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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김일성 일가의 세습독재는 영원히 계속될까? ①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북한 체제의 특성상 대중시위로 체제가 무너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 ▶대중시위로 무너진 동독, 북한에서도 가능할까?)그렇다면, 북한 김일성 일가의 세습독재는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까요?

북한 전문가들 중에는 지금의 북한 체제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역사상 어느 정권에 비하더라도 김일성 일가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와 조직이 철저하게 구비돼 있으며, 권력기관들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게 만듦으로써 김 씨 일가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감시에서 자유롭지 못한 감옥 같은 국가를 만들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금 현재 김 씨 일가의 집권에 이상 징후는 없습니다. 김정은 총비서의 권력은 확고하며 어느 누구도 이에 도전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김일성 일가의 3대 세습체제는 확고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보다 장기적으로 전망해봅시다. 앞으로도 계속 김일성 일가가 세습에 세습을 계속하면서 몇백 년씩 왕조적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고려나 조선처럼 북한도 왕조체제로 몇백 년씩 지속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세습왕조국가가 실제로 장기간 존속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21세기의 시점에서 봉건시대 같은 왕조체제는 장기간 지속될 수 없습니다.

고려나 조선이 왕조체제로 몇백 년씩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가 왕조체제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왕이 절대권력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신하는 그런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당시에는 시대의 진리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습왕조체제라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독재국가들이 존재하지만 권력을 2대, 3대까지 세습하는 국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더구나 지금은 전 세계의 정보가 하나로 유통되는 시대인 만큼, 북한이 아무리 폐쇄 체제를 고수한다 하더라도 왕조적 전체주의체제를 몇 대에 걸쳐 장기간 지속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김일성 일가의 세습독재가 지금은 이상 없이 작동하고 있지만 장기간 계속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중간 어디쯤에서인가 세습독재가 무너지는 시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여기서는 어떤 상황에서 세습독재에 변화가 시작될 것인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세습독재 붕괴의 지점

김일성 일가의 세습독재는 언제쯤 무너질까요? 세습독재를 가능하게 하는 북한 체제의 내구력이 수명을 다할 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습독재를 지속시키는 체제의 내구력은 어디에서 비롯될까요.

왕조적 전체주의 국가인 북한 체제를 유지시키는 가장 직접적인 내구력은 폭압적 통치기구들을 통한 물리적 억압입니다. 시장이 확산되면서 경제 영역에서의 자율성은 많이 신장되었다고 하나 정치적인 이견, 특히 김 씨 일가에 대한 문제 제기는 조금도 허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김 씨 일가에 대한 충성심을 의심받는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가족과 친척들까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는 패가망신을 각오해야 합니다. 사회안전성과 국가보위성 등 억압 기구들이 세습독재 유지의 전면에 나서고 있고, 아직까지 이에 저항하는 움직임들이 표면화되고 있다는 징후는 없습니다.

물론 이런 물리적인 억압만으로 북한 체제가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리적 억압이 강제수단에 의한 체제 유지 방법이라면, 자발적으로 체제에 순응하게 하는 방법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수령을 절대우상화하면서 수령에 대한 절대충성을 강조하고 '아버지 수령-어머니 당-인민대중'의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북한판 종교식 선전 논리는 외부에서 보기에는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릴지 몰라도 북한 내부의 결속력을 유지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최고지도자가 현지지도를 가거나 무대에 등장했을 때 이를 바라보는 북한 주민들 중 일부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는 모습은 우리가 보기에는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이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는 일상적인 행동 중 하나인 것입니다.

북한 당국의 이러한 사상 교육이 모든 주민들에게 먹혀드는 것은 아닙니다.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북한 당국의 황당한 사상 교육에 염증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최고지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우상화에 동원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감히 이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김일성 일가에 대한 우상화-신격화는 김일성 일가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하며 세습독재체제의 내구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김 씨 일가의 능란한 통치력은 3대 세습이 지금까지 확고하게 유지되는 데 기여했습니다. 김일성은 해방 이후 북한 내에 경쟁적 파벌을 물리치고 안정적 권력을 확보하는 권력 투쟁 능력을 발휘했고, 김정일은 자신으로의 권력 승계를 위해 김일성을 절대우상화하고 북한을 김일성의 사상이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감옥 같은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김 씨 일가의 권력 유지라는 측면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김정은 또한 권력의 2인자라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주변 인물들에 대한 주기적인 숙청과 재등용을 통해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유도하는 권력 운용 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의 숙청은 권력에 해가 되는 경우 친인척이라 해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북한 권력층에 보여줌으로써 김정은으로의 절대권력 확립에 기여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인의 능력만으로 세습독재체제의 내구력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을 보좌하는 북한 엘리트 계층의 협조가 있기에 북한 체제의 지속이 가능합니다. 폭압적 통치기구들의 물리적 억압, 김 씨 일가에 대한 절대우상화 작업들도 엘리트 계층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안정식 취재파일용

김일성 세습독재에 협조하는 북한 엘리트 계층

북한 엘리트 계층은 왜 세습독재의 유지에 협조하는 것일까요? 언제 숙청될지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일까요. 숙청의 공포감도 한 몫을 하고 있겠지만, 이들이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재자들이 정권을 유지하는 비결은 정권을 지지하고 있는 엘리트들의 충성을 유지시키는 데 있습니다. 국가에 한정돼 있는 물질적 자원과 특권을 소수 엘리트들에게 배분함으로써 이들이 독재자를 지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독재자와 이런 소수 엘리트들을 합쳐 '지배연합'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들은 국민들의 빈곤과 기아를 해결할 능력은 없지만 물리력을 이용해 국민들의 저항을 억누르고 권력을 유지할 능력은 가지고 있습니다. 독재자가 무너지면 소수 엘리트들의 특권도 사라진다는 점에서 이들은 운명공동체인 것입니다.

