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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전투식량 195만 개 불량…방사청 방조했나

[취재파일] 전투식량 195만 개 불량…방사청 방조했나
경북 영천 육군 제5보급대에는 현재 전투식량 Ⅱ형 약 70만 개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돼 있습니다. 이 중 50만 개는 유통기한이 지났을 텐데 버리지도 못합니다. 유통기한이 도래하지 않은 것도 병사들에게 먹이지 않습니다. 마냥 묵혀둘 뿐입니다.

전투식량 구성품 가운데 참기름과 옥수수기름이 화근입니다. 전투식량의 유통기한은 3년인데, 생산업체가 집어넣은 참기름과 옥수수기름의 유통기한은 2년입니다. 식품 관련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인 식약처는 일찍이 식품위생법 위반이라고 했고, 업체 소재지인 나주시청은 괜찮다고 했습니다.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은 뜻밖에도 식약처 대신 나주시청의 판단을 따랐습니다. 식약처가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고, 검찰이 업체의 피의사실을 인정하고, 야당 국회의원이 이의를 제기하니까 그제서야 방사청은 해당 전투식품에 하자 판정을 내렸습니다. 납품된 전투식량 195만 개 중 125만 개는 이미 장병들이 먹은 뒤였습니다. 유통기한 지난 기름도 많이 먹었습니다. 5보급대에서 먼지 뒤집어쓴 채 상하고 있는 것은 병사들이 먹고 남은 70만 개입니다.

해당 전투식량 Ⅱ형은 어제(12일) SBS 취재파일에서 지적했던 방사청의 입찰 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이 있는 B사의 제품입니다.( [취재파일]100억 전투식량 사업…'답안지' 누가 넘겼나) 업체들한테 가혹하기로 소문난 방사청인데 식약처와 검찰의 판단을 물리치고 B사의 전투식량을 애틋하게 챙겼습니다. 입길에 안 오를 수가 없습니다. 방사청 고위직의 이름이 방사청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습니다.

● 식약처 "전투식량 Ⅱ형, 식품위생법 위반"

영천 5보급대에 쌓여있는 전투식량은 2017년 하반기부터 B사가 생산한 물량들입니다. 총 195만 개, 금액으로 따지면 91억 원 상당입니다. 전투식량의 유통기한은 3년인데, 전투식량 안에 든 참기름과 옥수수기름의 유통기한은 2년이라는 사실이 납품 후에 드러났습니다. 재작년 3월 이에 대한 민원이 제기됐습니다. 국방기술품질원(이하 기품원)은 민원 제기 보름 만에 "식품위생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전격 판정했습니다.

그런데 식약처가 들여다봤더니 "식품위생법 10조 위반으로 해당 식품 회수 후 폐기"라는 결론에 닿았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재작년 6월 방사청과 기품원에 통보됐습니다. 한 달 여 뒤 방사청과 기품원은 전투식량 Ⅱ형의 급식을 중지하라고 군에 알렸습니다. 이때 가부(可否) 간에 분명하게 정리했으면 깔끔했을 텐데 방사청과 기품원은 갈짓자 행보에 들어갑니다.

● 나주시청 OK 사인에, 식약처·검찰 판단은 휴지조각

B사의 소재지인 전남 나주시청이 재작년 11월 식약처 결정을 뒤집고 행정 불처분 통보를 했습니다. 나주시청은 참기름과 옥수수기름의 유통기한이 짧은 것은 별 문제가 안 된다고 본 것입니다. 방사청과 기품원은 기다렸다는 듯 단 며칠 만에 전투식량 Ⅱ형의 급식을 재개했습니다.

식약처가 보기에도 자치단체를 따르는 방사청이 미덥지 못했는지 작년 4월 B사의 식품위생법 위반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뒤 방사청과 기품원에 알렸습니다. 두 달 뒤 검찰은 "피의사실이 인정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방사청은 꿈쩍 않았습니다.

보다 못한 정종섭 당시 야당 의원이 작년 8월 "전투식량 Ⅱ형을 하자 판정하고 급식을 중단하라"고 이의를 제기하자 방사청은 10여 일 뒤 급식 중지를 결정했습니다. 기품원은 작년 9월에야 전투식량 Ⅱ형에 대한 하자 판정을 내리고 B사에 통지했습니다.

