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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다가오는 美 선거 재앙…트럼프 "우편 투표=부정 선거" 의도는?

김수형 '우편 투표' 관련 리포트

● "우편투표 희망 45%"…코로나가 바꿔놓은 선거 방식

며칠 전 8뉴스 제작을 위해 길거리 지나가는 미국 유권자들을 상대로 우편 투표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단 한 명도 부정적인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없어서 놀랐습니다. "팬데믹에는 안전하고 믿을 만하다", "사람 접촉하기 무서우니 완벽한 선택이다"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부정적인 반응이 나와도 뉴스에 그대로 쓰려고 했는데, 8명을 인터뷰해도 한 명도 그런 말을 안 해서 결국 포기했습니다. 美 CBS 방송에서 여론 조사를 해보니 전체 등록 유권자 가운데 45%가 우편 투표를 선택할 거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편 투표라는 개념이 다소 생소하지만, 미국에서는 우편 투표가 이미 광범위하게 시행돼 왔습니다. 뉴욕타임스가 데이터를 취합해서 기사를 썼는데, 이번 대선에서 9개 주와 워싱턴DC에 거주하는 4천4백만 모든 유권자들에게 우편 투표용지가 발송된다고 합니다. 전체 유권자의 21%에 해당합니다.(이번에 대선부터 전면 우편 투표를 시작하는 주는 캘리포니아, 뉴저지, 네바다, 버몬트, 워싱턴DC입니다.) 유권자들은 우편함에서 투표용지를 꺼내 원하는 후보자에 기표하고, 서명해서 우편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방식으로 투표하게 됩니다. 집에서 그냥 마음에 드는 후보자를 찍어서 우편으로 보낸다니 이보다 편한 방식은 없습니다.

33개 주에 거주하는 1억 1천5백만 명은 특별한 이유를 대지 않아도 부재자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무서워서 투표장에 못 가겠다고 하면 부재자 투표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건데, 전체 유권자의 55%에 해당합니다. 부재자 투표도 우편으로 표가 왔다 갔다 하는 방식입니다. 부재자 투표와 전면 우편 투표는 신청해서 받느냐, 그냥 처음부터 자동으로 받느냐 차이만 있지 본질적으로는 똑같습니다. 나머지 8개 주, 전체 유권자의 24%에 해당하는 5천만 명은 군인이나 노약자처럼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부재자 투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미국 유권자의 76%에 해당하는 1억 6천만 명은 마음만 먹으면 우편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정확한 숫자를 추산하기는 어렵지만, 뉴욕타임스는 대략 8천만 명이 우편 투표를 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우편 투표 한 사람이 3천3백만 명이 넘었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2배 이상이 우편 투표를 선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 우편 투표 관련 이미지

●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은 우편 투표 부정

한번 꽂히면 같은 말을 수십, 수백 번 반복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요즘은 '우편투표=부정선거'라는 공식을 기회가 될 때마다 반복하고 있습니다. 너무 자주 해서 거의 세뇌가 될 정도로 똑같은 논리와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제는(15일) 보통 기자회견을 잘 안 잡는 토요일이었는데도, 중국이 미국 농산물을 사줬다는 내용을 발표하면서 또 우편 투표 얘기를 한참 했습니다. 우편 투표를 하면 엄청난 부정 선거가 일어날 거라는 똑같은 얘기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편 투표에 대해 하는 얘기를 정리해보면, 투표용지가 아무한테나 배송되고, 그걸 아무나 가로채서 특정 후보를 막 찍는 대규모 부정 선거가 일어날 거라는 주장입니다. 극적인 과장을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죽은 사람에게도 투표용지가 가고, 심지어 개한테도 배송될 것"이며 "아무나 투표용지를 훔쳐가 막 찍어서 보낼 것"이라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러시아, 중국, 북한 등 외국이 우편 투표에 개입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대중에게 지극히 왜곡된 단순 이미지를 반복 주입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상투적인 표현 방식입니다. (이렇게 우편 투표의 문제점을 계속 지적해왔지만, 플로리다로 주소가 돼 있는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우편 투표의 일종인 부재자 투표를 할 예정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듣다 보면 '진짜 그런 거야?'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우편 투표로 인한 부정 선거 가능성은 벼락을 맞을 확률보다 낮습니다. 이미 2000년 이후 우편 투표를 해왔던 오리건 주에서는 중복 투표나 죽은 사람 대신 투표하는 식의 선거 부정은 전체의 0.0000001%에 불과했습니다. 헤리티지 재단도 20년간 부재자 투표 범죄 사례를 분석해보니 총 득표 수의 0.00006%였다고 발표했습니다.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무시해도 될 사례를 아무런 근거도 없이 엄청난 선거 부정인 것처럼 부풀리고 있는 겁니다.