북한의 경우 지배연합의 규모를 축소시킨 소규모 지배연합을 통해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세습독재를 유지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김 씨 일가와 이를 둘러싼 소규모 지배연합의 운명공동체 의식이 강력한 체제 내구력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결국, 세습독재의 붕괴는 이러한 지배연합이 허물어질 때 발생합니다. 북한 권력층 내부에 분열이 발생할 때 세습독재 붕괴의 씨앗이 잉태되는 것입니다.

예일대 정치학과 교수인 스볼릭(Milan W. Svolik)의 분석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합니다. 스볼릭이 독재자들을 연구한 바에 따르면 1946~2008년 사이에 하루 이상 집권한 316명의 독재자 가운데 축출 방법이 확인된 303명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권력을 잃었습니다.

쿠데타(정권 내부자에 의한 제거) 205명(68%), 민중봉기 32명(11%), 민주화를 위한 대중의 압력 30명(10%), 암살 20명(7%), 외국의 개입 16명(5%) 등의 순입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다수의 독재자들은 민중봉기보다는 독재자의 주변에 있던 정권 내부자에 의해 제거되었습니다.

북한도 스볼릭이 분석한 일반적인 사례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 글( ▶대중시위로 무너진 동독, 북한에서도 가능할까?)에서 살펴보았듯이 북한에서 시민혁명은 거의 불가능한 만큼, 김 씨 일가의 세습독재 붕괴는 내부 분열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의 지배연합이 허물어질 때 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안정식 취재파일용

지배연합은 어떻게 허물어지는가

독재자의 지배연합이 무너지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쿠데타입니다. 군대라는 물리력을 가진 집단이 독재자에게 반기를 들어 독재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면 독재자와 공생했던 기존 지배연합은 일거에 붕괴됩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쿠데타의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북한의 군대는 당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군의 당 조직을 총괄하는 총정치국은 중대 단위까지 정치지도원을 파견해 군이 혹시라도 다른 마음을 먹고 있지 않은지 샅샅이 감시하고 있습니다. 노동당의 전문부서인 군정지도부도 군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쿠데타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의 군부대가 중앙의 감시를 벗어나서 병력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북한에서 이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북한 내 지배연합의 붕괴는 최고지도자의 변고로부터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정일이 말을 타다 떨어져 크게 다쳤던 것처럼 김정은도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마비 증세를 보이다 3년여 만에 세상을 떠났던 것처럼 김정은에게 심각한 건강 이상 증세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2010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와 비교해 보면 갈수록 체중이 불어나는 모습입니다.

최고지도자의 신상에 이상이 생긴다면 운명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는 북한 엘리트들은 가급적 다른 구심점을 찾기를 원할 것입니다. 이를테면 백두혈통의 일원이며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이나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이 대체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체재로 부상한 사람이 후계자로서의 능란한 권력 행사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고 지배연합은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면서 분열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최고지도자가 별다른 사고나 건강 이상 없이 수명을 마친다 해도 지배연합의 위기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후계자로 지정되는 사람이 지배연합을 이끌어 갈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의 아들과 손자 대대로 세습이 추진된다고 할 때 4대 세습, 5대 세습의 후계자들이 역량 있는 권력자의 모습을 보여줄지는 불투명합니다. 세습은 많은 인력풀 중에 능력 있는 사람을 골라 후계자로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최고지도자의 자식이라는 한정된 인력풀 안에서 후계자를 선택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습독재에서 지배연합의 위기 가능성은 권력자가 교체될 때마다 발생합니다.
 

범인의 얼굴에서 뒤늦게 발견한 범죄 요소

지금 상황에서 북한의 지배연합이 언제 어떻게 위기에 처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배연합의 위기는 최고지도자의 변고나 교체와 연관돼 생길 가능성이 높지만,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북한 체제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독재와 권위주의 체제의 몰락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구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는 주변 사람들뿐 아니라 혁명의 당사자들도 놀라게 했습니다. 체포된 범인의 얼굴에서 다양한 범죄적 요소들을 쉽게 발견하지만 체포되기 전까지는 그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어느 학자의 말처럼, 독재와 권위주의 체제의 몰락 징후는 학자들에 의해 대개는 사후적으로 설명돼왔습니다. 체제가 이미 무너지고 난 뒤 다시 살펴보니 몰락의 징후들이 예전부터 있었다는 것이고, 이를 이론으로 정리하면서 '그렇게 될 줄 알았다'는 뒤늦은 지혜를 정립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전개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겸허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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