이 예정된 오후 2시가 되기 직전에, 앞쪽 자리에 앉아 있던 한 참석자가 주최 측 사람에게 태극기를 가리키며 뭔가 말하는 장면이 목격됐습니다. 주최 측 사람들이 잠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더니 통제실에 연락하는 등 부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잠시 후 국기가 걸려있던 시설물이 아래로 내려져, 태극기를 떼어낸 뒤 위아래를 정상으로 만들어 다시 걸었습니다. 단순한 실수로 볼 수도 있는 해프닝이었지만, 만약에 주최 측이 의도적으로 태극기만 거꾸로 걸어 놓은 것이었다면, 그 역시 실로 치졸한 행태가 아닐 수 없었겠죠.

월드리포트 유성재
학술대회는 램지어의 논문 내용을 극우 여성 시민단체인 '나데시코 재팬' 관계자가 참석자들에게 자랑스럽게 보고하고, 이어 극우 역사학자가 램지어 논문에 대한 반론에 다시 반론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논문에 토를 다는 학자들'에 대한 비난도 빠지지 않았습니다만, 이날 학술회의의 절정은 램지어 교수 본인이 주최측에 보낸 영상 메시지였습니다.

해당 학술대회에 영상 메시지를 보낸 램지어 교수
램지어 교수의 10분 정도 길이의 영상 메시지 가운데 주요 내용은 제가  8뉴스에서 전해드린 그대롭니다. 램지어 교수는 자신에 대한 비난을 '반대하는 학자들에 의한 암살 시도'로 규정하고, 그들의 배경에 영미권 학회에서 위안부에 대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꺼려하는 일종의 '동조 압력'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즉, 램지어 본인-을 압박해 논문을 취소시킴으로써 위안부 논리의 '일관성'을 지키려 하고 있다고 공격했습니다. 램지어 교수의 어조는 울분에 찬 비난이라기보다는 조롱에 가까웠고, 중간 중간 농담과 푸념도 섞어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간헐적으로 폭소도 터져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 10년이 넘는 시간을 일본에서 보낸 램지어 교수의 일본어 실력이 상당한 수준이어서 학술 회의 참석자들에게 엄청난 호감을 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도 램지어 교수가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모습은 이날 처음 봤는데요, 일본 극우 입장에서는 일본어를 저렇게 잘 하는 하버드대학 교수가 위안부 강제성을 부정하는 논문까지 썼다가 다른 학자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았으니, 램지어 교수가 마치 '투사'처럼 느껴졌겠죠.

학술 회의에 나온 극우 학자들은 "우리는 반대파-즉,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일본에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는 학자들-와의 논쟁을 피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국회든 언론이든, 양측이 인정하는 정식 토론의 장을 만들어서 그곳에서 논쟁을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의 추악한 실상이 알려진 지 벌써 30년이 지났습니다. 말에 말을 보태고, 옆에서는 '증거가 없지 않느냐'며 우기는 걸 정당한 논쟁으로 미화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논쟁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정과 사과를 포함한 후속 조치라는 걸 그들은 알면서도 계속 모른 척만 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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