미국 우편 투표 관련 이미지

워싱턴DC에서 우체통에서 우편물을 수거하는 집배원이 일하는 걸 직접 취재했는데, 전자 기기로 자신이 여는 우편함을 일일이 스캐닝해서 확인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우편물을 나르는 차량에는 맡은 지역의 우체통 별로 체계적으로 구분하도록 정리가 돼 있었습니다. 우편 투표는 우체통에서 수거한 다른 우편물과 차별 없이 똑같이 처리됐는데, 다만 우편 투표는 비싼 우편물에 지원되는 배송 추적 서비스가 가능합니다. 거기에 서명까지 일일이 확인을 한다고 하니 부정이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누군가 우체통을 털어가는 범죄를 저지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우체통을 털어가도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대로 수백만 명의 표가 없어지는 대규모 선거 부정으로 이어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우편함에서 표가 분실된다고 하는 트럼프 대통령 말에 자극된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그 말을 몸소 실행하는 산발적인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은 있을 것 같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돈 안 줘서 우편 투표 못 하게 하겠다"…우체국 마비시키는 트럼프

대표적인 친 트럼프 방송인으로 알려진 폭스 비즈니스 소속의 마리아 바티로모과 최근 전화 인터뷰한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 투표와 관련한 자신의 속내를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낸 바 있습니다. 방송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예산 지원 안 하면 우편 투표 못 하게 될 거다"고 발언했습니다. 투표를 제대로 못할 상황이면 예산을 더 지원해서 그걸 해결하는 게 정상적인 지도자들의 모습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철저하게 자신의 유불리만 따져서 행동해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런 밑바닥에는 우편 투표 확대해봐야 민주당 지지자들만 더 많이 할 거라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자신은 최대한 그걸 막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겁니다. 미국 언론들이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음을 내고 있는데, 이런 위기의식을 느끼는 게 전혀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트럼프 대통령 측근이자 우체국장인 루이스 드조이

트럼프의 오랜 정치자금 후원자였던 루이스 드조이가 우체국장에 취임하면서 우체국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는 건 큰 문제입니다. 그는 취임하면서 초과 근무 수당을 없애버렸고, 이 때문에 집배원들이 시간 외 근무를 제대로 못하게 됐습니다. 게다가 우편 분류기까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또 코로나로 우편 배송이 10배 이상 늘어난 곳도 상당수일 정도로 업무량이 폭주했습니다. 일은 늘어났는데, 일하기가 어려워지고, 일하는 시간까지 줄어들면 답은 우편물이 늦게 가는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이미 연방 우체국은 46개 주에 우편 투표 배송이 늦어질 수 있다고 경고해놓은 상태입니다.

미 예비선거인 프라이머리 과정에서 발송된 투표용지가 늦게 개표장에 도착하면서 무효표가 된 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NPR이 취재를 해서 프라이머리 과정에서 버지니아는 5.63%, 아칸소는 3.02% 등이 무효표가 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상당수 주에서 적어도 1% 이상 우편 투표가 지각 도착으로 집계조차 안 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공중에 사라지는 표가 이렇게 많은데, 이번 대선처럼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동시에 우편 투표를 하게 되면 대참사가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 대참사 방치해 우편 투표 빼고 승리 선언?

지금은 바이든 전 부통령이 여론조사에서 상당히 앞서고 있는 걸로 나오지만, 선거가 임박하면 격차가 좁혀질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도 여론조사 전체 추세는 조금씩 간격이 좁혀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지지층도 선거가 임박하면 할수록 결집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박빙의 선거가 펼쳐지면 우편 투표에서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선거 불복의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지더라도 깨끗하게 승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발언한 바 있습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이후의 난장판을 각오한 모습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우편 투표 배송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유리합니다. 공화당 지지자들이 압도적으로 직접 투표소에 가겠다고 답한 경우가 많았는데, 현장에 있는 표인 만큼
이게 먼저 개표될 가능성이 큽니다. 초반 집계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는 걸로 나오면 일단 승리 선언을 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편 투표 집계 결과는 나중에 올라올 텐데, 이건 부정 선거로 벌어진 거라고 우길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우편 투표가 너무 몰려 병목 현상이 벌어지면 개표장에 도착하지도 못하고 우체국 배송 체인 어딘가에 표가 머물다가 모두 무효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줄 소송이 벌어지면서 승자와 패자를 구분 못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예언이 실현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편 투표를 적극 독려하고 있는 바이든 입장에서는 표를 도둑맞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나 극단적이고 암울한 전망이지만 미국 언론들도 실제 이런 상황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설마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이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대통령과는 다른 행동을 보여준 적이 너무 많았습니다.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은 이제는 유권자들이 투표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건가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정도로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 미국 유권자들 선호하는 '우편 투표'…대선 쟁점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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