방사청과 기품원은 9개월간 나주시청 판단에 편승해 식약처와 검찰의 뜻을 물리쳤습니다. 그동안 장병들에게 전투식량 Ⅱ형을 먹였습니다. 전투식량은 재고 중에 오래된 것부터 부대로 보냅니다. 장병들이 유통기한 지난 참기름과 옥수수기름을 상당량 소비했다는 뜻입니다.

식품 위생에 대한 법적 판단을 식약처, 검찰이 아니라 자치단체에 의존한 방사청과 기품원의 처사가 의아합니다. 급식 중지 결정은 몇 달씩 걸리더니, 급식 재개 결정은 단 며칠 만에 쾌속으로 내린 점도 수상합니다. 무엇보다 장병들이 유통기한 지난 참기름, 옥수수기름을 먹는데 늑장을 부린 자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기품원은 작년 9월 B사에게 하자 처리를 요구한 상태입니다. B사는 하자 판정이 부당하다며 버텼습니다. 사건은 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시비는 가려질 것입니다. 방사청은 내부적으로 하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받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쌀이 딱딱하다는 불만이 제기된 B사의 전투식량 S형 시식 장면

● 설익은 전투식량 S형…"물 더 넣고 오래 기다렸다 먹어라"

작년 1월부터 B사의 전투식량 S형 190만 개가 군에 공급됐습니다. 뜨거운 물 붓고 10~15분 기다린 뒤 양념을 넣고 비벼 먹는 신형이었습니다. 보급 한 달쯤 지나니까 육군 부대들에서 불만이 제기됐습니다. 15분 기다려도 쌀이 안 익어서 딱딱하다는 호소였습니다.

기자는 작년 5월 육군 장교와 병사들과 함께 직접 실험도 해봤습니다. 병사들은 한 숟갈 뜨더니 대번에 딱딱하다고 말했습니다. 방사청과 기품원이 내놓은 대책이 가관이었습니다. "뜨거운 물 더 넣고 더 오래 기다렸다고 먹어라"였습니다.

전투식량의 생명은 신속과 간편입니다. 방사청과 기품원은 신속과 간편 둘 다 포기하라고 주문한 것입니다. 느리고 불편한 전투식량은 이미 전투식량이 아닙니다. 업체에 단호하지 못한 당국의 자세가 그때도 께름칙했습니다.

● 자꾸 거론되는 고위직의 이름…청장은 또 모를까

국방과학연구소 사상 최대 기밀 유출 사건, 현대중공업의 차기구축함 KDDX 설계도 절도 사건… 방사청이 주도적으로 조사했거나, 방사청 직원이 개입됐는데 왕정홍 방사청장은 "몰랐다"고 했습니다. 어제 SBS 취재파일로 보도한 방사청의 입찰 서류 유출 사건도 왕 청장은 모르는 일이었는지 부랴부랴 진상을 파악하라고 감사관실에 지시했다고 합니다. 청장은 전투식량 Ⅱ형 195만 개 불량 사건도 몰랐을 것입니다.

전투식량 Ⅱ형 195만 개를 사들인 이후의 과정을 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습니다. 장병들이 유통기한 지난 참기름과 옥수수기름을 숱하게 먹은 일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딱딱하면 오래 기다렸다 먹으라는 전투식량 S형 건도 개운치 않습니다. 모두 B사가 만든 전투식량이고, 유출된 방사청의 입찰 서류도 B사와 관련 있는 인물에게서 나왔습니다.

몇 달 전부터 B사와 함께 거론되는 방사청 고위직이 있습니다. 그 정도 고위직이면 왕정홍 청장도 지근거리에서 신임했음 직합니다. 방사청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그 고위직과 B사의 관계를 숙덕였고, 방산업계 사람들은 "유착 커넥션이 어디까지 연결된 거냐"며 정보를 교환했습니다.

B사 측은 터무니없는 억측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왕정홍 청장이 기왕 B사와 관련된 방사청 자료 유출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으니 이번에 방사청이 제대로 손을 대서 전투식량 하자와 자료 유출 사건의 뿌리를 캐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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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론보도문
방위사업청은 "전투식량 납품시 관련 법규의 적법한 절차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였으며, 어떠한 업체에도 특혜를 준 적이 없고, 방위사업청 고위직인 내부자가 특정 업체를 비호하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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