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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ADD 자료 유출 몰랐다는 방사청 차장…지난 정부 일이라는 방사청장

국회 국정감사에 참석한 왕정홍 방사청장(가운데 발언자)과 남세규 ADD 소장(제일 왼쪽), 강은호 방사청 차장(왼쪽에서 두번째).

지난 25일 오전 방위사업청과 국방과학연구소 ADD 고위직들이 대거 국방부 브리핑실을 찾았습니다. ADD 자료 유출 사건에 대한 방사청의 감사 결과를 발표하기 위한 방문이었습니다. 발표는 방사청의 2인자 강은호 차장이 주도했습니다.

방사청 감사 결과 보도자료 중 "ADD의 기술보호업무 총괄부서에서 퇴직자의 자료 유출 사실을 인지하고서도 임의로 종결처리하였고"라는 문구가 기자의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강은호 차장에게 "방사청도 작년 말부터 인지하고도 아무 일도 안 했지 않나"라고 질문했습니다.

뜻밖에도 강 차장은 "방사청은 4월 중순에야 인지했다"고 답변했습니다. 몇 차례 확인 질문에도 강은호 차장은 "4월 중순에 인지했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강 차장 말대로 ADD는 작년 12월 말에 자료 유출을 인지했는데 관리·감독기관인 방사청은 넉 달 뒤에야 파악했다면 방사청은 지독하게 무능한 겁니다. 누구를 관리·감독할 주제가 못됩니다. 정부 기관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합니다. 넉 달 동안 몰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방사청 수뇌들은 자진해서 무거운 책임을 져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방사청은 무능하지 않았고 늦어도 지난 초봄에 유출 사건을 알았다는 진술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강은호 차장의 주장이 거짓이란 겁니다. 진술들은 "작년 12월 국가정보원, 방사청, 안보지원사 합동팀이 ADD 실태조사를 하고 자료 유출 사실을 알아냈다"로 모아집니다. 방사청이 작년 말~올 초 사건을 파악했다 한들 방사청으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입니다. 넉 달 동안 무책임하게 손을 놓았으니까요.

왕정홍 방사청장은 지난 4월 29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ADD 자료 유출 사건이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졌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사상 최대의 이번 ADD 자료 유출 사건은 모두 이번 정부에서 벌어졌습니다. 특히 왕 청장 재임 기간에 대부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취재파일] ADD 기밀 유출 '책임 회피' 방사청장…"그 책임 버거우면 내려놓으시길")

국군의 무기체계를 책임지는 방사청 1, 2인자들의 말이 도통 믿음을 못 줍니다. 권리의 많음을 좇고 책임의 무거움은 피해 보려는 얕은 술수가 아니길 바랍니다. 처벌설은 커녕 방사청 내부에서 이들의 영전(榮轉)설이 도는, 믿기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 방사청 안팎에서 들리는 진술들…"방사청은 몇 달 전에 알았다"

ADD 자료 유출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가 확보한 진술에 따르면 국정원, 방사청, 안보지원사 합동팀은 작년 12월 ADD 실태조사를 했고 유출 혐의를 잡았습니다. ADD 직원 여럿이 "방사청도 연말·연초에 인지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겁니다. 즉, 국정원, 안보지원사와 함께 방사청도 ADD 자료 유출 사건을 일찍 알아챘다는 뜻입니다.

그럴 개연성이 높습니다. ADD는 방사청의 출연기관입니다. ADD의 일거수일투족은 방사청에 보고됩니다. ADD에서 사상 최대의 보안사고가 터졌는데 방사청이 몰랐을 리 만무합니다. 게다가 이번 사건의 시작은 작년 12월 ADD 보안실태점검이었고 방사청도 국정원, 안보지원사와 함께 참여했습니다. 왕정홍 청장, 강은호 차장 모두 인정하는 바입니다.

방사청 관계자들도 방사청이 ADD 유출사건을 4월 이전에 알았다고 기자에게 말하곤 합니다. 정확한 인지 시점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올 초에 파악했다고 한목소리로 확인을 합니다.

