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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100억 전투식량 사업…'답안지' 누가 넘겼나

[취재파일] 100억 전투식량 사업…'답안지' 누가 넘겼나

유출된 방사청 입찰 서류…누가 업체를 비호하나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20.11.12 09:34 수정 2020.11.12 09:3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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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납업체의 입찰 상세정보가 담긴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의 서류가 관련 업계에서 나돌아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방사청의 로고와 문서 일련번호가 워터마크로 찍힌 방사청의 문서로, 경쟁업체에겐 입찰 답안지나 다름없는 자료입니다. 실제로 방사청 서류는 경쟁업체 주변에서 나왔습니다.

방사청의 누군가가 이 자료를 출력하고 모종의 중간 과정을 거쳐 업체의 손에 들어간 것입니다. 방사청 내부에서는 특정 업체를 비호한다는 모 간부의 실명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경찰은 업체 관계자들과 방사청 직원들을 여러 차례 소환 조사했는데 특히 유출한 방사청 간부를 색출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 유출 서류는 전투식량 업체의 입찰 정보

유출된 방사청의 전투식량 관련 서류
유출된 서류에는 2016년 전투식량 업체 A사가 '전투식량 Ⅱ형' 입찰에 참여했을 때 제출한 입찰가격, 납품실적, 기술과 품질관리능력, 신용등급 등과 방사청이 매긴 점수가 표기돼 있습니다. 해당 업체의 전투식량 관련 모든 정보와 방사청의 평가가 적혀 있으니 경쟁사 손에 들어가면 당장 맞춤형 가격을 정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이 됩니다.

통상 경쟁입찰의 경우 업체들이 써내는 가격, 신용등급, 실적 등 중에서 가격이 제일 중요합니다. 나머지 항목들은 대체로 고정적 상수이기 때문에 가격이란 변수를 조정해 응찰하게 됩니다. 경쟁사가 A사의 고정적 점수와 가격을 알면 이어지는 다음 입찰에서 자사 전투식량의 가격을 합격선에 정확히 맞춰 적어낼 수 있습니다. 이를 모르는 A사는 눈 뜨고 당하게 됩니다.

군은 전투식량을 한 번에 적게는 수십만 개, 많게는 100만 개 이상씩 사들입니다. 매번 100억 원 안팎의 큰돈이 걸린 입찰입니다. 이런 입찰의 당락을 가르는 업체의 입찰 핵심 정보가 방사청을 통해 유출된 것입니다.

● 서류는 경쟁사의 마케팅 업체 대표의 손에 있었다

A사의 입찰 정보가 담긴 방사청 서류는 경쟁사인 B사의 마케팅 담당 업체의 대표가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2017년 4~5월쯤 B사의 대표가 이 서류를 줬다"고 말합니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가서도 같은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전투식량 Ⅱ형을 생산하는 업체는 A사와 B사 딱 둘 뿐입니다. B사가 A의 입찰 정보 서류를 갖고 있었다면 2017년 실시된 입찰은 무법적 절차나 진배없습니다. A사의 관계자는 "B사가 방사청으로부터 서류를 빼내서 입찰에 활용한 명백한 불법"이라며 "해당 서류는 방사청과 업체의 유착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습니다.

방사청 입찰 서류 유출 사건과 관련된 전투식량 Ⅱ형
B사의 고위 관계자는 "모르는 서류", "본 적 없는 서류"라며 일축했습니다. 모르는 서류이니 "마케팅 업체 대표에게 준 적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경찰에서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B사 대표에게 서류를 받았다는 마케팅 업체 대표는 "경찰에 거짓말탐지기를 돌려보자고 요청했는데 B사 관계자는 응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 방사청의 누가 서류 유출했나

B사 측은 "서류의 존재를 몰랐다", 마케팅 업체 대표와 A사 측은 "B사가 방사청으로부터 받은 것이다"라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해당 서류가 방사청에서 흘러나왔다는 점입니다. 경찰이 진실을 밝혀내면 다행인데, 방사청도 책임지고 유출자를 색출할 책임이 있습니다. 방사청은 정부 어떤 기관보다 보안이 중요하고, 그래서 감사관실과 정보보호 부서를 두고 있습니다.

기자가 방사청에 이 사건을 문의한 지 열흘은 된 것 같은데 방사청은 뾰족한 대답을 못 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다룰 형사 사건이기에 앞서 방사청이 책임져야 하는 보안 사고인데도 별도의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방사청
방사청이 의욕만 있다면 해당 서류의 원본을 경찰로부터 협조받아 출처를 밝힐 수 있습니다. 워터마크로 찍힌 서류의 일련번호가 흐릿하다고 해도 서류의 내용을 쫓아 들어가면 작성자와 서류 접근 권한이 있는 자는 특정됩니다. 경찰에 사건이 접수된 시점은 올해 초입니다. 국방과학연구소 기밀 유출 사건 때도 그랬지만 방사청은 또 뒷짐만 지고 있습니다.

방사청 안팎에서는 실무자가 해당 서류를 뽑아 중간 관리자 이상의 결재권자에게 전달했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서류 곳곳에는 보고 받은 간부가 메모한 것 같은 흔적도 나옵니다. 방사청의 한 관계자는 "B사와 관련해서 자주 거론되는 간부가 있다", "그는 가족의 주선으로 B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B사를 돌봐준다는 말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방사청에 정통한 한 방산 전문가도 "대형 방산업체도 아닌 군소 군납업체인데 방사청 특정 간부가 비호한다고 해서 여러 사람들이 의아해하고 있다", "그의 위세가 대단해서 방사청 그 누구도 섣불리 이 사건에 손을 못 대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경북 영천의 육군 보급창고에는 특정업체의 전투식량 Ⅱ형 70만 개가 하자 처분을 받고 속수무책 썩고 있습니다. 하자가 있는 전투식량이어서 먹지 못하게 됐는데 방사청은 업체의 배상도 못 받고 있습니다. 방사청과 기품원이 하자 처리를 제때 안 해 125만 개는 장병들이 벌써 먹었습니다. 이번 서류 유출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관련 소식도 곧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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