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3개월 아기'① 온몸 부러져도 '교화' 택한 경찰

관련 이미지

지난 2019년 9월, 태어난 지 3개월 된 경기도 군포의 여자 아기가 동네 병원을 찾았습니다. 머리뼈와 갈비뼈 등 11곳이 부러진 데다, 뇌출혈과 관절염, 저혈당 증세까지 보여 종합병원 세 곳을 전전했습니다. 학대 의심 신고가 이어졌고, 의료진은 아예 진단서에 '육체적 학대'라고 못 박았습니다.

관련 이미지

"전치 몇 주 정도가 아니라 죽을 뻔한 건데. 내원했을 당시에 보면 뭐 전신에 안 부러진 데가 거의 없고요. 간염 수치도 굉장히 높았거든요. 오래 굶어도 이렇게 돼요. 맞아도 이렇게 되고. 저혈당이 심했고 영양실조가 아주 심하게 있는 거죠. 아마 분리 안 했으면 100% 죽었을 거예요." (배기수 | 아주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아동 학대 중상해 혐의로 어머니를 수사한 경찰은 지난해 3월 형사 처벌이 아닌 교화를 목적으로 한 아동보호사건으로 송치했지만, 검찰은 다시 수사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3개월 뒤 형사사건으로 송치됐고, 신고 1년 4개월 만인 지난 14일 구속됐습니다.

▶ [단독] "3개월 아기 온몸 골절"…병원마다 학대 의심 신고
▶ [단독] "뼈 잘 부러지는 특이체질"…재수사로 엄마 구속
▶ "뼈 손상 시기 다 달라"…분리 치료받자 '방긋'
▶ 분리 조치했지만…'방임' 아빠 친권 주장하면

● "뼈 잘 부러지는 희귀체질"…학대 부인하는데 '교화' 강조한 경찰

경찰은 가정 안에서 이뤄진 일이라 결정적 증거가 부족하고, 아이 부모가 때린 적이 없다고 혐의를 부인하며 수사에 협조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합니다. 아이 부모가 "아이가 원래 뼈가 잘 부러지는 희귀체질"이라거나 "병원에서 예방접종을 했는데 그 부작용으로 다리가 부은 것 같다"고 주장한 겁니다.

물론, 경찰이 '육체적 학대'로 보인다는 의료진 소견을 받아들여 아이를 부모로부터 즉시 분리한 것은 칭찬할 만한 점입니다. 그러나 아이 부모에 의한 학대라고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가 없단 이유로 구속영장을 따로 신청하지 않거나, "부모에 대한 처벌보다 교육과 교화, 원 가족으로의 복귀가 더 중요하다"며 형사 처벌이 내려지지 않는 아동보호사건으로 송치하려 한 점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 판단입니다.

아동 전문 변호사나 관련 사건을 취급한 검사들은 "학대 부모가 스스로 자백하고 반성하는 경우 아동보호사건으로 보내 교육을 받도록 한다"고 지적합니다. 가정법원에서 학대 사실 여부 자체를 다투긴 어렵기 떄문에, 아이의 다친 상태가 심각하거나 부모가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에는 형사법정으로 넘기는 것이 적절하단 겁니다. 부모의 형사 처벌 여부가 아이의 원 가정 복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학대 정도에 따라 세밀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지난 19일 최초 보도 직후 경찰은 입장문을 내고 "검찰과 조율해 추가 수사했고 최종적으로 형사사건으로 보냈다"며 문제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검찰의 재수사 지휘가 없었다면 생후 3개월 아기가 온몸이 부러져 다쳤는데도 부모에게 아무런 형사 처벌도 내려지지 않을 뻔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인이 사건과 수사권 조정을 계기로 아동 학대사건 초기 경찰 수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일선에선 '원 가정 복귀' 만을 강조하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봐야 할 지점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서 인정을 하고, 달라지겠다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나는 그런 적 없다'고 다투고 있는 사람에게 교육, 상담 명령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습니다." (신수경 변호사 | 민변 아동위)


관련 이미지

● 말 잘하는 학대 부모, 말 못 하는 피해 아동

아무래도 아동 학대사건은 학대 피해를 당한 아동보다 학대 혐의를 받는 부모의 진술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가 어려 제대로 된 의사 표시를 할 수 없는 경우엔 더욱 그러합니다. 주로 집 안에서 학대행위가 발생하는 범죄 특성상, 증거 자료나 목격자가 없는 경우가 많아 학대 정황을 포착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돼 가정 방문 조사를 벌이는 경우에도 전문성이 부족해 학대 징후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인이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세 차례 학대 의심 신고를 받고 가정 방문 조사까지 벌였지만, 정인이가 부모 품에 잘 안겨있다거나 정인이 몸에 생긴 멍자국을 부모가 잘 설명해냈단 이유로 즉각적인 분리조치를 하지 않은 겁니다. 말 못 하는 아이들의 피해를 입증해내려면 '아동 최선의 이익' 관점에서 적극적인 초기 수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아이가 신체에 몽고반점 같은 게 다른 아이보다 특이하게 많긴 해요. 부모한테 멍이 왜 들었냐고 하면 어디 부딪혀서 멍이 들었다고 설명이 됐고, 아토피가 심해서 계속 긁고 비벼 생긴 것도 있고, 아빠가 다리 펴주려고 안마하다 그렇게 된 것 같다고도." "엄마 품에 안겨서 거부반응 없이 잘 안겨서 놀고… 그런 반응들을 봤을 때는 (아동 학대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거죠, 전문가들이." (서울 양천경찰서 관계자)


● '육체적 학대' 초기 진단…의료진 전문성 적극 활용해야

군포 3개월 아기를 치료한 의료진은 아이의 뼈가 부러진 시점이 다 다르고 영양실조가 심각해 장기간 학대가 있었던 걸로 추정합니다. 또 애당초 뼈가 쉽게 부러지는 희귀체질로는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학대 혐의로 어머니를 구속하는 데 1년 4개월이나 걸린 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처럼 의료계에선 아동 학대 의심 신고를 해봤자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고, 신고자 정보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많습니다.

이런 고민을 바탕으로 지난주 117개 의료학회, 협회 및 단체가 공동 성명을 내고 아동 학대 대응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의료전문가가 아동 학대 의심 사례 발생 시 전문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협의체를 만들고, 필요시 전문적인 의학적 소견을 반영해 사건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겁니다. 또 아동 학대 관련 근무자들을 대상으로 아동 학대 소견에 대한 의학적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지난주 김창룡 경찰청장은 전국 경찰청에 아동 학대 전담 수사팀을 만들고 아동 학대사건은 경찰서장이 직접 모든 과정을 지휘 감독하겠다고 밝혔는데, 의료계의 전문적인 역량을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입니다.

▶ 학대 부모에겐 있고 숨진 정인이에겐 없다
▶ [취재파일] 아동 인권 대모 "정인이 위한 변호인 있었다면"

※ 여전히 정인이를 위한 변호인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동 학대 피해 아동을 위한 국선변호인 제도 활성화가 필요하단 앞선 지적에 대해 지난주 정부가 대책을 내놨습니다. 21일 모든 학대 피해 아동에 대해 국선 변호인 선정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겁니다. 학대 피해 아동이 형사재판 외에도 지속적인 법률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세밀한 방안이 마련되길 기대해봅니다.

▶ [취재파일] '3개월 아기'② 친부가 데려간다면 막을 수 있나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