● 엇갈리는 방사청 1인자, 2인자의 발언들

하지만 강은호 차장은 25일 공개 언론 브리핑에서 "12월 20일부터 4~5일간 ADD에 실태조사를 나가서 기술보호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는 걸 알았고 시스템과 제도의 개선을 요구했다", "재실태 조사를 나가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 나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4월 중순까지는 사건 자체를 몰랐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한다지만 이메일도 있고 전화도 있고 화상회의 시스템도 있습니다. ADD가 스스로 조사해서 상황을 파악하고 이메일, 전화, 화상회의를 통해 방사청과 대책을 논의해도 될 일입니다.

왕정홍 청장은 강 차장과 다른 말을 했습니다. 왕 청장은 4월 29일 국방위 전체 회의에서 "작년 말 합동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ADD가 자체조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유출이 발견됐다"고 했습니다. 즉 ADD 자체조사로 올 초 유출 사실이 확인됐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ADD는 조사 결과를 방사청에 보고했을 터.

왕 청장의 발언은 방사청이 재실태 조사를 하려고 했는데 코로나 19 때문에 못했고, 따라서 방사청은 몰랐다는 강 차장 주장과 한참 거리가 있습니다. 방사청의 1, 2인자의 말이 이렇게 다르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 ADD 전경

● 방사청이 4월 중순까지 몰랐다면…

강은호 차장의 '4월 중순 인지설'이 사실이라 해도 방사청의 책임은 감당 안 될 정도로 큽니다. ADD는 방사청이 관리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입니다. 그곳의 퇴직연구원 A씨는 68만 건, B씨는 35만 건, C씨는 8만 건의 자료를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3명 합쳐 100만 건 넘는 자료가 USB나 외장하드에 담겨 ADD에서 빠져나갔습니다.

B씨와 C씨는 UAE의 칼리프대학 무기체계 개발 연구소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출 자료 중에는 국산 유도무기 비궁과 관련된 것들이 많습니다. ADD 내부에서는 비궁 기술만 한정해도 수조 원대 피해가 난 걸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들 외에 퇴직연구원 20명이 자료 유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ADD에 상상도 못 했던 큰 구멍이 뚫렸습니다.

ADD는 작년 말~올 초 사이에 알고 전전긍긍했던 사건을 방사청은 넉 달 동안 몰랐다고 강은호 차장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방사청이 '왕따'가 됐거나 ADD를 방임했다는 겁니다. 방사청은 관리·감독기관으로서 자격 미달입니다. 방사청 수뇌들은 부끄러워 얼굴 못 들어야 정상입니다.

강 차장의 말과 달리 방사청이 일찍 알았어도 그동안 손 놓은 책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국정원, 안보지원사도 손 놓고 있었습니다. 68만 건 혐의자인 A씨는 4월 26일 기자와 통화에서 "지금까지 누구도 자료 유출과 관련해 전화도 방문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23명 혐의자 중 한 명은 사건이 언론 보도로 불거진 이후에도 ADD 현직 연구원들과 한가롭게 테니스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비궁 기술 유출 혐의자가 어디로 갔는지 찾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평화로운 나날이었습니다.

다들 사건의 심각성을 알고도 어찌 된 사정인지 강 건너 불구경했습니다. 범부(凡夫)의 배포가 아닙니다. 국정원과 안보지원사는 사건이 조용히 묻히기만 고대했나 봅니다. 그런데 그만 언론 보도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제서야 화들짝 놀라서 동분서주하는 척했습니다. 방사청도 국정원, 안보지원사처럼 알고도 남의 일처럼 방관했다면 큰 벌 받아야 합니다.

이처럼 방사청이 ADD 사건을 일찍 알고도 방임했건, 바보처럼 4월 중순에야 알았건 방사청의 책임은 큽니다. 그럼에도 방사청 내부에서는 방사청 수뇌들의 책임설이 아니라 영전설이 파다하게 돌고 있습니다. 강은호 차장은 국방부 차관으로, 왕정홍 청장은 장관급 기관장으로 옮긴다는 이야기입니다. 뭔가 대단히 잘못되고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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